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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애증의 김치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가 김치를 찾던 이유


“여보세요? 어, 푸름아. 김치 또 떨어졌다.”

“또? 아니, 할매. 김치가 벌써 떨어졌다고?”

“아 그려. 얼른 가져와야 된다잉.”

“아이고, 알았어요.”

요양원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간다. 더 자주 보러 가고 싶었지만, 두 번도 많다는 간호사의 주의가 있었다. 가족들이 요양원에 자주 찾아오면 할머니가 요양원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가족이 찾아오는 것에만 의존해 다른 할머니들과도 친해지기 어렵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이 타협점이었다.      

‘일주일에 2번 법칙’을 모르는 할머니는 자주 연락이 왔다. 월요일에 갔는데, 수요일에 김치를 가져오라고 하면, 곤란해진다. 일주일에 2번 볼 수 있는 티켓을 모두 사용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티켓이 다시 생기려면 다음 주에야 생긴다. 마치 보드게임 ‘부루마블’에서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20만원의 월급을 주는 같은 원리다. 일주일에 2번 보는 걸 다 몰아 쓰면, 그 주는 할머니를 보러 갈 수 없다. 할머니를 보려면 다음 주에나 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처럼 월요일에 한 번 보고, 수요일도 보면 일요일까지 볼 수 없다. 일주일 중 4일이나 못 보면 사정을 모르는 할머니는 손녀가 안 찾아온다고 서운해 하신다. 무엇보다 요양원에서 잠깐 얼굴 보는 것만으론 늘 부족했던 나도 4일이나 할머니를 볼 수 없으면 할머니가 그리워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물론 일주일에 2번 이상 본다고 해서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 건 아니다. 나는 할머니가 요양원에서 내가 없이도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다른 할머니들에게도 내가 자주 찾아가면 불편할 수 있다. 또 걸어서 왕복5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자주 왔다 갔다 하려니 번거로웠다. 횟수를 정해놓지 않으면 나도 힘들고 할머니도 힘들다. 웬만하면 일주일에 2번 법칙을 꼭 지켜야 한다. 할머니의 김치를 가져오라는 전화는 그 밸런스를 흐트려 놓는다.      

‘김치만 아니면 돼. 김치만 아니면…’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가장 잘 드는 칼을 들고 냉장고를 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 후엔 나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를 만나기 전까진.....   


“아니, 큰 통으로 담아오지 말랑께.”

“왜, 김치 여러번 가져오기 힘들단 말이야.”

나는 김치를 아예 1L짜리 김장 통에 담아왔다.      

할머니는 앙칼진 표정을 하며, 누가 들을까 내 귀에 대고 말한다.

“참말로. 다른 할머니들이 뺏어 먹는다니께.”      


자꾸만 왜 병실 사람들을 의심하실까. 치매의 증상인가 싶었다.


나는 확인하기 위해 할머니 몰래 간병인 분에게 슬쩍 물었다.

“저, 저희 할머니 김치 혹시 누가 먹는 거 보셨나요?”

“아니요. 다들 김치가 있어서 남에 것 먹지도 않아요. 아예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분도 있고. 반찬은 밥 먹는 시간 되면 내가 할머니들 거 찾아서 제가 갖다 주니까 다른 사람이 손 안대지.” 러시아에서 오신 분은 그럴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쵸. 할머니가 자꾸 당신 김치를 다른 할머니가 드신다고 하시길래요.”

“그래요? 허허. 할머니가 다 드셨는데. 박말녀 할머니, 김치 잘 드셔. 김치 많이 드셔.”     


사실 할머니는 김치가 먹고 싶었던 것보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김치를 주러 요양원에 오는 손녀가 보고 싶어 김치를 빨리 먹었던 게 아닐까.      


그 뒤로 나는 작은 통에 김치를 넣어간다. 김치 통을 보며 저걸 다 먹어야 손녀가 당신을 보러 온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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