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진 공간을 회복으로 채우는 간소함의 행복
딴 길 새기 만재 ADHD 환자를
미니멀리스트로 만든 생활 백서
무조건 줄이기만 하는 미니멀리즘이 아닌,
취향도 지키고, 정리도 간편한
ADHD 맞춤 정리정돈법
나를 어지럽히는 산만함에서 벗어나
덜어내고, 선택한다!
비워진 공간을 회복으로 채우는
간소함의 행복
ADHD 병명을 듣고, 유튜브로 ADHD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여러 국가의 치료 방법을 소개해 주었다. 특히 캐나다는 ADHD 환자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지원이 많다고 했다. 지원 정책에는 심리 상담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심리 상담사는 한 ADHD 환자에게 '수납'을 권고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나이가 지긋한 ADHD 환자의 집에는 수납장이 빼곡했다. 그 수납장에는 각각의 네임택이 붙어 있었다. 카드, 청구서, 키, 클립 등 그 개수가 굉장히 많았다(집안 한쪽 벽면이 수납장이었다). 그 환자는 이 수납 방법이 자신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인터뷰했다. 항상 어디다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탓에, 작년까지만 해도 재발급 받은 카드만 10개가 넘는 나로서는 신박한 방법이었다. 어쩌면 이 작은 생활의 변화가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쓴 건 제자리에 둬라'라는 잔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내 대꾸는 같았다.
"이따가 또 쓸 거예요."
이따가 또 쓸 거라는 말은 진심이었지만, 다시 쓴 적은 잘 없던 것 같다. 대부분 그 가위를 다시 쓰려고 하다가, 다른 일에 휩쓸려 가서 그 가위의 존재를 잊어버리기 상책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이 특징은 '집중력, '주의력'의 문제와 연관되어 보이지만, 자세히 알아보면 그렇지 않다. 집중력은 스위치를 언제 끄고, 다른 일로 변경할지 지속하는 능력이라면, 이렇게 내가 쓰던 가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내가 꺼야하는 스위치와 켜야 하는 스위치 등 스위치의 상태를 기억하는 능력과 관련있다. 이를 바로 '작업 기억력'이라고 한다.
작업 기억력은 감각 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잠시 머릿속에 붙잡아 두었다가 필요에 따라 인출하고 조합하는 정신 기능으로, 단기적으로 뇌에 잠깐 저장하고, 빠르게 다시 활용하는 인지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을 활용하여 추론이나 학습을 하고, 복잡한 문제 해결을 수행한다. ADHD는 이 작업 기억력이 결함되어 있어, 잠깐 저장하고 다시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주차장에 주차한 위치가 'A16'이라고 확인하지만, 신나게 쇼핑을 하고 난 뒤에 '어디다 주차했지'라며 찾아다닌다. 방금 뭐 하려고 했었지? 하며 뒤돌아 보지만,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럴수가 있나?'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ADHD는 머릿속의 메모장이 다른 사람의 비해 작기 때문에 그 메모장이 순식간에 다른 일로 채워진다. 그것도 우선순위가 한참 낮은 쓸 데 없는 생각들로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뇌는 A4 용지 정도라면,
ADHD 환자인 내 뇌가 쓸 수 있는 메모장은 포스트잇이다.
또 작업 기억은 구조화와 조직화에도 관여하는데, 이와 관련된 처리를 청킹(Chunking)이라고 한다. 청킹은 여러 정보를 하나로 묶는 처리를 말한다. 만약 핸드폰 번호가 '010', '0000', '1111' 라고 누군가 말했을 때, '핸드폰 번호는 3-4-4 구조로 이어져 있네.' 라고 각각의 '숫자'를 한 덩어리의 '번호'라는 패턴을 인식해야 하지만, ADHD에게 입력되는 정보가 많아지면, 과부하 생긴다.
