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청년 인턴들이 채용됐다.
보통 큰 지점에는 2명의 인턴이 배치되고, 작은 지점에는 1명이 배정된다. 내가 근무하던 지점은 큰 점포여서 총 2명이 배치됐다. 대학 졸업 후 다른 회사에서 인턴을 경험하고 온 A, 대학 졸업을 유예하고 첫 사회 경험을 하는 B. 이렇게 둘이었다.
신분은 불안정하고 업무는 한정적인 그들은, 이방인이자, 아마추어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강한 의지와 눈망울 속에는 불안한 눈빛이 함께 감지되고, 내어준 업무 매뉴얼은 취업 교재와 뒤섞인다.
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소우주 속에서도, 그들은 모두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물론,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객 신분증 분실, 자서날인의 누락, 받아야 할 수수료에 0을 하나 빼고 받는 일까지. 사실, 입사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그냥 넘어간 날은 없을 정도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간중간 다른 회사 면접도 보러 가야 되고, 퇴근 후엔 취업 스터디 모임에도 나가야 했다. 월급을 받아서 좋긴 한데, 정규직 입사시험 준비를 위한 공부시간이 부족하니, 마음은 6개월 내내 싱숭생숭했으리라. 영락없는 미생의 삶이다.
이별의 시간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무사히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안도감보다는, 적응할 만하니 업무 종료일이라는 아쉬움과, 여전히 취준생이라는 복잡한 심경이 그들을 압도했을 것이다.
좋은 사람들 만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어느 인턴의 정성스러운 고백에 마음이 시렸다. 나의 어쭙잖은 몸짓과 말들이, 행여나 위로가 아닌 불편함을 준 것은 아닌지 후회가 남기도 한다.
내가 이십 년 늦게 태어나 인턴 직원과 경쟁하는 위치였다면, 단언컨대 내 자리는 그 친구들 몫이었을 거다.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볼진대, 그들의 성실함, 밝은 에너지, 열정, 근성은 그 시절의 나보다 낫다.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살면서 웹툰을 딱 두 편 보았다. 평생 만화나 웹툰을 보지 않고 고리타분하게 살아오다가, 직장 생활한 지 십 년이 넘어서야 지인의 추천으로 두 편을 본 게 다였다. 그 두 편이 바로 <미생>과 <송곳>이다.
공교롭게도 내 인생의 웹툰은, 모두 TV 드라마로 방영이 되었다. 대기업 인턴사원 장그래, 외국계 마트 노조위원장 이수인은, 그 처지가 판이한 사람들이었지만, 결국 이 사회에서 힘겹게 고군분투하는, 송곳(!) 품은 미생이었다.
드라마가 삶의 정답을 가르쳐 주지는 않지만, 우린 저마다의 고민거리와 삶의 무게를 지닌 채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현실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미생은 모두 비슷한 어려움을 안고, 비틀거리면서도, 자기만의 무기(송곳)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간다.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승부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도 여전히 불안하다.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내세울 것 별로 없는 실수투성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생활인인데도, 최근 들어 자꾸 이 길이 맞는지, 진짜 내 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조금 덜 어리석고자, 그저 전보다 더 읽고, 생각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다 결함을 가지고 있다. 쉽게 상처받고, 감정과 충동에 휘둘리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동물이다. 내 처지가 가장 어려운 것 같고, 누군가로부터 항상 위로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위로와 공감은 일시적이다. 결국 스스로 두려움을 걷어내고, 복잡한 세상사를 담담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계속 문을 두드려야 한다. 위로받는 아마추어로 영원히 살 수는 없다. 홀로서야 한다.
맹자는 하늘이 큰 그릇을 만들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먼저 그에게 고난을 준다고 했다. 마음을 괴롭히고,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가난에도 빠지게 하는데, 그 이유는 참을성을 기르고,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청년 인턴들에게 힘찬 격려를 보낸다.
<청년 인턴, 그 후의 이야기>
인턴들이 떠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A가 예고 없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국책은행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 와중에 필기시험은 1등이란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일간지, 경제신문을 정독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는데, 역시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연이어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계속된 업무 실수로 여러 차례 눈물 흘리던, 본인이 지점에 별 도움 안 된다며 자괴감에 괴로워하던, B도, 내로라하는 시중은행에 합격했다. 이곳에서의 실수 에피소드를 최종면접장에서 언급했다고 하니, 결국 경험이 스펙이 된 셈이 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다음번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아 불안해하던 지방대 출신 인턴 직원들이, 서울대 출신이 즐비한 조직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했다.
비아냥거리고, 부정적인 이야기만 내뱉던 주변인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맹자님이 옳았다. 불안하고 고통스럽더라도, 계속 도전하고 실행해야 한다.
사람 운명은 한 치 앞을 모른다. 남들이 뭐라든, 꾸준히, 성실하게 자기가 목표한 대로, 밀고 나가는 한, 반드시 결실을 얻기 마련이다. 아마추어의 눈물은 머지않아 프로의 웃음이 된다. 여기 인턴들이 바로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