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노을 빛이
세 평 남짓 나의 방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오리잠에 잠이 드니
우리 할머니가
내 침대에 찾아왔다
트레이드마크인
브로콜리를 꼭 닮은
백발 성성한 파마머리
여전히 사랑스럽구나
장을 보고 집에 온 사람처럼
내 옆에 편안하게 앉아있다
곧 떠나야 할 채비도 없이
내 옆에 앉아있다
어디 안 갈 것처럼
평온하게 앉아있다
할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 떠날까
조급하지 않게
불안하지 않게
얼마 만일까
언제 떠날까 걱정 없는
이 느낌
누구에게 절을 하면
당신과 함께하는 이 시간을 늘려줄까
오후의 빛살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현실의 오후와 꿈의 경계가 사라지고
눈 앞에 사랑이
허망한 상상이 아니길 바라본다
덧없는 그리움과
반가운 욕심에
오후와 꿈은 두 개로 쪼개지고
창문에 검은 밤바람이 들어온다
혼자 남겨진 서러움에
꿈에도 찾아오지 말라고 했던
손녀딸의 모진 말 들었나
내 한 걸음이
당신 스무 걸음
갈 길이
스무배는 될텐데
마음 고된 날
그리움을 쏟아내는
손녀딸이 마음 쓰여
길 잃으면 어쩌나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두고 온 손녀딸 걱정스러
그 좋은 곳 못 가면 어쩌나
여기서 내 눈물 보고 있으면
어쩌나
소매춤으로 눈물을 닦으며
얼른 가라고
손을 휘휘
휘휘 저어본다
난 괜찮으니
부디 발길 돌리지 않길
부디 걸음이 무겁지 않길
낡은 당신 무릎
가서 주물러 줄 수도 없으니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
무딘 손으로 주물러 줄게
당신은 그곳으로 잘 당도하고
나는 그곳으로 잘 찾아가길
그렇게 기다리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