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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압수당한 핸드폰

귀여운 영혼이 있어 행복했던 그때.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선 우리들의 핸드폰을 수거했다. 아침에 수거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돌려주었다. 당번은 아침마다 학급 친구들의 핸드폰을 모두 모아서 교무실에 있는 서랍에 보관했다. 언제나 그 법을 따르는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딴 짓을 하려는 몇몇 아이들은 핸드폰을 내지 않았다. 아예 휴대폰을 내지 않으면 선생님의 추궁을 피할 수 없었다. 꾀를 낸 아이들은 쓰지 않는 폐 휴대폰을 대신 냈다. 나도 몇 번 가짜 휴대폰을 낸 적이 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핸드폰을 찾느라 늦게 집에 가기 싫었다. 또 연락하고 싶은 이성 친구도 있었다. 이성친구 떄문에 폐휴대폰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폐휴대폰을 내며 간과한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속이기에 치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수업 시간에 책상 서랍 밑에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노푸름, 너 손 밑에 뭐야.”

“네?”

“서랍에 있는 거 가지고 나와.”

그때의 표현을 빌리자면 ‘찍 걸렸다.’ 하필 걸려도 악명 높은 영어 선생님에게 걸렸으니 말이다. 그 선생님의 별명은 '전광석화'로 선생님의 이름은 '석화'였는데, 수업시간에 핸드폰 하는 친구들을 빠르게 잡아 낸다는 것에 비유해 선생님을 '전광석화'라고 불렀다. 그 선생님은 핸드폰을 압수한 다음. 문자를 나눈 사람이 누군지 역추적하는 치밀한 분이셨다. 나는 물론이고 함께 대화를 나눈 친구도 뺏기는 건 시간문제였다.


다행히 함께 대화하던 친구는 걸리지 않고 넘어갔다. 담임선생님은 한 달 동안 내 핸드폰을 압수한다고 했다. 절망적이었다. 일주일도 아니고, 한달이나 핸드폰 없이 살라니. 핸드폰 없는 고등학생에겐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하나 좋은 건, 야자시간이 끝나고 집에 갈 때, 핸드폰을 찾느라 늦게 가지 않아도 되는 거. 그거 하나였다.  호감 있는 이성 친구와도 연락을 못 하니 애가 탔다. 할머니의 휴대폰을 빌리고 싶었다. 하지만 압수당한 사실을 알게 되면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질 거다. 나는 할머니에게 비밀로 했다. 얼마간은 잘 속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는 치밀한 사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가 휴대폰을 압수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할머니에게 왜 핸드폰을 수업 시간에 했냐는 잔소리를 한바탕 들어야 했다. 그렇게 이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보충 수업으로 영어 회화를 듣고 있던 오후 5시쯤이었다. 교실 앞문에 담임선생님은 수업 도중 나를 부르셨다. 나는 '또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닌데, 나 잘못한 거 없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선생님은 나를 혼내지 않으셨다. 선생님의 말을 듣자, 차라리 나를 혼나는 게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 할머니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선생님은 내게 오빠가 오고 있다고 하니 교실에서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오빠와 연락하기 위해 내 핸드폰은 돌려준다고 하셨다. 그토록 기다리던 핸드폰을 받았다. 그런데도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오빠가 데리러 오는 동안 나는 교실에 앉아 영어 회화 수업을 마저 듣고 있었다. 맨 뒷줄에 앉아 울고 있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내 옆에 앉아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때 내겐 눈물 참는 요령이 없었다. 그저 영어 회화 문제집을 활짝 펴 얼굴을 가리고 우는 수밖에 없었다. 영어 회화 선생님은 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위로해 주셨다.

“얘들아, 푸름이가 할머니가 아프셔서 많이 슬픈가 보다. 푸름아, 너무 걱정하지 마.”

"푸름아, 울지 마."

친구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영어회화 책을 더 크게 펼치고 얼굴을 감췄다.  

    

오빠와 함께 할머니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자꾸만 나쁜 상상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크게 아픈 건 아닐까. 나 대학교 가서 결혼하는 것도 봐야지. 아직 가면 안 되는데. 빨리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 싶었다. 할머니의 얼굴을 봐야 안심이 될 것 같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응급실에 들어서자 할머니는 파란 담요를 덮고 누워계셨다. 퍼런 핏줄이 적나라한 팔뚝에는 링거바늘이 꽂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할매, 하고 불렀다. 내 울음과 반대로 할머니는 아주 경쾌하게 나를 반기셨다. 까맣게 타는 내 속도 모르고 할머니는 말갛게 웃었다.

“어, 왔냐? 내가 너 핸드폰 돌려받게 해주려고 일부러 쓰러진 척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기지로 손녀의 뺏긴 핸드폰을 다시 찾았다며 흡족해하셨다.     

나는 그 말에 화가 나다가, 이내 할머니 무릎에 파묻혀 울었다. 당신 건강보다 핸드폰을 생각하는 그런 할머니라니. 나는 그런 거 하나도 필요 없다. 그냥 할머니만 건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겐 할머니가 무엇보다 소중했다. 병원의 하늘색 담요는 내 눈물이 흡수되지 않아 내 얼굴은 눈물범벅이 됐다. 그런 나를 보고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은 듯 호탕하게 말했다.

“뭘 운다냐. 내가 죽었냐. 참말로.”      


이제는 내 핸드폰을 뺏을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빼앗긴 내 핸드폰을 찾아줄 귀여운 영혼이 있던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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