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승계는 부의 대물림인가

기업 승계의 한계와 필요성

by 임요세프

재산이 너무 많아도 문제다. 세금은 죽어서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삼성의 故 이건희 회장이 타계한 후,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일가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무려 12조 원대다. 이건희 회장이 쉽게 눈을 감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세금 걱정 때문 아니었을까.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삼성의 상속세 문제를, 나 같은 평민이 걱정하는 건 지나친 오지랖이다. 내로라하는 전문가집단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기업 승계가 기업과 경제의 지속성에 미치는 영향 정도는 생각해 봄 직하다.



일반적으로,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기업인들은 세금에 치여 사업 못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엄살이겠지만, 통계자료를 보면 꼭 근거 없는 푸념만은 아닌 듯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현행 기업 승계 상속세제의 문제점 및 개선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GDP 대비 상속·증여 세수 비중이 2021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프랑스, 벨기에와 함께 공동 1위다.


직계비속에 대한 기업 승계 관련 상속세 최고세율(50%)은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이지만, 대주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주식평가액에 할증(20% 가산)이 적용되기 때문에, 가장 높은 수준이 된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추가로 붙는 개념이다.

어쨌든, 상속세는 기업의 실체는 변동이 없는데, 피상속인의 재산이 상속인에게 무상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이니만큼, 기업 승계 시 장애물로 작용하는 건 분명하다.


현실적으로, 갑작스러운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서는 납부 유예 및 연납 제도를 활용해야 함은 물론이고, 상속인이 보유 중인 주식 지분을 매각하거나 대출을 받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매각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경영권 승계와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기업 승계는 과연 부의 대물림인가, 아니면, 기업의 존속과 투자, 일자리 창출을 통해 경제성장에 이바지하는 수단인가.


시민의 수준, 위정자들의 가치관, 정권의 정체성 또는 경제관이 한데 어우러져, 법과 제도(세제)가 결정될 것이다.


중요한 건 시절의 분위기다.


기업의 논리는 이러하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이 생존하고 발전해야만 일자리와 소득 창출이 가능하다. 그런데, 현재 최대 60%에 달하는 상속세율과 실효성 없는 가업상속공제라는 징벌적인 상속 세제 하에서는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 승계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가업상속공제제도는 2016~2021년 연평균 이용 건수가 95.7건, 총 공제금액 2천967억 원으로 저조한 상황이다. 이는, 가업상속공제의 적용 대상, 대표자의 경영 기간, 업종 유지 의무, 자산 유지 등 사전, 사후적 요건이 까다로워서 활용하려는 기업인이 적고, 실제 공제금액도 적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 가업상속공제제도가 활성화된 독일은 연평균 1만 308건, 공제금액 163억 유로(한화 약 23조 8천억 원) 규모다. 우리나라의 가업상속공제 적용 건수는 독일의 100분의 1 수준이다.

그들의 주장이 통했는지, 2022년 세법 개정 시 사전, 사후 요건은 완화됐고, 적용 대상도 중견기업으로 확대됐다. 물론, 대기업이 적용 배제되었다는 측면에서, 논란은 여전하다. 아마, 대기업까지 상속세를 대폭 할인하는 데 대한 일반 시민의 반대 정서, 세수 감소로 인한 국가의 세제 운영상의 어려움 등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최근에 만난 K 대표는 70세가 넘었다. 물론, 그는 아직 정정하다. 40년 이상 지금의 회사를 운영해 오고 있으니, 명실상부 베테랑 경영인이다. K는 우리나라 최초의 펌프 제조기업인 한일전기에 취업해 몇 년간 다니다가 독립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동 펌프는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탓인지 판매는 저조하다. 대신, 선풍기, 스토브, 레이진-후드, 난로 등 관련 전기제품으로 제품 포트폴리오가 확대되었다. 회사 매출액과 자산이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산업 현장 곳곳에서 한일 제품은 여전히 스테디셀러다.

K는 1978년에 독립했다. 처음에는 개인사업자로 창업했다가, 1990년대 초반, 법인으로 전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모기업에서 전기모터와 산업용 펌프 등 전기용 기계와 장비를 매입해, 이를 쿠팡, 네이버 등 오픈마켓을 통해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거나, 전국 대리점에 납품한다.

