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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빌어먹을 경관식

마주하기 힘든 순간을 견디며


다음 날도 할머니를 찾아갔다. 원래는 요양원에 할머니를 보러 일주일에 두 번만 찾아갈 수 있는데, 할머니의 병환이 깊어지고 일주일에 두번 이상 보러 가도 괜찮았다. 그거 하난 좋았다. 오늘은 오빠와 함께 갔다. 차 안에서 오빠와 할머니의 절망적인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명확한 해답도 없이 나는 눈물을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병실 문을 열자마자 할머니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그나마 잘 먹던 자두마저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경관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코에는 이상한 관이 끼여 있었다. 그 관을 통해 영양식이 들어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은 침대 양 옆에 하얀 천으로 묶여 있었다. 간호사에게 코에 낀 경관을 손으로 뺄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무력하개 가는 숨만 쉬고 계셨다.    

 

코로 무언가가 들어가는 이물감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이게 다 할머니를 위한 일이라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혼란스럽다. 어떤 느낌일까. 오히려 저게 더 할머니를 갉아먹는 짓은 아닐까. 할머니는 얼마나 저항하고 싶을까. 할머니는 시들어가는 수선화처럼 침대에 축 쳐져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두 눈을 가진 게 원망스러워진다.      


일전에 의사는 할머니의 연명치료나 경관식을 하겠냐는 의견을 물었다. 삼촌과 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분명 경관식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건만.'할머니를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거야. 왜…'. 나는 간호사에게 더 이상 할머니를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우린 분명히 말했지 않나. 아무래도 간호사에게 따져야겠다.     


“아니, 할머니, 경관식 안 하…“

눈물을 참으려 목을 쥐어 짜 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경관식 안 한다고 했었는데, 그랬었는데 왜 하시는 거예요?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어요. 제발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할머니 힘들어 하시는 거 못 보겠어요.‘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 말도 안 나온다. 간호사들은 사무적으로 날 바라봤다.

옆에 있던 오빠가 대신 말을 이어 준다.

“경관식을 안 할 수는 없는 건가요.”

“열을 내리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항생제를 써야 하는데 몸이 버티려면 이렇게라도 드셔야 해요.”

더듬더듬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준비한 문장은 끊어진 열차처럼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늘 두려워 하던 이별이란 놈. 그 잔인한 놈이 내 두려운 마음에 노크를 한다. 쾅쾅 두드리지만 나는 아무도 없는 척 숨고 싶었다. 이별이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때, 눈물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만하면 됐다고. 어서 가서 할머니의 얼굴이나 더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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