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푸름 Nov 14. 2019

느린 걸음을 따라

빠른 걸음보다 따라가기 힘든 느린 걸음.

늙은이가 어찌나 빠른지. 걸음은 젊은 내가 따라가기에도 늘 벅찼다. 천천히 가라고 부탁을 해도 할머니는 빨리 오라고 하며 당차게 앞으로 걸어가셨다. 언니와 나는 함께 걸어가면 늘 따라가기 힘들어서 할머니 등에 소리쳤다.      

“할머니, 천천히 좀 가.”

“아이고, 빨리 오랑께.”

할머니는 잠깐 멈춰 이야기를 하고 또 빠르게 걸어가셨다.

언니와 나는 늘 궁금했다.

“할머니는 걸음이 왜 그렇게 빠르지? 마르셔가지고 힘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야. 아주 희한해.”     

우리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을 무렵, 할머니의 빨랐던 걸음이 무색해졌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할머니가 80세가 넘었을 때, 걸음은 현저하게 느려지셨다. 내가 채 스무 걸음을 가지 않아도 할머니는 따라오기 힘들어 하셨다. 힘들게 몇 걸음을 가도 잠시 엉덩이 붙일 곳을 찾으며 숨을 고르셨다.      

“할매 힘들어?”

“어. 후...후...”

“조금 쉬었다가 가자.”     

할머니가 앉아서 쉴만한 큰 바위나, 벤치를 찾는다. 할머니를 그곳에 앉히고 가만히 기다린다. 가쁜 숨이 조금 잦아들면 그제야 나도 마음이 놓인다. 이럴 때면, 할머니에게 천천히 걸으라고 했던 예전에 내 말을 도로 무르고 싶다.


빠른 걸음도, 느린 걸음도 따라가 봤지만, 나는 느린 걸음을 맞추기가 더 어렵다. 빠른 걸음은 사실 목표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느린 걸음은 우리가 목표로 향해 나아가기 힘들다. 더 많은 인내와 배려가 필요하다. 조금 더 힘들지만, 할머니가 산책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시니 따라간다. 마음 같아선 냅다 달리고 싶지만, 할머니를 혼자 두기 싫어 참는다. 이제 할머니는 느리기 때문에 함께 있어줘야 한다. 빨랐던 시절엔 내가 필요 없었지만, 느리기 때문에 내가 필요하다. 그런 우리 사이가 어쩐지 사랑스러워 할머니의 보폭에 발을 맞춘다.       



작가의 이전글 익숙해지지 않는 고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