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발령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
마흔두 번째 인사발령문
입사한 지 21년이 됐다. 매 6개월에 한 번씩 인사발령문서가 시행되었으니, 공식적인 인사발령만 마흔두 번을 경험한 셈이다. 물론, 내가 늘 당사자였던 건 아니지만, 인사 시즌만 되면 여전히 콩닥콩닥 심장이 뛴다.
계절의 순환처럼, 때 되면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일일 뿐인데, 인사발령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 긴장감이 큰 걸 보면, 내 인생이 오롯이 회사에 저당 잡혀있는 것 같아, 간혹 서글프기도 하다.
인생은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의 연속임을 알고는 있지만, 막상 예상치 못한 인사발령의 당사자가 될 때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사실, 이동 및 승진 인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건, 오직 회사만 바라보며 살고 있단 반증(反證)이기도 하다.
나를 회사형 인간으로 한계 짓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남들보다 특출 난 주특기가 없으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회사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물론, 회사도 그걸 모를 리 없다.
누구나 회사의 인사발령이 자기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이고 싶을 것이다. 직장 다니려고,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없다.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감, 실력, 그리고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
한 업무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아 회사가 함부로 이곳저곳 보내지 못하는 인재가 되든지, 재테크에 성공해서 조기에 은퇴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아이템을 찾아 독립(창업)하는 것도 좋다. 전문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각종 자격시험에 합격해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할 수도 있다. 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
다양한 선택지들이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편안함만 추구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내 얘기다. 그러면서도, 내 역량과 성과, 평판에 비해 회사에는 더 나은 처우를 원했었다. 자기 객관화가 덜 되었던 거다.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그동안 참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어찌 보면, 남들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경험들이기도 하다. 인사발령문에 내 이름이 오른 횟수는 최소 15번 이상,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한 선배, 동료, 후배 직원들 수만 어림잡아도 3백 명은 족히 넘을 터다.
그네들과 미운 정, 고운 정 쌓으면서 청주, 군포, 안양, 서울, 대구, 고양, 충주 등 전국 각지에서 근무했다. 써놓고 보니 거의 전국 팔도 유랑이다.
사람 때문에 힘들었고, 사람으로 행복했다. 특히,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지방에 근무할 땐, 함께 근무하던 사람의 영향력이 참 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반면, 다른 이들로부터 오해받거나, 미움받을 때면, 또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갱신되는 단기적 업무 성과에도 과하게 몰입했었다. 성과평가 결과가 급여, 이동, 승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대 해석해 쫓기듯 업무에 임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불과 몇 년 전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당시 받았던 성과평가 결과치는 당연히 기억 저편에 있다. 비단, 내가 나이 들어가고, 기억력이 감퇴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데 에너지를 쏟았던 거다.
물론, 회사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동료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일은 중요하다. 사람은, 그가 하는 일과, 그가 만나는 사람, 그가 먹는 음식으로 결정된다고도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 무게 중심을 잡고 사는 일이다. 어느 곳에 발령이 나고, 누구를 만나 어떤 업무를 하던 간, 제 인생의 목표를 체계적으로 설정하고, 그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중간점검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업무에만 매몰되는 우(愚)를 범하지도,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받는 일도 줄일 수 있다.
누구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따위는, 과정일 뿐이다. 물론, 나도, 순간을 영원으로 잘못 해석하고, 일과 사람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었다. 무엇보다, 열정과 시간을 가족들에게 더 쏟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내팽개칠 만큼 중요한 일 같은 건 없었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때, 만약 퇴근 후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을 꾸준히 했더라면, 이미 출간작가가 되어 글쓰기 특강 또는 강의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학원 동기 혹은 지도교수님과 함께 논문을 계속 썼더라면, 지금쯤 대학에 출강하거나, 대학교수 또는 연구원으로 제2의 삶을 살 수도 있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잦은 인사발령과 이동 근무가 내 삶에 좋지 않은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다. 다른 집 가장들은 퇴직한 후에야, 가족 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걸 후회한다던데, 난 그걸 좀 더 빨리 깨닫고, 이제라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체득하고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래 볼 사람, 빠르게 손절할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혜안(慧眼)도 생겼다. 본래의 업무도 사람 만나서 조사, 평가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물론,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속아주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매력적이다.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여, 입은 닫고, 귀와 지갑은 최대한 열어둔 채 나이 들어가는 건 멋진 일이다. 모름지기, 통장 잔액 규모와 마음 씀씀이는 비례한다는 게 통설(通說)이다.
멋과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욕심이 과한 사람, 적개심을 드러내는 사람, 남을 속이려는 사람은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인간관계라는 게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문제를 낳는다. 적당한 거리 두기는 상대방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받을 일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실망감을 안길 가능성도 낮출 수 있다. 수백 명의 사람들과 인연 맺기, 관계 끊기를 반복한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우리는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들 있지만,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개별 인간의 행복(幸福) 총량, 불행(不幸) 총량은 결국 비슷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즉시 인출 가능한 예, 적금 보유액만 수백억 원에 이르는 사업가, 상속 부자,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젊은 CEO들을 고객으로 만나보았다. 그와 동시에, 받을 어음의 부도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난 기업인, 직원의 사기/횡령/배임으로 무너진 회사의 대표, 작업장 인명사고로 구치소에 수감된 CEO에 이르기까지, 불운하기로 치면 둘째 가면 서러울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보았다.
