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 그리고 재테크 유감

따뜻한 부자 되기

by 임요세프

개별성이 상실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우리는 자유인이 되기를 희망한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선택인 사상, 표현,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완벽하고 자유로운 사회가 된다’고 일갈했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게 될 때 개인의 자유는 유보되며, 개인의 자유에 수반되는 책임 역시 개인이 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20년을 한 직장에 다니다 보니, 종종, 아니 최근에는 자주, 자유인이 되기를 꿈꾸곤 한다. 그러나, 당장은 사표를 낼 용기도, 특별히 남들보다 뛰어난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한 처지이다. 그저 답답할 때는 며칠 휴가 내고, 조금 이른 퇴근을 하는 등 소심한 일탈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아직은 자유보다는 책임감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 듯하다.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게 될 때, 나의 자유는 유보된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역시 나의 몫이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는 책임감의 원천이다. 자유에의 의지는 생활비 납부 의무의 압박감 앞에서 그 박약함을 드러낸다.

가끔,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일도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아내 몰래 투자한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기도 하니, 나의 자유는 기꺼이 유보되는 게 맞는 것도 같다.


자꾸 책임감에만 방점을 두다 보면, 나의 독립과 자유는 결코 쟁취하기 어려운, 현실 너머의 구호로만 느껴질 수 있다. 정작, 맨날 만나는 기업인들에게는 도전 정신, 기업가정신, 실패 이후의 회복탄력성 운운하면서, 스스로는 다 차려진 밥상에서 숟가락만 뜨고 있는 셈이다. 더 늦기 전에, 알을 깨고 나가야 한다.

자유인의 범위를 조금 축소하면, 그것은 곧 <경제적인 자유>가 된다. 사실, 대부분 직장인이 원하는 자유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성공한 사람들의 경제적 자유를 탐탁지 않아 한다는 점이다. 개인으로서는 부러워할지언정, 대중의 익명성으로 표현할 때는 비난 일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자유를 획득한 사람은 보통 당당하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



우리는 <저성장, 고실업, 고부채, 저출산, 노령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일견, 총체적 난국의 사회로도 읽힌다.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장기적 경기침체를 걱정하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한국에서 재현될 것을 우려한다. 여기저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우리의 심리적 불안감은 커지고, 사회적 분위기는 침체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본의 시대는 총체적 난국의 타개를 고민하기보다는, 개별 경제주체의 개선을 우선시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저마다의 생존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이기심은 재테크라는 용어를 통해 순화된다.

기업의 주식 가치라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실체적으로도 잘 잡히지 않는 개념이다 보니, 공시되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다. 애당초, 주식 가격이 영원히 존속하는 계속기업이라는 가정하에 산출되는 숫자이니, 크게 과장되어 있다. 30대 기업의 명단은 해마다 바뀌고, 그중 몇 개의 대기업은 순식간에 부도 처리되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계속기업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기업이 거래소에 상장된 이후에 우리가 사고파는 주식은, 엄밀히 말하면 주식투자라기보다는 주식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주주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내가 소비한 돈은 기업의 자금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주식을 판 사람의 계좌로 입금되고 만다.


우리는 대부분 '기업의 내재 가치를 평가해 자본 투자가로서의 소명 의식을 바탕으로 기업의 주식을 오랜 기간 보유하고, 기업의 참된 경영을 감시, 비판하며,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하는, 현명한 투자가'들이 아니다. 단지, 시세차익(주 수입)과 연말 배당금 수익(보너스)을 기대하는 단기 매매자일 뿐이다.

결국 재테크는 시세차익 실현 여부로 성공이 판가름 나는데,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점점 승자의 수는 적어지고, 승자에게 돌아가는 규모가 커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깨닫고 난 후에, 우리는 뒤늦게 자본주의의 잔인함에 몸서리치곤 한다.

여전히,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고급 정보들은 이너서클(inner-circle) 혹은 리딩방 내부에서 거래된다. 일반인들에게 ‘공시’ 형태로 알려질 때는, 그 정보는 뉴스라기보다는, 이미 쓰레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개인(개미)이 주식시장에서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기업의 경영현황과는 큰 관련도 없는 주식 차트 분석과 단기매매 방법을 알려주는 재테크 서적들을 볼 때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만 들여다보아도, 용어조차 이해하기 어렵고, 금융 공학자들도 설계구조를 파악하기 힘든 파생상품을 실물로 착각하고, 한탕주의를 노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하면 투자요, 남이 하면 투기인 셈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현재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긴 했지만, 언제 다시 부동산 열풍이 불지 모를 일이다. 부동산 시장과 실물경제 간 상관관계도 들쑥날쑥해 함부로 예측하기도 어렵다. 저출산, 고령화를 생각하면, 이미, 서울의 아파트값, 강남의 건물값은 말이 안 된다.


