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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촛불을 불며

나는 해마다 똑같은 소원을 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그땐 생일이면 롯데리아에서 파티하는 게 유행이었다. 유행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런 유행을 따라 해야만 하는 철부지였다는 게 문제였다.     

“할머니, 이번 생일파티 여기 롯데리아에서 할래.”

“롯데 뭐?”

“롯데리아! 햄버거집에서 케이크도 주고 파티도 해준대!”

우리 집 사정에 무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롯데리아에서 생일파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번 내 생일을 위해 나의 치트키를 쓰기로 했다.

“친구들 다 거기서 했단 말이야.”

친구들과 비교하면 할머니는 웬만하면 들어주셨다. 지난번에 머리띠를 살 때도, 다른 친구들은 머리띠를 다 가지고 있다고 하니, 할머니는 '남들 다 하는데, 푸름이도 해줘야지'라며 사주셨다.  

“친구들 한 건 다 하고싶다냐. 그건 어떻게 하는 건디.”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는 내게 일부러 져 준 것 같다. 모든 친구들이 생일파티를 롯데리아에서 한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는 손녀가 하고 싶다는 건 다 해주고 싶으셨던 마음이었겠지.

    

11번째 생일이 다가오고, 할머니를 재촉해 롯데리아에 생일파티를 예약했다. 생일파티에 드는 금액이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막연히 ‘친구들도 하니까 나도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뿐이었다. 하지만 생일이 다가올수록 기대감은 점점 양심에 가책으로 변했다.

‘너무 내 고집만 부렸나…’

할머니와 엄마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분명히 엄마가 힘들게 벌어온 돈이겠지.

‘롯데리아에서 꼭 해야만 했니 바보야.’

     

생일날이 되자 언제 심란했냐는 듯 나는 다시 들떠있었다. 하교 후 나는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롯데리아로 들어갔다. 의기양양하게 직원에게 내 이름을 대고 햄버거를 달라고 하자, 직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보호자가 오기 전까지는 음식을 줄 수 없어요.”

점원의 말에 나는 경직됐다. 아무래도 할머니가 결제를 다 하지 않았나. 왜 부모님이 오기 전까지는 안 되지?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친구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덜컥 겁이 났다.

‘다들 나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하지.’

나는 일단 침착하게 친구들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 앉아있자. 우리 할머니가 금방 올 거야.”

반짝이는 포장지로 싼 선물을 들고 있는 친구들. 나는 초조해졌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터라 할머니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음을 어찌나 졸였는지 잼이 되는 줄 알았다.

“푸름아, 할머니 언제 오는 거야?”

“응? 어…. 곧 오실 거야!”

30분이 넘도록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내 생일파티는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망연자실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할머니는 대체 언제 오는 걸까. 혹시 할머니가 까먹은 건 아닐까. 친구들이 다들 기다리는데 어쩌지....


그때, 할머니가 문을 열고 롯데리아에 들어왔다.  

“아니, 먹고 있지 그랬어.”

할머니는 빠른 걸음으로 오셨는지 숨을 헐떡이셨다.     

“할매…이제 오면 어떡해.”

이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그 감격으로 얼굴까지 빨개지며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고 미안혀. 나 안 온다고 음식도 안 줬어? 아니, 음식은 줘야지. 아이고.”

할머니는 미안해하셨다. 함께 있던 친구들도 놀랐다. 할머니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던 애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니 그럴 만도 하다.     


본격적으로 생일파티가 시작됐다. 불갈비 버거 세트와 함께 케이크와 고깔모자가 준비됐다. 방금까지 울었던 눈은 사라지고 싱글벙글 웃으며 생일 축하 노래에 손뼉을 쳤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푸름이의~”


그때 왜 그렇게 생일파티에 목을 맸을까. 아마 나는 보통의 친구들처럼 평범하고 싶었나 보다. 화려한 파티를 통해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를 누구도 무시하지 않길 바랐다. 그런 내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물질이나 화려함으로 마음속 결핍을 채울 수 없다'라고. 나는 그 말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가끔은 물질이나 화려함으로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에게 어떤 부족함을 느낄 때, 그건 본능적으로 소망이 된다. 이제는 그 소망을 이룰 차례다. 자신의 노력이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나는 그것대로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내 소망을 위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소망'의 한자 풀이대로 작은 바람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으로 변할 수 있다. 욕망은 사람을 극단의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그것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성숙한 어른에겐 좋은 엑셀레이터가 될 수 있지만, 어린아이에겐 성장할 때 해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그때 내 소망은 다른 친구들처럼 롯데리아에서 생일 파티하기였다. 사실 그 이면엔 조촐한 생일파티로 친구들에게 무시받지 않기가 있었다. 감수성 많은 그 시절에 친구들에게 무시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할머니는 나의 그런 자잘한 소망들을 '화려함'과 '물질'로 채워주셨다. 만약 그런 건 다 사치라며 무조건 불필요하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왜 다른 친구들처럼 생일파티도 해줄 수 없냐며 가정 형편을 원망했겠지. 할머니 속을 썩이며 방황했을 수도 있겠다. 감사하게도 할머니는 내 소망을 물질과 마음으로 채워주셨고, 그 덕분에 나의 소망은 욕망으로 변하지 않았다.


내 소망이 얼마나 철없던 것인지 알고 있다. 지금이야 어디서 생일파티를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 소망은 어린 시절 이루어졌기 때문이겠지. 내 소망을 채워준 할머니의 노력에 나는 늘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는 고깔모자를 쓰고, 생일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롯데리아에서 생일파티를 하던 그때도 지금도, 생일 케이크 위에 꽂힌 촛불을 불며 나는 해마다 똑같은 소원을 빈다.     

‘우리 할매랑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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