경기 영향을 안 받는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거래처와 매출은 꾸준한 편이다. 김포시에 본점, 설비, 창고를 갖추고, 30년 동안 한 곳에서만 사업하다 보니, 김포의 터줏대감 소리도 듣는다.


45년 동안 주변에 수많은 기업이 생겼고, 또 사라졌다. 김포평야라는 단어가 무색하리만큼, 이제 회사 주변은 아파트촌, 상업지구로 변모 중이다. 그야말로, 뽕밭이 바다가 되어가고 있다(桑田碧海). 10년을 버티기 힘든 게 기업이라는데, 갖은 풍랑을 겪으면서도 무려 40년 이상을 생존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천운(天運)이다.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진 탓이리라. 모기업의 생명력, K의 영업력, 직원들의 역량, 꾸준한 제품 수요, 판매처들의 결제 능력, 금융기관의 도움, 배우자와 자녀의 경영지원까지. 반백년 장수 기업은 단순히 대표자의 경영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물론, 어찌 기업경영에 위기가 없을 수 있으랴. 회사는 석유 파동을 위시한 에너지 위기, IMF 경제위기, 국제금융 위기, 코로나 위기 등 커다란 대외적 위기 상황을 모두 극복했다. 그 과정에서 당좌수표와 약속어음이 부도날 뻔한 적도 여러 차례다.


운칠기삼으로 살아남았다. K는 금전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를 잊지 않기 위해, 아직도 당좌거래를 하고 있다. 결제기일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회사 구성원들에게 몸소 체험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다 보니, K 대표의 아들 K2도 자금 문제에 늘 민감하다. K2는 미국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3년 전 귀국하여 아버지의 가업을 승계받는 중이다. 30대 후반이니, 이제 세상에 대해서도 알 만큼 알고, 공부도 할 만큼은 했으며, 경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감을 잡았다.




이곳은 기업 승계가 한창 진행 중인 기업 현장이다. 그러나, 원래 K2의 눈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향해 있었다. 미국에서 MBA 학위까지 취득한 전도유망한 청년 유학생이, 한국의 중소기업으로 컴백홈(Come-back Home) 하기까지는 숱한 고민의 시간이 있었으리라. 부자간의 갈등, 화해, 그리고 의기투합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연을 내가 일일이 알 수는 없다.


어찌 됐든, K2는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 미래가 안갯속인, 변화가 절실한 중소 유통기업의 신규임원으로 경영수업 중이다. 미국 MBA 과정에서 분석한 실리콘밸리 기업 성공스토리와는 거리가 먼, 체험 삶의 현장이다.


K와 K2는 모두가 꿈꾸는 건물주 부자(富者)가 아니다.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유기적으로 얽힌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인 부자(父子)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역사를 함께하며 고용을 창출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해 온 중소기업이 100년 장수 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소명이다.


K2는 회사의 사업을 재편하고, 규모를 성장시킴과 동시에 경영권, 즉, 본인의 지분율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기업 승계의 완성은 안정적 주식지분 확보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으니 급여는 뻔하다. 갈 길이 멀다.


K2가 해결할 일은 한두 개가 아니다. 얼마 전 사업장 토지와 건물이 정부에 수용(收用)되었다. 보상금 협의도 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할 준비도 해야 한다. 토지 수용 금액은 주변 실거래 가액보다 당연히 낮다. 30년 된 법인의 주소지를 강제로 옮기는 것도 속상한데, 보상받을 금액은 기대 이하이니, 두 번 억울한 셈이다. 소송도 진행해야 한다.


한편으로, K2는 산업용 펌프를 비롯한 다양한 전기제품을 중개하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을 진행 중이다. 제품 디자인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수출도 늘릴 계획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전략이다. 사무실 벽면을 가득 채운 화이트보드, 매입-매출처와 주고받은 수많은 종이 주문서, 명세서, 면장, 심지어 종이 세금계산서까지. 구태의연함의 상징, 오프라인 사무실과도 조금씩 이별해야 한다.




