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도전은 무한히 인생은 영원히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유재석과 이적이 함께 부른 말하는 대로 노랫말 중 일부이다.
맘먹는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어느 이십 대의 희망가로, 많은 인기와 공감을 얻은 명곡이다. 젊은이들의 멘토로서도 손색이 없는 두 사람이 진정성 있게 이 노래를 불렀을 때, 감동하지 않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저 노래의 가사는 이십 대들 만을 위한 희망가로 들리지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삼십 대에게도, 사십 대에게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 보라고, 그러면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될 거라고 응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갖가지 이유로 꿈꾸기를 포기하는 데에 익숙하다. 나이 탓, 체면 탓, 현실 탓 등등. 그런데,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신감이 부족하기에 핑계를 대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자신감 부족의 이유를 냉정히 생각해 보면, 편안함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 혹은 스스로 삶에 만족스러움을 억지로라도 강요하려는 마음 때문은 아닐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레 꿈꾸기를 포기하고, 익숙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꿈을 이루는 사례들은 많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해서 상을 타고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그의 꿈을 모르는 친구들이 없었을 정도로 그는 구체적으로 그의 꿈을 생각하고, 말했으며, 결국 이루어 냈다.
화가로서 명예와 부를 다 거머쥔 피카소도 10년이 넘는 긴 무명 시절 동안 성공한 자기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나는 그림으로 억만장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녔으며, 꿈을 이루었다.
너무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공감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곰곰이 나의 과거를 회상해 본다. 특별한 꿈도 꾸지 않고, 편안함만을 쫓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나에게도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마법이 펼쳐진 적이 있다.
대학교 재학시절, 군 제대 후 2학년 가을학기로 복학할 당시의 일이다. 사립대라 등록금이 만만치 않았다. 과외, 학원강사, 배달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어도 모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고, 부모님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손 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최소한 2년 시간 동안 등록금을 비롯해 책값, 하숙비, 생활비 등을 마련해야 한다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했다. 그때는, 심지어 학교를 그만두고 얼른 장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장학금을 받거나 목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절실하다 보니, 혼자서 생각만 하지 않고, 친구들에게는 과외 일자리를 계속 부탁했고, 조교 아르바이트도 신청했으며, 경영대 행정실에는 장학금을 신청했다.
무모했다. 하지만, 당장 등록금 납부 시한은 다가오는데 돈이 부족하니 절박함이 생겼고,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매일 학과 행정실을 찾아갔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분명히 장학금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시험을 잘 보았어도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가 해 봤자 성적이 얼마나 나오겠어’, ‘난 다른 친구들보다 머리가 나빠서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을 거야’, ‘공부는 하겠지만, 내가 그 대학에 가기는 쉽지 않을 거야’.
사실, 지금도 긍정적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때는 정말 부정적인 학생이었다. 나름은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도 꽤 좋은 편이었고, 주변의 기대도 컸지만, 내 안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결국, 난 내가 생각하고 말하던 대로, 애당초 원하던 대학 진학에는 실패했고, 한동안 실의에 차 있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부정적인 생각과 말들은 한동안 지속됐다. 학과 공부에도 집중하지 못했고, 괜히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만 한 채 시간을 허비했고, 쫓기다시피 군대에 다녀오게 되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고, 절박감도 없으니,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다가, 등록금 문제가 눈앞에 닥친 것인데, 아무튼 그 순간에는 문제해결에 대한 절실함이 컸고, 여러 가지 해결 방법들이 떠올라, 나는 생각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매일 학과 사무실에 찾아갔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행정실 남자 직원분이 이제, 내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도 기억해 줄 정도였다.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학점은 아니지만, 나의 학점 정도면 어떤 식으로든 장학금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없는 돈에 음료수도 사서 가고, 청소도 하고, 눈 내리는 날은 아침 일찍 학교로 가서 행정실 직원들 사이에 끼어 눈도 치웠다. 그러던 중 직원분을 통해, 성적 장학금 말고도 다양한 장학금제도가 있고, 그것은 학과 행정실에서 주관한다는 말을 들었다. 예감이 좋았다.
