다시 좋아질 거야.
내가 대학교 4학년이 되던 그해 겨울, 할머니는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갑자기 심해진 병세에 병원에선 우리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이런 말을 꼭 두 번째다. 할머니가 아플 때마다 불안해지는 내 마음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래전에 폐병을 앓으신 게 완전히 치료가 안 돼서, 한쪽 폐가 기능을 제대로 못 해요. 일단 내일 CT 다시 찍어보죠.”
“네, 알겠습니다.”
할머니를 호강시켜준다던 꼬마 아이는 벌써 24살이 되었다. 할머니의 입원이 결정되고 아직 직장이 없는 내가 할머니의 간병인이 되었다. 그때 난 처음으로 취업하지 못한 게 감사했다. 내가 돌봐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할머니는 병원을 철저하게 불신했다. 약을 먹으면 더 아프다며 드시지 않았다. 할머니는 산소호흡기 없이는 숨이 가빠왔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호흡기를 차지 않았다.
“할머니 이거 안 끼면 안 된다고! 왜 이렇게 사람을 속상하게 하는데!”
멍울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휴, 나는 이거 답답혀......”
“이거 안 끼면 더 답답한 거야. 조금만 참아봐. 제발.”
이렇게 애걸복걸해야만 산소 호흡기를 끼셨다. 입까지 덮는 산소 호흡기를 써야 산소 수치가 안정선을 찾는데, 답답해서 빼는 탓에 콧구멍에만 꽂는 호흡기로 바꿨다. 그 덕에 할머니 코가 헐었다. '그냥 입까지 덮는 산소호흡기를 차면 될 걸'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코가 헐어도 답답한 게 더 싫다고 하니, 그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할머니가 잘 때는 입까지 덮는 호흡기를 씌운 건 비밀이지만.
할머니는 끊임없이 기침하셨다. 조금 안정을 찾는다 싶다가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할머니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할머니에게 약도 못 먹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계속 폐렴약을 먹는 걸 거부하셨다. 이럴 때면 늘 나쁜 상상이 나를 슬프고 괴롭게 만들었다. 할머니가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 건 아닌가. 나는 너무 못된 손녀였는데, 이렇게 가면 나는 못살 것 같은데, 하는 그런 상상.
이런 상상은 할머니가 아프지 않을 때도 자주 들었다. 아프지 않더라도 할머니는 떠날 수 있는 나이셨으니까.
할머니 나이 이제 여든넷. 병원에서 할머니 나이는 언제 떠나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니. 아니야, 아닐 거야. 내 부정적인 상상은 언제나 장례식장까지 간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할머니 곧 나을 거야'. 혹시 의사가 말했던 마음의 준비란 게 바로 이런 걸까.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