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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6. 2019

어딘지 모를 그 어딘가에 있을

분명히 존재한다고, 그래서 외롭지 않다고.

평소처럼 화장실과 주방과 같은 곳에 나타날 것 같은데. 할머니의 굳은 살 배긴 발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를 내며 내 옆에 올 것 같은데. 집에는 내 인기척 외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28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내 곁을 떠나가셨다. 작은 신호라도 주고 떠나지, 마지막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못내 한이다.   


밥을 먹고 바닥을 쓸고 집을 청소한다. 그렇게 해놓고 울어야 조금은 덜 처량하다. 저녁이면 잠보다 슬픔이 찾아왔다. 할머니와 누워 지내던 이곳에 이젠 나 혼자다. 엄마도, 할머니도 없다.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어린시절 홍수가 나면, 우리 할머니도 떠내려 가는 게 아닐까 미련스런 걱정을 할 때보다 다 덜 슬펐다. 수학여행을 가서 할머니가 혼자 있을 생각에 걱정하는 것보다 지금이 낫다. 손수건보다 이불에 눈물을 적시는 일이 많았지만, 괜찮았다. 지금은 할머니가 고통스럽지 않으니까.


만약 한번만 내 앞에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화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상상한다. 전화를 해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 전화는커녕 꿈에도 잘 나오지 않으신다. 얼마 전에 꿈에 나온 적이 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났다. 기억이 안 난다니. 그렇게 그리워한 할머니 모습인데, 할머니인데. 그 기회를 날린 게 너무 아까워서, 아쉬워서 또 울고 말았다.


그 무렵 나는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안에 과학적인 말과 어우러진 희망은 나의 외로움을 진정시켜주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너무 슬플 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려 보라. 그의 몸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


죽은 사람은 형체가 흩어져 하나의 원자가 된다. 흩어진 원자는 사라지지 않고 다시 우주와 지구를 떠돈다. 이내 새로운 물질과 결합해 우리 곁에 있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면 할머니와 엄마는 내가 걷고 있는 울창한 숲에 일부분이 되었을 수도 있고, 푸른 바다에 시원함이 됐을 수도 있겠다. 또 구름에 흘러들어가 비가 되어 내 어깨에 찾아올 수도 있겠지. 아니, 더 멀리 우주로 날아가 별의 한 부분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내 삶속에 조금씩 흩어져 나와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한없이 파고들던 쓸쓸함도 아주 작은 단위로 뿔뿔이 흩어져 우주로 날아간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뜬다. 사람들과 고민하고,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할머니가 그립다고 이야기도 한다. 여전히 밤이 되면 슬퍼지지만, 그 모든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받아들인다. 어딘가가 아닌, 내 모든 곳에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웃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


사랑하는 이가 이 지구에 남기고 간 위대한 사랑을 내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 분명 어딘가에서 나를 있는 힘껏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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