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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기도하지 않는 마음

할머니를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없는 이유


할머니의 요양생활이 벌써 10개월이 됐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알바를 하며 나름대로의 꿈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할머니를 뵈러 갔다. 병실에 들어서자 할머니 침대 옆에는 낯선 기게들이 놓여 있었다. 뭐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간호사가 말하길, 할머니가 지난밤부터 열이 났다고 했다. 기침도 심해졌다고 했다. 아무래도 폐렴이 또 도졌나 보다. 이번이 꼭 3번째다. 할머니는 침대의 등받이를 올려 앉아 계셨다. 그렇게 기대서 앉아 있어야 숨쉬기가 조금 편하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걸까.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병실을 가득 매웠다.


“할매, 푸름이 왔어.”

“으응……푸름이 왔냐이.”

할머니 목소리에 가래가 가득했다.

“할매…. 할매 힘들지.”

“하이고. 죽겄다. 후. 아주…” 할머니는 내 숨이 멎을 것 같은 기침을 수시로 했다.  

“오렌지 좀 사다 줄까?”

“오렌지도 됐어.”

“뭐라도 먹어야지. 할매. 그래야 빨리 나아서 푸름이랑 집에 가지.”


지난 10개월 동안 나는 늘 집에 가는 걸로 할머니를 희망 고문했다. 할머니가 밥을 안 먹으면 밥을 먹어야 집에 간다고 하고, 할머니가 약을 드시지 않으면 약을 드셔야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때는 사실 거짓말이었다. 하늘에 맹세코 지금은 진짜다.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가고 싶었다. 따뜻한 집에서 할머니를 품에 안고 우리가 좋아하던 이불 안에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조했다.

        

할머니가 나를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기도하면 미지의 존재가 내 소원을 들어줄 줄 알았다. 신원미상의 누군가에게 나는 절실히 기도했다. 할머니가 아파할 때, 부디 내 곁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엄마가 암 투병을 할 땐, 그저 엄마가 고통스럽지 않게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할머니는 아직 내 곁에 있고, 엄마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으시다. 내 기도의 힘이 이렇게 강력할 줄 알았다면 다른 소원을 빌 걸 그랬다. 이왕 빌 거, 내게 영혼 같은 사람들을 내 곁에서 떠나지 않게 해 달라고 할 걸.       


지금은 기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기도할 수 없다. 나도 염치가 있지. 할머니의 나이는 86세셨고, 쇠약해지실 대로 쇠약해지셨다. 할머니의 몸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질수록 나는 기도할 염치가 도무지 안 났다. 그동안 숱한 고비를 겪었다. 그때마다 ‘한 번만’이라는 간절함을 붙여 기도했다. ‘한 번만 할머니 살려주세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그동안 ‘한 번만’을 너무 많이 남발했던 것 같아 이제 내 기도는 신원미상의 누군가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리 선량한 사람도 아니었으니 내 소원을 들어줄 리 만무하니까. 그저 할머니를 정성껏 보살피자. 우리에게 무엇을 바랄 시간도 충분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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