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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내 숨을 당신에게 줄 수 있다면

숨이 부족해진 당신 앞에서 무력한 나를 바라본다.


다음 날, 할머니가 헐떡이는 모습이 밤새 아른거려 잠을 못 잤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아침 일찍 할머니를 뵈러 갔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무른 자두도 사갔다. 좀 잘 드셔야 회복할텐데.    

  

할머니 병실에 할머니가 안 계신다. 물어보니, 할머니 병실을 3층으로 옮겼다고 했다. 바뀐 병실로 가보니 8개가 넘는 베드의 노인 분들은 모두 경관식을 하고 소변 줄을 차고 계셨다. 다들 누워서 눈만 꿈뻑이고 계셨다. 지금 이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분명 이분들에게도 찬란한 시절이 있었겠지. 노인이 되면 병이 들고 이렇게 나약해지는 걸까. 나의 다리는 진흙을 달리는 마차처럼 느려졌다.

 

그런 고민도 사치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머니의 상태는 나빠져 있었다. 절망적인 할머니의 숨소리에 덜컥 초조해졌다. 침착하자. 할머니 앞에서는 티 내지 말자.


할머니는 누우면 숨쉬기 힘들어진다. 기도가 열리도록 침대에 앉아계셔야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있으면 얼마나 허리가 불편할까. 할머니 손을 만지며 할머니에게 내가 온 것을 알렸다. 숨쉬기 힘든데도 할머니는 자꾸만 말을 하려고 한다.


“아휴, 헤,헥…하이고. 여기 못 있겄다. 저년이 나한테 성질만 부리고.”

“할매. 저년이라고 하면 어떡해. 저 분이 할머니 보살펴주는데.”

“나, 나를…아주. 후, 여적 나한테 뭐라고 하고. 잡아 먹을라고 한당께.”

한 마디 제대로 뱉기 힘들어 하면서도 내게 불만을 토로하신다. 내 남은 숨을 할머니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 알았어. 그니까 일단 말하지 말아요. 숨차. 지금 말 더하면 숨차서 큰일 나. 응?”

나는 애원하듯 부탁한다. 할머니의 숨이 곧 넘어갈 것만 같다.

“후, 너는 헤……몰러, 후……”

“알았어……할매, 일단 말은 그만해요.”

그제 서야 할머니는 좀 말을 줄인다. 그렇게 나의 열을 빼야 수그러드는 할머니다.  


이대로 떠나지 않으시겠지. 전에도 할머니에게 이런 고비가 있었으니까. 곧 괜찮아지실 거야. 할머니의 고열이 내일이면 내려가실 거야. 그렇게 불안으로 뜨거워진 내 마음에도 해열제를 놓는다.     


다음 날 찾아가니 할머니는 조금 나아지셨다. 아주 조금이지만 숨 쉬는 게 편해지신 게 보인다. 간호사가 말하길 열도 조금 내렸다고 하셨다. 내 심장을 누르던 무거운 돌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았다.

“할매. 조금 괜찮아? 자두 좀 갖다 줄까?”

“자두 더 있냐. 후…좀 가져와봐.”

냉장고에 있는 자두를 꺼내 할머니 입에 넣어 드렸다. 할머니는 즙을 흘려가며 아주 맛있게 드셨다.

“할매. 얼른 나아서 집에 가자. 알았지? 그러니까 밥 잘 드셔야해.”

“밥도 잘 먹고 있어. 내 푸름이랑 같이 있어야지.”

“그래. 할매.”

할머니의 은빛 머리칼이 닳도록 쓰다듬었다. 할머니를 보면 그리 다양한 생각이 머리에 차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생각에 몰두했다.    


'할매, 조금만 참아. 할머니. 푸름이랑 다시 같이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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