주식시장이든, 부동산 시장이든, 이른바 전문가들의 분석은 십중팔구 과거지향적이니, 판단은 투자자 개인의 몫이다.


재테크 책들은 우리를 향해 손짓한다.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월급처럼 매달 자동으로 돈이 입금되는’ 부동산투자는 필수라고 말이다. 저자의 책을 보는 사람만이 경제적 자유의 혜택을 볼 수 있고, 나머지는 그냥 우리에게 매월 보너스를 제공해 주는 우둔한 사람들이라고 말해준다.


파이프라인 우화라는 게 유명하다. 한 사람은 양어깨에 무거운 우물을 짊어지고 매일 물을 퍼 나를 때, 다른 사람은 파이프라인을 설치해 자동으로 물을 옮기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당연히,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경매로 부동산을 낙찰받으면, 기존 세입자나 소유자를 내보내고, 내 입맛에 맞는 세입자를 맞이해야 한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세입자에게는 합법적 내몰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월세 십만 원만 더 받을 수 있다면, 상대방에게 피치 못할 사연이 있을지라도, 대화 같은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인 일이 되고 만다.


은행 대출은 이름도 멋진 <레버리지 효과>라는 말로 부추겨지고, 종잣돈 천만 원으로도 마법 같은 레버리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고 하니, 안 하면 바보가 된다. 시간이 흘러, 나의 경제적 수입과 불로소득(월세 수입)을 더해 또 다른 부동산을 사들인다. 그런 패턴을 반복하다 보면, 나의 파이프라인은 완성된다. 재테크 서적들이 강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부동산 투자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전세 난민은 속출하고, 월세 부담이 늘어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로 국민총생산은 늘어나겠지만, 삶의 질은 낮아지게 마련이다.

자기 소유의 집에 살고 있지 않은 한, 혹은, 소득이 아주 적어 사회적 배려의 대상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일 수 있는 <주거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 원래 세상은 그런 거라고, 공짜 점심은 없는 거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재테크가 잘못 없는 피해자들을 양산해 낼 수는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똑똑한 사람만 파이프라인을 이해하는 건 아니다.


제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자가주택 아니면 전세살이, 그도 아니면, 월세살이다.



물론, 나는 지금, 누구 못지않게,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범위를 넓혀, 자유인이 되고 싶다. 그러나, 시대에 뒤떨어진 미련한 사람 소리를 듣는다 해도,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서까지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대신, 미래지향적 기술력이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설립된 스타트-업의 초기 투자자가 되거나, 고용과 수출 등 국민경제에 크게 공헌하는 상장기업의 주주가 되어 선량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 최종 목표는 안목 있는 엔젤(천사) 투자자다.

나와 가족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신축 아파트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되, 머지않은 미래에 1인 기업가가 되어 사업소득을 창출하기로 한다. 입주 이후 아파트의 가격이 오른다면 감사할 일이다. 시세차익을 기대하기보다는 주변 인프라를 기꺼이 이용하며, 오래오래 잘 지내다가, 노년에 주택연금까지 활용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한때는, 건물주가 되어 월세 받으며 사는 삶을 꿈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업용 건물주가 되겠다는 의지는 사라졌다. 월세를 내는 임차인의 심경을 잘 알게 된 최근의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내 안에 착한 사마리아인 콤플렉스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임차인과 월세나 관리비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일은 나의 미래에 없을 듯하다.

살면서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성공에의 의지를 남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거나, 안 그런 척할 뿐이다. 일부러 실패하려는 사업가도 없고, 뒤처지고 싶은 직장인도 없다.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유튜브, 인스타그램의 홍수 시대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 시간에도, 통제 불능의 사유로, 예기치 못한 불운과 사고로, 쓰러져가는 이웃과 기업들이 즐비하다. 그들의 노오력(!)이 우리보다 적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신중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진정한 자유인의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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