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에 대하여

뒤늦은 슈퍼스타 K 후기

by 임요세프

주변을 살펴보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평생 자기의 재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똑똑함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유시민은 최신작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 자신이 전형적인 문과생임을 밝히면서, 수학과 과학 공부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남보다 잘하기 어려움을 솔직 고백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한 명인 빈센트 반 고흐도 자기 능력을 잘 알지 못한 채 평생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유명인들도 숱하게 좌절하고, 불안할지 언대,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분명 공부하는 절대적 시간은 나보다 훨씬 적은데도 항상 나보다 우수한 성적을 내는 친구들이 있었다. 수학 문제를 풀더라도 <수학의 정석>에 나오는 정답과 문제 풀이 방식이 아니라, 본인만의 알고리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내던 친구가 기억난다.


비단 공부뿐만이 아니다. 틈날 때마다 친구들과 농구를 했다. 마이클 조던과 허재는 학창 시절의 슈퍼스타였다. '우리 동네의 허재'가 되고 싶어 농구에 푹 빠져 지내던 시간이 있었다. 타고난 운동신경이라는 것이 개인차가 있음을 알면서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틈날 때마다 집 뒤편 학교에서 드리블과 슈팅을 연습했다. 하지만, 농구 시합을 할 때면 나는 늘, 그저 그런 후보 선수에 불과했다. 나보다 두 배는 족히 될 만한 점프력과 민첩한 움직임, 빠른 손놀림을 보유한 친구와는 도저히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공부든 운동이든 노래든,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실력은 향상되기 마련이다. <1만 시간의 법칙>, <10년의 법칙>이라는 상식으로 통용되는 법칙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꾸준함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로 보답한다. 1등은 못 되더라도 4등은 할 수 있고, 베스트 5에는 못 들더라도, 식스맨의 자리는 주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당초 내가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게 아니라면, 오랜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일만 지속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불안하고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 내에서, 조력도 받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실력의 차이를 극복하고 최고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노래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음악을 직업으로 삼아 평생을 살아가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의 숫자도 많다. 꾸준한 노력과 배움으로 최고의 가수, 또는 뮤지션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본인 스스로는 혼(魂)을 다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음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그게 현실이다.


과거 수년 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슈퍼스타K>를 봐도 그러했다. 저마다의 개성과 특기로 무장한 도전자들이 <TOP 10> 생방송 경연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시청자 입장에서 유난히 응원하는 도전자가 생기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참가자들이 그 대상이었다.


특히, 음악을 취미가 아닌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무명의 음악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 열정이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만 대 일의 경쟁을 이겨내고, 단 한 명의 슈퍼스타로 선택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확률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탁월하다는 것은 남들보다 두드러지게 뛰어나다는 뜻이다. 경쟁사회에서 비교는 불가피하고, 탁월한 사람이 대개의 경우 선택받기 마련이다.


일찍이 플라톤탁월함에 대하여 ‘짜임새 있는 배열과 올바름, 그리고 기술’의 결과물이라고 설파했다. 기원전 고대 그리스 사회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비교와 경쟁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고, 플라톤에 따르면 탁월하다는 건 올바른 마음가짐, 꾸준한 노력, 게다가 선천적인 능력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추어야 가능하다니,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도전에 대한 의지가 불타오르다가도, 눈앞의 높은 경쟁률과 심사위원의 비수를 꽂는 한마디, 그리고 선천적인 천재성을 갖춘 경쟁자를 만나기라도 하면, 주눅이 들고, 포기하고 싶어 진다.


심사위원 이승철은 유난히 타고난 재능을 중시했다. 수많은 참가자가 그의 독설에 아파했고,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는 그의 냉정한 평가를 수용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절치부심했을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고, 언제나 반전의 주인공은 있기 마련이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훌륭함과 달리, 특히나 예술 분야에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축복받은 운명자들”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메논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와 플라톤의 생각은 달랐다. 왜냐하면 앎이란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감각적 지각’이 있는 반면에, 주입식 가르침이 아닌, 이미 타고나기를 스스로 깨우쳐 배우는 ‘지성에 의한 앎’으로 구별되고, 이 두 번째가 더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순수사유에 의한 직관>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배움이라는 것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서가에서 책을 한 권, 한 권 빼어내서 읽어나가는 것이고, 따라서 탁월함이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이루는 것이라 했으니, 이 얼마나 잔인한 분석이란 말인가!


메논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고 싶지만, 위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고, 냉정하게 스스로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무엇인가에 미치도록 집중하고 열중해서 해 본 일이 있느냐고 자문해 봐도, 선뜻 고개를 끄덕일 자신은 없다.


선천적인 능력은 차치하더라도, 살면서 꾸준한 노력과 정성스러움도 갖추지 못했기에, 확실히 탁월함이란 나의 지나온 인생에는 적합하지 않은 단어다. 화가 난다고 해서, 과거를 되돌릴 수도, 내 탁월함을 인정해 달라고 소리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선, 지금부터라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지금 하는 일이 둘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즐길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제 남과 비교하려는 생각,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경쟁심을 최대한 버려야 한다. 탁월해야 한다는 생각을 떠나보내야 한다.


나는 마흔 살이 될 무렵, 받아들이기 힘든 시련을 겪고서야 나를 되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그 후로는 과한 욕심과 이기심, 그리고 상대적인 콤플렉스가 조금은 극복되는 느낌이다. 생활인이자 사회인으로서 내가 할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은 생각보다 크다. 또한, 그동안 최소한 내가 노력하거나 그 노력에 준하는 만큼의 결과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IQ 100이라는 평균적인 지능지수, 평균 수준의 노력을 기울이고, <사법시험 합격>과 같은 '탁월'한 결과를 기대해 왔던 것은 아닌지, 상장기업의 재무제표 분석도 하지 않고, 주식 대박의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뼈저리게 반성하게 된다.


버스커 버스커의 장범준1등이 되지 못했지만, <벚꽃엔딩>이라는 불후의 명곡을 만들어 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심사위원 이승철로부터 가창력이 아쉽다는 평을 줄곧 받았지만, 그가 음악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TV 화면 너머로도 그대로 전달됐고, 그는 다른 방식으로, 끝까지 노력했다.


벚꽃엔딩의 멜로디와 가사는, 그야말로 즐기는 자의 결과물이다.


이처럼 기대 이상의 결과는 탁월함에 대한 콤플렉스를 떠나보낸 후에야 찾아오는 것일지 모른다. 두드러지게 뛰어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일, 행복한 일을 찾아내고 거기에 집중하면 된다. 행복감은 누군가와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기분이 아니다.


차라리, 탁월함을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할 일이다. 적당히 내려놓고, 차선의 결과에 만족하며, 또 다른 도전을 지속하면서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달성해 나가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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