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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간절히 빌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게 아니라고 말해주길.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는지 전화가 온지도 모르고 잤다. 오빠의 부재중 전화 2통. 막내 삼촌의 전화 1통.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의 두려움이 현실이 됐다는 걸.


“여보세요…”

“응. 푸름아.”

“왜?”

왜 인지 알 것 같았지만 오빠에게 왜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게 아니라고 답해주길 바라면서.  

“지금 할머니 요양 병원으로 가자.”

“왜?” 아닐 거야. 제발.

“푸름아. 할머니…돌아가셨어. 얼른 짐 챙겨. 오빠가 데리러 갈게.”      


내가 땅이라면 밑으로 꺼져버리는 기분이 이런 걸까. 내가 하늘이라면 둘로 쪼개지는 기분이 이런 걸까. 내 얼굴이 모두 녹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 할머니가 젊은 나이의 여자였다면 나도 할머니가 죽을까봐 걱정하지 않았을 거다. 할머니는 늙어가고 있었고, 늙으면 죽음에 더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어떡하나, 그런 두려움에 악몽도 자주 꾸었다. 꿈에서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울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할머니에게 안기며 물었다.  

“할매, 죽으면 안 돼. 알았지?”

“어떻게 안 죽냐. 사람이.”

“할매, 죽으면 나 못 살아.”

“다 살게 된다. 살아지게 돼.”

철부지였던 나는 할머니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거라 생떼를 부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할머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나는 할머니와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걸 인정했다.      

“할매, 할매 죽으면 나 어떻게 살아?”

“뭔 소리여.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뭣허러 한디야.”

“할머니 없으면 나, 못 살 거 샅아.”

“다 살지. 살게 되있어. 남편이랑 자식 보면서 사는 거야.”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느꼈다. 우리 할매는 그렇게 살았구나. 나 보고, 우리 가족들 보고 한 평생을 살았구나. 할머니의 인생이 안쓰러웠다. 조금은 나를 만나 삶의 행복을 느끼길 바랐다. 내가 할머니를 만나 행복했던 것처럼.


할머니가 있는 병실로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애원했다. 무언가를 바라는 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저 나는 '제발'이라는 말만 되뇌었다. 복도를 지나 할머니가 있는 병실이 보였다. 내가 들어서자 간호사들의 걱정어린 눈빛이 느껴졌다. 병실에는 삼촌들과 외숙모가 계셨다. 그 모습을 보니 '제발'이라는 단어가 아닌 '할매'라는 단어만 생각났다.


할머니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하얀 이불을 걷어냈다. 어제도 너무 보고 싶던 할머니. 아주 곤히 잠에 드신 듯하다. 그 모습이 보기가 싫다. 깨우고 싶다.

"할매, 가지마. 일어나요...."

눈물을 참으려 내 몸의 얼마 없는 근육을 써야 했다. 역부족이었다. 눈물을 참을 수 없다면 울어야 했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렸다. 눈물을 참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알고 울부짖었다. 이별은 눈물을 참지도 울부짖지도 못하는 그 중간을 찾지 못해 왔다갔다 하는 괴로움이었다.


할머니의 따스한 품에 안겼다. 할머니 향이 난다. 28년이나 맡았던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향이다.

‘우리 조금만 더 안고 있자. 원 없이 안아 봤지만, 마지막이니 좀 더 안아보자.’


손으로 할머니의 팔과 얼굴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어쩜 이리도 작을까. 핏줄이 다 튀어 나올 정도로 마른 손목,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어깨, 내 손바닥 만한 얼굴. 조금만 더 흔들면 일어날 것 같은데. 좀 더 세게 깨우면 일어날 것 같은데. 커지는 안타까움에 할머니의 병원복을 움켜 잡았다. 어렸을 때부터 꾸던 꿈이길, 이 악몽에서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울다 지쳐 그 모든 바람이 부질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할머니의 영혼을 비추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우리 할매, 숨쉬기 힘들었는데. 이제 편하지 할매? 다행이다.'

내 몸에 저장된 할머니의 음성이 답해준다.

‘그래, 이제 개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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