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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함께라는 욕심

간병을 하며 환자와 '함께'있고 싶다는 건 내 욕심이라는 걸 알았다

할머니는 새벽에 화장실 갈 때가 많았다. 다리에 힘이 없어진 할머니는 혼자 화장실을 가기엔 무리였다. 자다가 일어난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비틀거리다 앞으로 넘어질 것 같다. 졸리지만 얼른 일어나 할머니를 부축한다. 조금만 늦었다가는 넘어져 골절이 될 수 있어서 큰일이다. 나는 할머니를 변기에 앉혀드리고 용변을 다 보실 때까지 벽에 기대 서있는다. 얼른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밤잠이 없는 할머니는 손녀의 무수히 많은 새벽잠을 빼앗아 갔다. 곤히 자고 있는 손녀를 깨우는 할머니가 손녀는 야속하기만 하다.

"푸름아, 꿀물 좀 타와라. 속이 아파 죽겄다."

"할머니, 잠 좀 자야지. 새벽에 무슨 꿀물이야."

"아니, 속이 아파서 못 자겠는데 어째."

"할머니, 그니까 내가 콜라 먹지 말라했잖아. 진짜 잠 좀 자자."

"잠은 맨날 자면서 그러냐. 얼른 좀 타와라."

할머니는 손녀의 호소를 잠투정쯤으로 생각했다. 나는 빨리 꿀물을 타 드리거나 할머니의 요구를 들어드리는 편이 잠을 잘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숙면을 못하니 나는 짜증이 늘었다. 하는 수 없이 밤에는 할머니에게 기저귀를 차드리기로 했다. 할머니는 기저귀가 답답하다며 차기 싫어하셨다. 할머니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잠은 자야 했다.


혼자서 뭔가에 집중하려고 하면 할머니는 나를 찾아와 심부름을 시켰다.

“푸름아, 위장약 없다. 고것 좀 사 와라.”

“할매, 그거 왜 자꾸 먹어. 자꾸 먹으면 안 좋다니까.”

“그거 먹어야 돼. 얼른 사 와.”

“아니, 그리고 지금 너무 더워서 못 나가. 해 지고 저녁에 사 올게.”

“지금 먹어야 한다니께. 얼른 사 와라. 잉?”

내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데 할머니는 내가 가만히 있는 걸 보지 못한다. 나는 할머니에게 온갖 신경질을 퍼붓는다.


힘이 없는 할머니는 내가 두 다리였고, 당신의 요구대로 손녀가 해주길 바랐다. 나도 처음엔 최선을 다 해 할머니의 요구를 들어 드렸다. 나의 체력과 에너지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그러면서 나의 기대는 커졌고, 할머니와 부딪혔다. 할머니는 할머니가 살아온 방식으로 살려고 했다. 나는 나의 방식을 할머니에게 주입하려 했다. 우리는 충돌했다. 할머니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나는 할머니를 쏘아보고, 소리쳤다. 할머니가 드시면 안 되는 음식, 하며 안 되는 행동들을 하고 약속을 어길 때면 화가 났다. 할머니에게만큼은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던 나는 지금은 누구보다 악랄한 손녀로 변해있었다. 그렇게 화를 내는 날이면 그런 우리 모습에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할머니에게 미안했다. 혹시 내가 할머니를 학대하는 게 아닐까.


“할머니, 화내서 미안해.”

“뭔 화를 냈다고 해싸. 되어써.”

“할매, 나 할머니한테 화내기 싫어. 근데 화가 나.”

“그니께, 그냥 내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돼.”

"할머니, 요양병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요양원에 가면 죽는다니께. 나는 절대로 안 갈 것이여."

"그래도. 내가 모든 걸 다 책임지기 힘들다."

"안 된다니께. 참말로...."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가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셨다. 원래도 사람에게 불신이 많은 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서 나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에게 불신을 드러냈다. 한 달, 두 달을 못 버티고 할머니는 자식들을 재촉했다. 집에 가고 싶다며, 요양병원 사람들이 자기를 해코지한다며 늘 전화했다. 결국 할머니의 바람대로 요양병원에서 퇴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화장실 갈 힘이나, 밥을 해 드실 정도의 힘은 있으셨지만 지금은 혼자서 걷는 것조차 무리다. 간병을 전문으로 한 사람도 아닌데, 내가 할머니를 데리고 있는 건 욕심이 아닐까 싶었다. 할머니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다. 할머니의 건강을 더 해치는 게 아닐지 고민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함께 하는 게 과연 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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