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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효심 겨루기

할머니는 자존심이 세다. 할머니에게 자존심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과거 아파트에서 빌라로 이사 갈 때도 할머니는 거짓말을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돈이 없어서가 빌라로 이사 가는 게 아니라 청소하기 힘들어서 라고. 물론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그건 할머니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할머니의 체면이 상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런 할머니의 자존심은 요양병원에 있을 때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옆 침대 할머니의 아들이 찾아와 간식과 과일을 돌렸는데, 할머니는 못내 기분이 언짢아하셨다. 할머니 자존심에 남의 자식이 준 간식을 먹을 턱이 없었다. 그리고 불똥은 내게 튄다. 그야말로 효심 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야, 푸름아, 너는 뭣 헌다고 한 번을 안 오냐. 잉?”

“너무 바빠서 못 갔어. 미안혀 할매.”

투덜대는 전화에 부랴부랴 가보니, 할머니는 심통이 나 있었다. 내가 가도 본 체 만 체다.

“이 할매 다 죽고 오지 그랬냐.”

“할매, 무슨 그런 말을 해.”

날 선 고드름 같은 할머니의 말에 절로 인상이 써졌다. 옆 침대 할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해주신다.

“어, 박말녀 손녀 왔구먼.”

“헤헤. 안녕하세요.”

“박말녀 할머니, 손녀랑 이거 하나 먹어. 우리 아들이 하나 사 왔어.”

옆 침대 할머니가 귤을 주신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즐겁게 받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쩝 소리를 내고는 치우라는 식으로 고개를 돌린다. 받기 싫고, 받아도 나는 먹지 않겠다는 사인이다.

“할매, 왜 그래. 옆에 할머니가 할머니 먹으라고 주신 거잖아.”

“참말로. 됐다니께. 나는 이런 거 안 먹는다니께.”

“할매 좋아하는 밀감이잖아. 얼른 먹어봐요.”

“되어써,”     


어쩌겠나. 우리 할머니가 그런 사람인 걸. 병원 1층에 있는 상점에 가서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사 왔다. 간호사들이랑 할머니와 같은 병실 분들에게 나눠드린다. 그제야 할머니 표정이 조금 풀리셨는지 표정이 풀린다. 체면이 섰는지 다른 할머니도 먹으라고 괜히 소리친다.

“어, 먹어. 먹으랑께. 저 할머니도 갖다 줘. 이런 거 좋아혀.”


그 뒤로 나는 늘 7인분을 사 갔다. 간식을 접시나, 종이컵에 소분해서 한 분 한 분 가져다 드렸다. 생글생글 웃으며 맛있게 드세요, 라는 말도 함께 잊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연신 고맙다고 말해주셨다. 그제야 할매도 간식을 드셨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간식은 대체로 빵이나 도넛, 케이크였다. 또 오렌지를 신기할 정도로 좋아하셨다. 소화가 안 될 때면 사이다도 꼭 찾으셨다. 사이다도 그냥 사이다는 안 되고, 500ml의 하얀 별이 일곱 개 그려진 것만 드셨다. 한 번은 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돼서 사이다를 사 가지 않는 보이콧을 했는데, 옆 침대 할머니에게 사이다를 꿔 드셨단다. 그 대가로 옆 침대 할머니에게 원가에 돈을 더 얹어 드려야 했다. 노인이 되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편애와 집착이 심해지는 듯했다.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해 할머니와 자주 다퉜다. 다 똑같은 사이다인데 왜 그것만 고집하냐고 화를 냈다. 사실 그걸 좋아하는 할머니의 취향은 문제가 아니다. 그저 그걸 사다 주는 자식들이 힘들어서 그렇다. 이제는 그런 취향을 이해한다. 그건 편견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맥주 중에서도 블루문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그날도 꽈배기를 사다 드렸다. 설탕이 잔뜩 묻어야 한다. 이건 무게도 가볍고, 요양병원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팔고 있어 구하기 간편했다. 그 집 사장님께서는 매번 10개씩 사가는 나를 반기시곤 했지. 뜨거운 여름에도 변함이 없고, 몹시 추운 겨울에도 장갑을 끼고 바리바리 싸서 갔다.

“아이고, 박말녀 손녀 또 왔네.”

“안녕하세요. 히히, 할머니 안에 들어가세요. 제가 맛있는 거 사 왔어요.”

“아이고, 뭘 또 사 왔어.”

“헤헤.”

방 문 바로 앞, 침대에 거동을 못하시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누워 있는 모습을 더 많이 봤다. 내가 음식을 사가는 날이면 늘 좋아하셨다. 우리 할머니에게 드리는 것만큼 뿌듯했다.      


물론 1인분을 사가는 것보다 돈은 7배로 들었다. 그래도 7배 더 뿌듯했다.      

모든 배달을 완료하고 할머니와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한다. 언제나 내 걱정만 하는 할머니의 걱정을 조금 덜어 드리는 게 내 임무다.     

러시아에 있는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간병사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이제 나도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     

“할머니, 푸름이 또 올게.”

“어서 가랑께.”

“밥 잘 먹고 있어야 돼?”

“알겄어. 또 와~”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자식들이 얼굴을 비추는 건 참 큰 일이다. 무료한 요양원 생활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 맛난 간식까지 사서 오면 얼마나 좋을까. 퇴근 후, 애인이 데리러 오는 깜짝 이벤트만큼이나 좋겠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요양원 어르신들 효심 겨루기엔 소용없다. 그저 얼굴 보러 자주 와주고,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다 주는 자식을 가진 할머니가 WIN이다.


미안해하는 부모도 있다. 나는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뭐하러 왔냐는 말은 기다렸는데 너 바쁠까 봐 연락 못했다 라는 뜻과 같다. 내 걱정은 말라는 말은 내 걱정하느라 네가 힘들까 봐 걱정이다 그러니 마음 쓰지 말아라 의미다. 물론 우리 할머니는 늘 내게 오라고 성화지만, 만약 할머니가 오지 말라고 하면 그 말은 흘려듣기로 했다.


어쨌든 오늘도 나의 임무는 석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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