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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체념 뒤에 기다리고 있는 희망

요양병원에 간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어.

할머니를 간병한 지 8개월쯤, 나는 막내 삼촌에게 할머니를 혼자서 돌보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부축해주지 않으면 화장실도 혼자 가기 힘드셨다. 가스 불을 켜기는커녕, 주방으로 밥을 뜨러 갈 수도 없었다. 냉장고를 열 힘도 없으셨다. 할머니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였다. 이게 바로 간병 스트레스인가? 어디에 풀 곳이 없었다. 그저 곁에 있는 할머니에게 성질만 부렸다.

"아니, 내가 몇 번을 말해! 할머니, 위장약 계속 먹으면 더 안 좋아진다고!"

"그럼 어쩌냐. 먹어야 살겄는디."


왜 자고 있는 나를 깨울까, 왜 내게 아프다고 호소하는 걸까, 그러면 왜 아프게 만드는 악습관을 고치지 않으실까. 화가 났다.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혼자서 한적하게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다. 멀리 떠나면 할머니와 다시 예전처럼 사이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간병을 하는 내 자신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27살인데. 나는 대체 할머니를 간병하며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간병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화를 내지 않는 게 간병이라면, 나는 간병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 엄마도 할머니를 혼자 볼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 마음 좀 헤아려 줄 걸. 얼마나 외로웠을까.'

우울한 생각은 내 속에서 무한히 복제되고 번식하는 듯했다.


나는 삼촌에게 한 달만 휴식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힘들면, 됐다. 할머니 삼촌이 맡을게.”

삼촌은 홧김에 자신이 맡는다고 했다. 그 말은 곧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다는 거였다. 나는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가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아니, 그런 식으로 하면 어떡해요. 나도 할머니 돌보고 싶어. 할머니도 내 옆에 있고 싶어 해 근데 나는 힘들어.”

“아니, 됐어. 할머니 요양병원 가실 거야.”

“할머니 요양병원 가기 싫어한다고요.”

“그럼 어떻게 하자고!”

"딱 한 달만 쉬고 싶어."

"한 달 동안 어디를 간다고. 그럴 바엔 할머니 요양병원에 모셔."

“삼촌들이나 외숙모들이 도와주면 되잖아요.”

“어떻게 그러냐. 다들 일 하고 있는데.”

“하...”


요양병원에 가면 할머니 분명 힘들어하실 텐데. 나도 할머니 없으면 불안한데. 그렇다고 간병인을 집으로 부르는 건 또 할머니가 싫어하고. 다른 방법이 없을까. 결국 자식들의 답은 하나였다. 내가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나는 할머니와 함께 하는 생활보다 나의 자유로움을 택했다. 나와 삼촌은 할머니를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할머니, 너무 힘들다. 내가 할머니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뭐가 힘들다냐.”

“요양병원 가면 밥도 챙겨주고, 나도 내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참말로, 요양병원 가면 나 죽는다니께.”


나도 할머니랑 함께 자고 싶은데. 왜 이렇게 돼버린 걸까. 뭐가 문제였을까. 그저 늙는다는 게 문제였을까. 노쇠해지는 게 문제일까. 아님 꿈을 가지고 내 삶을 살아가고 싶은 내가 문제였을까. 나는 몇 달만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좋겠다고 타협했다. 간병에 굴복했다.


요양원에 가는 날. 할머니는 생각보다 크게 동요하지 않으셨다.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날, 미용실에 가서 할머니의 머리를 다듬었다. 머리를 자르고 나면 머리에 대해 한 마디씩 하곤 했는데, 오늘은 별 말이 없으시다.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그건 상관없는가 보다. 미용실 바로 옆에 있는 추어탕 집도 들렸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추어탕 집이라 자주 포장해서 먹었다. 할머니는 그 좋아하는 추어탕보다, 막내 삼촌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것만으로도 좋아 보이셨다.      

