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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5. 2019

필요없는 단어

나중에 말고 지금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달 뒤, 나는 할머니와 옆 동네로 이사했다. 가까운 동네로 이사오라는 막내삼촌의 의견을 따랐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을까. 이젠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다. 이사가 그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어디로 가든 이사만 가면 그만이었다.


이사 온 동네는 안산의 신도시로, 전에 살던 동네보다 쾌적하고 깨끗했다. 어쩐지 이곳에서는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스며들었다.


이제는 꼭 할머니와 나 둘이서 살아야 한다. 엄마를 그리워할 틈도 없이 그저 생활에 치여 살았다. 이제 여기서 다시 시작이다. 새싹이 돋아나듯 작은 소망이 가슴에서 움튼다. 할머니도 이곳이 마음에 들까. 나는 할머니 어깨에 팔을 둘러 꼭 감쌌다.

“할머니, 여기서 우리 잘 살자.”

“그래야지.”

“내가 할머니 맛있는 음식도 많이 해줄게.”

“너는 말로는 아주 빌딩도 짓겠어.”

“하하. 그래도 말이라도 예쁘게 하잖아.”

나는 할머니를 꼭 안았다.

.     

할머니와 새로운 집에서는 규칙적이고 쾌적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게 할머니의 건강에도 분명 좋을 것이다.쾌적한 생활을 위해 청소도 신경쓴다. 할머니가 닦던 걸레와 가재도구는 모두 내 몫이다. 이제 빨래도 살림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 여러모로 책임감을 느낀다. 무겁지만 괜찮다. 나를 지탱해주는 할머니가 있으니까.


이전 집에서는 사지 못한 소파도 사고 옷장도 샀다. 책장과 책상도 장만했다. 가구들이 하나씩 집안에 채워지니 이제야 비로소 우리의 보금자리 같았다.


지금 고생하고 아끼면 다음에 그 모든 행복을 누릴 수 있다지만, 나는 지금 지금 행복을 누리기로 결정했다. 할머니와 나와의 주어진 시간 안에서는 '나중에'라는 단어가 쓸모가 없으니까. 우리에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있는 것 같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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