나는 이런 결함은 도대체 원인이 뭘까 궁금해 져서 한번 찾아봤더니, 원인은 역시나 '뇌'에 있었다. 조직화와 구조화를 관장하는 기능을 가진 전전두엽 배외측 부위(DLPFC)가 저하된 ADHD는 정상적인 사람들보다 정보 저장 공간이 작고, 처리하는 CPU가 성능이 부족한 것이다. 그로인해 한번에 과도하고, 복잡한 정보에 압도당하게 된다. 결국 머릿 속에는 미처 집을 찾지 못한 정보들이 부유하게 된다.
나만 봐도, 어린 시절 늘 수학을 못하는 학생이었다. X로 왜 치환해야 하는지, 왜 그래프로 나타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념화가 어려웠던 것이다. 또 인지 심리 검사를 할 때, 임상 심리사가 불러주는 숫자를 기억한 후에, 거꾸로 말하는 테스트도 참 어려웠다. 임상 심리사가 숫자를 읊는 순간 머리로 몰렸던 피가 한순간에 쫙 빠지고, 그 후엔 새하얗게 변했다. 임상심리사가 불러주는 숫자가 4개까지는 괜찮았지만, 5개 이상 말하려니 마치 머리가 베베 꼬이고, 지끈거렸다. 그야말로 '두뇌 풀가동'. 안간힘을 내어 내 머리에 새기려 노력했다. 하지만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내가 꾹꾹 눌러 써 놓은 숫자를 지우개로 지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의 미니멀리즘> 작가 야마시타 히데코(やました ひでこ)
이 작업 기억 결함과 주의력 결핍이 만나면 '멍 때리기', '깜빡하기' 등 다양한 실수를 유발한다. 흔한 예로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이 방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린다. '이 사람 말은 지루해'라며 의도적으로 무시한 게 아니다. 열심히 새겨 듣고 있지만, 몇 가지는 저장되지 않는다. 별표 다섯개여도 상관없다. 만약 ADHD가 딴 생각에 빠진 상태라면, 왕이 한 말이라도 기억할 수 없다. 상대방 입장에선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ADHD 환자에게는 그저 '음성' 정도일 뿐이다.
이런 증상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상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나, 서운함을 주는 일이 많아지고 ADHD 학생들은 자아상이 흐릿하다. 또 사회를 배워나가는 청소년기에 부정적인 피드백이 쌓이게 되고,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도파민 부족으로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머리에 새기지 못하는 문제, 작업 기억 결함으로 여러 정보를 카테고리별로 분류하지 못하는 문제 등 이런 증상은 단순히 기억력이 나쁘다는 것을 넘어, 기억한 것을 다시 내 방식대로 조합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준다. 최소한으로 구성된 환경 안에서 충족감을 얻는 '미니멀리즘'을 ADHD가 만들기에는 쉽지 않다.
있어야 할 자리를 조직화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청소도구를 베란다에 넣을지, 아니면 침실 옆에 둬야 할지, 거실에 둬야할 지 조차 결정하기 어렵다. 그 결과 청소도구의 자리는 정처 없이 떠돌게 되고, 정리가 되지 않고, 너저분한 생활이 이어진다. 그런 ADHD에 맞는 미니멀리즘이 더욱 절실하다. ADHD의 작업기억의 결함, 주의력 결핍을 보완하고, ADHD도 실천하기 좋은 ADHD 맞춤형 미니멀리즘이 필요한 이유다.
이 글을 쓰며 '결핍', '결함' 이라는 단어를 남발한 데 죄책감과 '이게 최선의 단어일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글을 읽는 ADHD 환자들에게 절망만 남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내가 좋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걷는 듯 천천히>라는 에세이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걷는 듯 천천히> 중
이 문장을 공유하며, 두 가지를 믿어 주길 당부드리고 싶다.
결핍은 가능성이라는 것과 자기 자신 이 두 가지.
- 다음화_ 4편 약속 시간 보다 1시간 일찍 준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