요양병원은 집에서 15분 거리였다. 근처에 이마트가 있어서 장 보러 갈 때마다 할머니를 보러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민한 할머니 성격 탓에 늘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1인실 내지 2인실로 잡았었다. 이번엔 다르다. 8인실이다. 할머니와 비슷한 또래 분들이 많아 보인다. 다들 할머니를 반겨주셨다. 할머니의 침대 왼쪽에 창문이 있다. 조금은 덜 답답해하시겠지.

    

할머니를 두고 온 첫날. 유치원에 맡겨 놓은 엄마 마음이 이런 마음일까. 할머니 걱정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밥을 못 드실까, 혼자서 적적하실까, 다른 사람들에게 소외당하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나 때문에 할머니가 요양원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을 독하게 다잡는다. 할머니를 요양원에 맡길 때마다 매번 얼마 못 있다가 데려왔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나는 이 걱정과 불안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할머니를 보러 요양병원에 갔다. 병실에 들어서서 할머니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낮잠을 자는 시간인지, 침대에 조그맣게 웅크려 잠들어 계셨다. 가뜩에나 작은 체구가 더 작아 보였다. 나는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귀퉁이에서 침대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리를 수그려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어깨를 감싸니 그제야 눈을 뜨신다. 내 꿈을 꾸신 건지, 밤새 나를 그리워하신 건지 나를 보고 구름처럼 포근하게 웃는다. 밤새 그리웠던 할머니를 꼭 안아주었다.  


"할매, 내가 맛있는 거 사 왔어."

"이런 거 사 오지 말고, 집으로 데려 가라니께."

"할매, 안 돼. 여기서 조금 계셔야 해."   

“푸름아, 여기 사람들이 못살게 굴고 나만 먹을 거 쏙 빼놓고 주고 집에 가야 쓰겄다.”

“할매. 그래도 다 나을 때까지는 거기 계셔야 해.”

“다 나았다니께. 그리고 여기 있다가 더 병 나거써.”

“할매. 그래도 안 돼. 거기서 밥 잘 먹고 있어야지.”

“밥도 못 먹겠고. 잠도 못 자거꼬만. 옆에 할머니가 얼마나 눈치를 주는지.”

“밥을 왜 못 먹어.”

“푸름아, 할미가 잘 할탱께. 집으로 가자.”

“…”

할머니는 잘못한 게 없건만.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요양원이 내가 불안해 한 것만큼 위험한 시설이 아니라는 걸 안다. 기저귀도 갈아주고, 수시로 할머니의 상태도 체크해준다. 고혈압 약도 나보다 더 세심하게 챙겨준다. 그런데도 불안한 건, 그저 할머니가 적응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소외감을 느낄까 봐서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소외감이 들지 않게 내가 할머니를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나 보다. 사실은 인간은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건데, 나는 과도하게 보호했다. 그건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세상에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할머니가 늙어가고,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마음도 체념했다.


요양병원에 간다고 할머니가 불행해질 거란 생각도 그만하자. 새로운 희망을 생각하자. 요양병원에 가서도 할머니가 건강해지면 다시 함께 지낼 수 있는 날을 꿈 꾼다. 우선은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적응하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믿자. 희망을 믿자. 그 덕분에 내가 잘 수 있고, 눈 뜰 수 있으니까.


다음날 병원을 하니 오른쪽 침대 할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슈."

"여든이 넘었제."

"나도 여든이 넘었어."

"나는 여든 여섯이고만."

"어, 언니 고만. 전라도 같은디."

"예, 전라도 전주에서 왔어."

"나도 전주인디."


그 대화가 나의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 주었다. 할머니도 요양병원에서 잘 적응할 수 있곘지. 난 내 자신보다 할머니를 믿어보기로 했다. 분명, 내가 할머니를 믿으면 할머니도 잘 지내실 수 있다. 할머니가 어떤 분인가. 그 오랜 세월 갖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육남매와 손주들까지 길러내신 분이다. 그러니 믿고 희망하자. 할머니와 살을 부비며 잘 순 없지만, 그 대신에 할머니가 더 건강하게 계실 수 있다고. 할머니가 더 건강해져서 우리가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자.


살면서 우리는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포기한다 해도 희망을 잊지 않는 것이다. 실패를 했을 때나 포기를 했을 때나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존재한다는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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