K에서 K2로의 세대교체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 이제, K 대표도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직관적으로 안다. 본인은 아직 건강하다고, 십 년은 더 사무실에 나와 현장을 진두지휘할 체력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실제로는 하루하루가 버겁다. 스스로 노욕을 부리지 않고, 품위 있게 물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 K는 K2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K 대표는 6.25 전후 태어난 베이비붐 초기 세대다. 매년 70~80만 명씩 만 65세 노인이 되는데, 이 연령층에 특히 중소기업 CEO들이 많다. 이미 70세가 넘은 중소기업 CEO가 2만 명을 넘었다. K 대표도 그중 하나다. 다른 회사들처럼, 기업 승계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이들의 사정을 지켜보자니, 기업 승계는 부의 대물림이라기보다는, 기업경영의 책임을 물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소기업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부의 대물림은 부동산이나 많은 현금을 물려주는 것이지, 처분이 힘든 (중소)기업의 주식을 물려주는 건 실익이 크지 않음은 자명하다. 볼품없는 현장에서 골치 아픈 제조업을 하려는 중소기업 경영 2세는 많지 않다. 시쳇말로, 폼(Form)이 안 나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회사를 팔아 빌딩이나 현금으로 물려달라고 요구하는 게 훨씬 나아 보인다. 고용, 수출, GDP 같은 거시적 경제 수치를 일개 개인이 운운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도덕적으로 비난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창업이든 인수든 승계든 뭐든 간에, 기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사실, 건물임대인 2세가 늘어나는 건 지역경제, 국가 경제 차원에서 도움이 안 된다.


회사가 매각되거나 폐업하면, 수십 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경영 노하우 등 유무형의 자산은 고스란히 사장(死藏)된다. 기업이 오래 지속되고, 매출액과 자산이 늘어나야 일자리 창출과 세금 납부가 커진다. 강소기업, 장수 기업이 많아져야 대기업,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와 빈부 격차가 줄고, 국민경제가 더 튼튼해진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소유권과 경영권이 대표 1인에게 집중된 경우가 많다. 갑작스레, 대표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기업 운영이 위험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따라서, 기업 승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상속세·증여세 납부 유예, 증여세 과세 특례 한도 확대 등 기업 승계 정책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모든 규제를 다 풀 수는 없다.


기업인들은 경영 자율성 발휘를 위해 규제를 더 과감하게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모든 정책에는 명(明)과 암(暗)이 있기 마련이다. 득을 보는 쪽이 있으면, 손해를 입는 상대방이 생긴다. 감세(減稅)가 능사는 아닐 것이다. 시간을 두고 분석할 일이다.


기업도 자발적인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자금 사용처가 불분명한 가지급금을 줄여 자금 집행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차명주식이 있다면, 하루속히 환원해야 한다. 주주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의 방법으로 미처분이익잉여금을 줄여야 한다.


과도한 미처분이익잉여금은 기업의 순자산가치와 비상장 주식의 가치를 높여, 양도, 상속, 증여 등 지분 이동 발생 시 큰 세금 추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계획하에 기업 승계가 이루어진다면, 원치 않는 헐값 매각이나 폐업, 부도(회생절차) 등을 피할 수 있다. 기업인은 세무 전문가의 도움으로 상속세의 부담감을 낮추고, 오로지 기업경영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와 동시에, 2세 경영자가 엉뚱한 방법으로 딴 주머니 차는 일은 막아야 한다.

수년간 수면 아래에서 지원자 역할에 치중하던 K2는 최근 본인의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10년을 거래해 온 주거래은행부터 변경 중이다. A 은행 대출금리가 B 은행보다 무려 2%나 높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버지와 은행 지점장의 오랜 인연이 회사의 이익을 갉아먹고 있었다.


대출과 예/적금, 보험상품까지 모두 B 은행으로 옮기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기존 A 은행에서도 파격적인 혜택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버스는 이미 떠났다. 시대의 소임을 다한 A 은행의 당좌거래도 이젠 안녕이다.


기업 승계는 오래된 관습과의 이별이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사업목적도, 사업 아이템도, 본점 소재지도, 대표이사도, 법인명도 바뀔 예정이다. 살아남은 건 올해로 45년 된 법인의 업력뿐이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래도, 이젠 바통을 넘길 시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알다가도 모를 투자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