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이삭 Aug 06. 2023

월급 루팡도 가능하다

업무 회피가 자유롭게 가능한 공무원 생활


9급 공무원의 장점을 이야기할 차례다. 태풍이 수많은 피해를 일으키지만 바다를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제 아무리 나쁜일도 찾아보면 긍정적인 점이 반드시 있다. 공무원도 그렇다. 필자는 9급 공무원은 하면 안되는 직업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각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천성에 따라, 그리고 본인이 처한 외부환경에 따라 9급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안성맞춤일 수도 있다.


공무원 직종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장점의 출발점은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공무원제’다.


헌법 제7조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직업공무원제란 우수한 젊은 인재를 공직에 유치하고 공직에 근무하는 것을 명예롭게 인식하여 정년퇴임까지 전 생애에 걸쳐 성실하게 근무하며 단계적으로 경력발전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인사제도를 말한다.

( '한국 직업공무원제도의 정착<2012> (안전행정부-고려대-성균관대, 직업공무원제의 의의 부분 발췌)  


이 제도는 공무원에 임용된 사람을 평생동안 공무원으로만 근무하게 하면서 적절한 보수와 사회적 위치를 보장해 준다. 그리고 다른 업종과 겸직하지 못하게 해 국가업무에 집중적으로 전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국가는 그 어떤 기업보다 안정적이며 여간해서는 망할 일이 없다. 국가가 직접 보호하는 공무원의 신분은 본인이 그 직을 내려놓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박탈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개국 이래 지속되온 직업공무원제는 공무원 계급 1~9급 체계화, 정년 연장, 전문가 특별채용제도 도입, 성과급 및 특별승진 제도 채택, 육아휴직 부여 등 여러 제도들을 신설하고 조정하면서 발전해왔다. 그 방향성은 한결같다. 직업공무원제의 안전성은 그대로 유지함과 동시에 공무원의 행정 전문성 역량 강화와 성과주의 문화 정착, 공무원 후생복지 확충 등 이다.


그런데 수십년 동안 발전을 거듭해온 직업공무원제 역사 속에서도 딱 한가지 성장하지 못한 제도가 있다. 바로 공무원 성과주의다. 규정상으로는 일만 잘하면 고속승진이 가능하고 일을 못하면 직위해제 및 직권면직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다.


일 잘해도 연공서열과 경력 순으로 승진하고 일 못해도 그 어떤 징계도 받지 않는다. ‘나도 안 짤리지만 저 사람도 안 짤린다’라는 공무원 우스개소리가 괜한 소리가 아닌 것이다.


역설적으로 공무원의 장점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동전의 양면이다. 일을 열심히 해도 연공 서열대로 승진하고 일을 못해도 징계조치가 없으므로 일을 안하는 선택을 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관리자가 합리적으로 업무분장하여 실무자에게 업무를 지시하면 담당자는 그 일을 해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그 일을 의도적으로 해태한다면, 그리고 그런 행위가 반복된다면 그 공무원은 징계를 받고 더 나아가 직위해제 직권면직까지 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직기강이 잡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공무원이 그냥 그 일을 안해버리면 그만이다. 안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그 일에 자신이 없어서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하면서 회피하는 경우, 갑자기 아프다고 병가를 내면서 출근하지 않는 경우, 그냥 아무말없이 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행동을 보일 수 있는지 의아하겠지만 공무원 사회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관리자는 이렇게 꾀 부리는 직원들에게는 업무를 배분하지 않고 착하고 책임감이 강한 직원들에게 일을 몰아주는 요상한 행태로 이 상황을 해결한다. 의도적으로 업무를 회피하며 일을 하지 않는 직원들을 감사부서에 회부하고 감사결과에 따라 합당한 징계를 내려야 마땅하지만 온정주의가 만연한 공무원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저 그러려니 뒤에서 욕 한마디 하고 그만이다.


결국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일을 안하고 싶으면 안할 수 있는 직업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직업은 정말 흔치 않다. 내가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일하기 싫으면 안한다.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 물론, 다른 직원보다 약간 진급이 늦을 수 있고 동료 직원들의 따가운 눈초리도 받을 수 있다. 그것만 감당한다면 일을 안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여기서 일을 안한다는 건 아예 배분되는 업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가장 쉬운 일, 처리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거의 소요되지 않는, 누구나 맡고 싶어하는 일만 배분된다는 뜻이다. 아주 여유있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업무다.


누구나 고통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길 원한다. 이것은 나쁜 욕망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공무원 직종이 가지고 있는 제도와 문화를 이용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그렇다면 가장 효율적인 공무원 생활은 어떤 것일까? 동료들의 미움과 눈총을 받지만 뻔뻔하게 업무를 회피하면서 생활하는게 과연 최선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동료 직원들의 미움과 눈총을 감당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천성적으로 뻔뻔하다면 괜찮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더구나 공무원은 근무기간이 길다. 지방직 공무원의 경우에는 같은 건물에서 약 30년을 같은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근무한다. 그 오랜 시간을 뻔뻔함만으로 버티기에는 힘들다.


그래서 필자는 ‘적절한 업무회피’를 권유한다. 너무 열심히 하지도 안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이 100이라면 50~60 정도만 하고 나머지 40~50 부분에 대해서 업무회피를 하면 가장 적절하다. 욕좀 먹겠지만 어차피 그 사람들이 월급 주지 않는다. 더 뻔뻔한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말 그대로 프리라이더들인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 100 중에 0~10 정도만 한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까지 업무를 회피하며 직장에서 미움 받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일이 약간이라도 있어야 시간이 잘 간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없이 09:00부터 18:00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이다. 내 업무역량의 50~60 정도만 하면서 그 이상의 업무가 떨어질 때에는 각종 거짓말과 잔꾀로 회피해라. 만족스러운 공무원 생활을 누릴 수 있는 황금열쇠다. 이 정도는 진급이나 타 직원들의 평판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차피 내 업무역량을 100% 발휘해도 욕은 먹는다. 시기 질투를 당하든 어떤 다른 이유로든 말이다. 조직생활이란 언제나 그렇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뒷담화 당했다.


어쨌든 내가 원하는 만큼 업무량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장점이다. 세상에 어떤 회사원이 내가 1개 하고 싶으면 1개 하고 2개 하고 싶으면 2개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아무런 불이익 없이 말이다. 사기업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