성공한 기업인들은 지금의 행복을 만끽하지 못한 채, 누군가 자기네 회사를 해코지할까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본인 포함,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벌이는 장사마다 잘 안되고, 평생 배우지도 못해, 신세 한탄을 입버릇처럼 되뇌던 나의 부모님도, 늘그막에는 손주들 커가는 모습 보면서, 웃으며 노년을 만끽하는 중이다. 더 잘 모셔야겠다.
하루 세끼, 기름지고 비싼 음식만 먹으면, 건강만 나빠질 뿐이다. 통장에 돈은 없더라도, 하루 한두 끼, 가족들과 작은 식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식사할 수 있다면 만사 오케이다. 적당한 공복감이 장수의 비결임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신이 있다면, 신은 분명히 인생의 수레바퀴를 계속 돌려, 우리에게 기쁨과 시련을 반반씩 섞어서 경험케 하리라 믿는다. 또한, 누구나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겪는다고도 믿는다. 따라서, 누구든 불운이 자신에게만 일어난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서는 안 될 일이다.
조금은 무심한 마음으로, 마흔두 번째 인사발령문을 열어 보았다. 직원의 이름은 붙임의 엑셀 파일 한 칸으로 공지될 뿐이지만, 발령 공지는 당사자의 인생을 뒤흔드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든, 3일 내 서울 마포에서 경남 진주로 이동 후 근무하라는 명령문을 받아 들고,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 괜스레 있는 게 아니다.
이번 공고문에 내 이름은 없다. 지점장님은 직무를 다하고, 지원 업무 군으로 편입되었다. 30년 이상의 재직 기간 동안, 지점장 생활은 3년, 권불삼년(權不三年)이다. 그래도, 성품과 실력, 평판을 두루 갖추신지라, 마지막은 서울 사대문 안, 회사 내 유일한 지점의 장으로 마무리해서 다행이다. 역시, 인사는 허투루 나지 않는다.
허리가 아파 장기치료가 필요했던 우리 지점의 막내 직원은 질병 휴직으로 몇 개월간 현업을 떠나게 됐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건강이 최고다. 쾌유를 빈다. 한편, 육아휴직 중이었던 후배 남자 직원 한 명은, 이번에 우리 지점으로 복직 발령이 났다. 애국자의 컴백이니, 잘 대해줘야겠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 인간관계의 무상함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잦은 횟수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보니, 한 군데 너무 힘을 세게 주지 않는 편이 낫다는 점을 알리고 싶을 따름이다.
원치 않는 인사발령이 나더라도, 내 심지가 굳건하고, 할 일 목록(To-Do List)만 명확하다면,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을 수 있다.
인사가 끝나고 나면, 기왕이면 나와 함께 근무하는 동안, 서로 격려하며 잘 지냈던 분들의 안녕을 더 바라게 된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나 역시도 그들이 되돌아보았을 때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만남의 횟수나 연락의 빈도는 괘념치 않는다.
중요한 건, 기억을 걷는 시간이다.
개전(改悛)의 정(情)이 생긴 것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데면데면 지냈던 직원들, 심지어는 티격태격했던 사람들의 안부도 궁금해진다. 어르신들의 언어라고만 생각했던, [부덕(不德)의 소치(所致)]라는 표현도 점점 내 피부에 와닿는다.
앞으로 회사에서 얼마나 더 많은 인사발령문을 경험하게 될지 모르겠다. 한때는 몇 년 안에는 반드시 독립해서 직장인의 굴레를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었다. 다시 보니,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겠다 싶다.
여기 자유롭지 않은 영혼이 어딨겠는가. 기라성 같은 능력자들도,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보인다. 섣부른 실행은 객기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세상에 태어났으니, 흔적 없이 사라지기보단, 최소한 내 이름 새겨진 벽돌 하나라도 쌓고 떠나야겠다는 바람만큼은 강렬하다. 마음의 소리에는 귀 기울여야 한다. 이름을 떨칠 것이 확실한 아들 둘을 두고 있으니, 반 이상은 이미 꿈을 이룬 셈이다.
어떤 경우라도, 월급도둑 소리만큼은 극구 사양이다. 책임감과 성실함은 나를 상징하는 단어로 남겨야 한다. 자의 반, 타의 반, 20년 이상을 근무한 직장이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함부로 정을 떼기도 힘들다. 마지막 순간까지 쓰러지지 않는 현역으로 역할을 다하되, 늦지 않은 때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퇴장하기로 다짐한다.
인생 반환점인 마흔 중반에, 책 출간, 천사(Angel) 투자, 브랜딩 창업이라는 꿈이 생겼다. 이로써 인사발령이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이 감소세로 전환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기울기의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탈 날지도 모른다. 회사 생활에도 적정한 온도가 필요하다,
회사형 인간이라는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누가 회사 밖은 지옥이라 했던가. 그래봐야 다 사람 사는 곳이다. 꿈꾸는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