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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4. 2019

익숙해지지 않는 고비

다시 좋아질 거야.

내가 대학교 4학년이 되던 그해 겨울, 할머니는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갑자기 심해진 병세에 병원에선 우리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이런 말을 꼭 두 번째다. 할머니가 아플 때마다 불안해지는 내 마음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래전에 폐병을 앓으신 게 완전히 치료가 안 돼서, 한쪽 폐가 기능을 제대로 못 해요. 일단 내일 CT 다시 찍어보죠.”

“네, 알겠습니다.”

할머니를 호강시켜준다던 꼬마 아이는 벌써 24살이 되었다. 할머니의 입원이 결정되고 아직 직장이 없는 내가 할머니의 간병인이 되었다. 그때 난 처음으로 취업하지 못한 게 감사했다. 내가 돌봐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할머니는 병원을 철저하게 불신했다. 약을 먹으면 더 아프다며 드시지 않았다. 할머니는 산소호흡기 없이는 숨이 가빠왔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호흡기를 차지 않았다.

“할머니 이거 안 끼면 안 된다고! 왜 이렇게 사람을 속상하게 하는데!”

멍울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휴, 나는 이거 답답혀......”

“이거 안 끼면 더 답답한 거야. 조금만 참아봐. 제발.”

이렇게 애걸복걸해야만 산소 호흡기를 끼셨다. 입까지 덮는 산소 호흡기를 써야 산소 수치가 안정선을 찾는데, 답답해서 빼는 탓에 콧구멍에만 꽂는 호흡기로 바꿨다. 그 덕에 할머니 코가 헐었다. '그냥 입까지 덮는 산소호흡기를 차면 될 걸'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코가 헐어도 답답한 게 더 싫다고 하니, 그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할머니가 잘 때는 입까지 덮는 호흡기를 씌운 건 비밀이지만.


할머니는 끊임없이 기침하셨다. 조금 안정을 찾는다 싶다가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하셨다.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할머니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할머니에게 약도 못 먹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계속 폐렴약을 먹는 걸 거부하셨다. 이럴 때면 늘 나쁜 상상이 나를 슬프고 괴롭게 만들었다. 할머니가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 건 아닌가. 나는 너무 못된 손녀였는데, 이렇게 가면 나는 못살 것 같은데, 하는 그런 상상.

이런 상상은 할머니가 아프지 않을 때도 자주 들었다. 아프지 않더라도 할머니는 떠날 수 있는 나이셨으니까.

할머니 나이 이제 여든넷. 병원에서 할머니 나이는 언제 떠나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니. 아니야, 아닐 거야. 내 부정적인 상상은 언제나 장례식장까지 간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할머니 곧 나을 거야'. 혹시 의사가 말했던 마음의 준비란 게 바로 이런 걸까.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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