어느 날, 행정실 직원분으로부터 <XX 그룹 문화재단 장학금> 소식을 전해 들었다.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 싶어서, 장학금 신청 지원을 했고, 몇 명의 경쟁자들이 있었음에도, 결국 그 장학금을 받게 됐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생각하고, 말해서 이루어 낸 것은 그때가 평생 처음이었다. 덕분에, 나는 2년간 XX그룹의 장학생으로 등록금을 전액 지원받았을 뿐 아니라, 매 학기 만찬 자리에 초청되어 부회장님을 비롯해 회사의 주요 임원들로부터 좋은 이야기도 듣고, 많은 격려까지 받으며,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니,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대학교 졸업하기 전, 의미 있는 기록 하나쯤은 더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을 써보기는커녕, 통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음에도, 모 경제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대학생 경제 논문대회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정말이지, 아는 건 쥐뿔만큼도 안 되는데, 경제학 분야 논문을 써서 출품한다는 게, 낯부끄러운 일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래도, 여기저기 말을 해 놓은 게 있어서, 끝은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이미 CPA 시험에 합격한 친구들도 있고, 통계 분야 고수들도 많이 있었던 터라, 자존심 다 내려놓고, 기본적인 내용부터 물어 물어가며, 어렵게 논문을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결과는, 놀랍게도 우수상 수상, 상금은 무려 300만 원이었다. 내게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고백하건대, 논문의 수준은 정말이지 볼품없는 수준이었다. 다만, 해당 경쟁부문의 지원자 수가 많지 않았고, 그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현실적인 주제 의식이 담겨있었다는 주최 측의 설명이 있었다.
무모한 도전이 낳은 행운의 결과였다.
고등학교 시절, 서울대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꿈을 말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대 진학에 성공했다. 신기한 것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성적이 최상위권이 아니었음에도, 말하는 대로 그 꿈을 이룬 친구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수능시험을 치던 그해가 아니더라도, 재수, 삼수해서라도, 결국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사례를 많이 보았다.
공부에 별 취미가 없어 보이던 내 친구 K는 회계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친구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하고 다녔다. 모 지방대 회계학과에 진학했는데, 결국 재학생 최초로 회계사가 되었고, 지금 행복하고 풍족하게 잘살고 있다.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던 친구 Y는 검사나 변호사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당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모 사립대 법학과에 진학했고, 현재 변호사가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끔 나한테도 맛있는 밥과 술을 살만큼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
술 마시고, 연애하고, 노는 데만 열심인 것 같았던 친구 K도, 대학교수가 되겠다던 호기로운 꿈을 이루었다. 그는 재수를 했지만, 말하던 대로, 결국 서울대에 입학했고, 지금은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일반적인 학생들과는 남다른 행보를 보이던 Y는 매일 돈, 건물 이야기만 하더니, 40대 초반에 상업용 건물 2채의 주인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J는 마흔 살까지 일반 직장인이었다.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교수가 되고 싶다며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내가 본 가장 무모한 도전이었다. 퇴직금과 전세자금으로 학비, 가족들 생활비를 충당해 가며 4~5년을 버티는 것을 지켜보았다. 학위 과정의 시간은 생각보다 더 길어졌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교수가 되기 위한 경쟁은 계속됐다.
전국을 다니며, 시간강사를 하면서도 그는 긍정적인 말을 계속했다. 잘될 것이라고. 결국, 그는 재작년부터 서울의 모 대학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꿈꾸던 변호사가 되기 위해 회사 사표 내고 마흔에 로스쿨 간 친구 S(변호사), 언론사와 로스쿨 시험에 줄곧 낙방했음에도 법조인이 되겠다며 40대까지 계속 도전한 후배 P(판사) 등 다소 늦은(?) 나이에 꿈을 이룬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실제로,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꿈이 이루어지니, 믿지 아니할 수 없다!
회사에 입사한 후,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간절함도, 노력도, 꾸준함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방 발령이 났다는 핑계로, 업무에 소홀했고, 선배들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도 부족했다. 그러면서도, 노력 이상의 결과치를 원했고,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면, 회사 탓 남 탓만 했다.
부정적인 생각과 말들을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나의 아내는, 틈날 때마다 좋은 말, 좋은 생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아직도, 내가 완전히 탈바꿈하진 못했다는 증거다.
그래도, 긍정적인 말과 행동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임이 자명하다. 경제적 소득 창출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을 무렵, 금융공기업의 관문을 넘었다. 서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현명한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고, 자녀 둘을 낳아 살고 싶다는 생각도,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너무 늦은 나이 아니냐고, 피곤하게 살지 말고, 회사나 잘 다니라는 주변의 만류, 아니 핀잔도 종종 들었지만, 그냥 내가 원하던 바를 성취하기 위해 석사학위, 박사학위에 도전했고, 끝을 보겠다는 집념으로 버텨, 결국 학위를 취득하는 데도 성공했다.
물론, 여러 차례 위기와 우여곡절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고비를 넘어서는 건, 피할 수 없는 인생 디폴트 값이다.
좋은 결과를 냈던 일들은 모두,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꾸준하게 하는 것이었다. 남들의 비판, 비아냥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생각의 힘은 강하다. 또한, 그 생각은 말과 글로 표현되는 즉시 강한 에너지를 내보내게 된다. 무엇보다, 본인은 말하던 바를 성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구체적이고 선명한 꿈을 꾸고, 꾸준하게 노력하면,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행여 꿈이 실현되지 못하면 또 어떤가. 난 분명히 그전과는 다른 사람, 한층 더 능동적이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고, 꿈꾸던 모습에 한 발 더 다가서 있을 것이다.
꿈꿔서 손해 볼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