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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삭 Aug 24. 2023

9급 공무원 절대로 하지마라

서문

9급 공무원은 최악의 직업 중 하나다. 필자가 12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하며 내린 결론이다. 물론, 9급 공무원이라도 다 같은 공무원은 아니다. 일반행정 공무원이 있고, 기술직 공무원도 있으며, 같은 행정공무원이라도 정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학교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등 그 업무 분야가 실로 방대하다. 나는 지방자치단체에 속한 일반행정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공직 경력을 쌓았다. 10년이 넘게 근무하다 보니 국가기관이나 학교 등 다른 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과도 교류하게 되었으며, 어디에서 근무하든 공무원 생활이 대동소이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좌절하고 있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체념하고 있었다. 공무원은 꿈도 비전도 없는 직업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공무원은 최고의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100:1 경쟁률이 평균치였다. 9급 공무원 시험 합격자 명단이 대학 캠퍼스에 현수막으로 달렸다.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도 우수수 쏟아졌다. 공무원 광풍의 시대였다. 딱 10년의 세월이 흐른 2023년 현재. 공무원은 청년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다. 특히 계급사회 성격이 강한 공무원 직군에서 가장 말단인 9급 공무원은 제대로 된 직업 취급도 받지 못하고 있다. 9급 공무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도 못한 직업이라는 게 현재 20~30대 청년들의 결론이다.      

9급 공무원뿐만 아니다. 7급, 5급 시험에도 젊은이들이 도전하지 않고 있다. 과거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엄청난 출세였고 가문의 자랑이었지만 이제는 세무사, 회계사, 노무사 등 전문직에 치이고 중견기업에 취업하는 것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 뉴스에서는 낮은 보수와 경직된 조직문화가 문제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낮은 보수가 얼마나 낮은 것인지 경직된 조직문화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문화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쓰였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명예로운 직업 공무원이 왜 이런 처지까지 몰렸을까? 월급이 적어서라는 그 문제 하나뿐일까? 아니다. 돈 문제도 크지만 절대 돈 문제뿐만은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다. 공무원 인기가 가장 높던 2010년대 초반에도 공무원 월급이 적은 건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공무원이 일반기업 대비 많은 월급을 받았던 시기는 그 어느 때도 없었다. 공무원은 대한민국에서 원래 박봉인 직업이었다. 물론 최근 몇 년간 통화량 증가로 인한 급격한 물가 상승 여파로 원래 박봉이었는데 더 박봉이 된 건 맞다. 사기업 대비 공무원 임금은 2020년 90.5%에서 2022년 82.3%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공무원 인기 하락의 원인을 돈으로만 볼 수는 없다. 공무원이 박봉이라는 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공무원은 돈 벌기 위해 하는 직업이 아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 중 돈 많이 벌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원인일까? 과거로 다시 돌아가 본다. 공무원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발전의 주역이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든 주체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자랑스러워한다. 한국전쟁 후 폐허에 불과했던 이 작은 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내고 전 세계 10대 선진국에 진입했다. 누군가는 대통령이 잘해서 또 누군가는 기업이 잘해서 국민이 잘해서 그 성과의 공을 평가하지만 숨겨진 공로자는 바로 공무원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모든 시설에는 공무원의 땀과 눈물이 배여 있다. 경부고속도로는 현대가 만들었지만, 현대가 그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각종 규정과 제반여건을 만든 책임자는 결국 공무원이다. 주말이면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로 넘쳐나는 한강공원의 작은 벤치 하나도 공무원이 아니면 있을 수 없었다. 여름철 비만 오면 침수피해를 일으키던 한강을 누구나 안심하고 즐길 수 있게 정비한 공무원도 있을 것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공무원은 아마 매일같이 한강에서 자신의 삶을 자랑스럽게 회고할 것이다. 내가 이 곳을 만든 사람이야. 내가 한강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었어. 그 자부심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일 테다. 그래서 공무원은 박봉이라도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사명감이라는 것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공무원들은 아무 힘이 없다.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시장에서 붕어빵 장사만 30년 해도 누구나 그 사람의 붕어빵 실력을 인정하는데, 공무원은 30년 40년을 근무해도 행정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공무원의 의견은 언제나 묵살당한다. 결정권이 없다. 결정권은 언제나 국민의 투표로 뽑힌 선출직 공무원에게 있다. 그 사람은 대통령일 수도 있고, 시장·도지사일 수도 있고, 국회의원일 수도 장관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오랜 시간 공직에서 일한 공무원들의 의견은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정치업적과 성과에만 천착하고 내 정치이익을 위해 공무원을 부려먹을 뿐이다.     


예전에는 도로를 하나 만들고 공원을 하나 만들어도 공무원의 의견이 중요했다. 아니 중요하다기보다 공무원 말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당시에는 민원체계가 잡혀있지 않던 시절이어서 주민 의견 수렴과정 자체가 없었고 지방자치제도 법제화되지 않아 시의원 구의원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공무원의 행정 전문성이 자연스럽게 인정되는 시절이었다. 공무원의 판단력과 결정 권한이 살아있었다. 그 누구도 도로 놓아 달라고 공원 만들어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공무원이 고민하고 생각해서 자신의 행정 경험과 전문성을 토대로 국민에게 필요한 각종 정책을 계획하고 시행해 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고 있구나 국민이 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구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공무원들은 정치인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기계가 되었다. 자율성과 주체성이라고는 전혀 없이 시키는 일만 꾸역꾸역 하기 바쁜데 일하는 보람이 있을 리 없다. 보람도 없고 돈도 못 벌고 정치인과 민원인 갑질에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란 똑똑한 20~30대 청년들이 이런 직업에 뭐하러 도전하겠는가? 공무원 인기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청년들이 너무 돈만 따진다고? 요새 고생하지 않는 직업이 어디 있냐고?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시대의 판단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현직 공무원들의 사기 저하다. 취업 준비생들이야 이런 공무원들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애초부터 공무원을 안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직 공무원들은 다르다. 이미 공직에서 적게는 3~4년 많게는 10년 이상 일을 했다. 공직 커리어는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기에 현실적으로 이직하기도 쉽지 않다. 공무원으로 일을 하면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은 사람들도 있다. 당장 하루 하루 먹고살기 급한데 어떻게 이직 준비를 하겠는가? 울며 겨자 먹기로 공무원 생활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마음에 불만과 분노가 계속 쌓이는 형국이다. 마치 휴화산의 마그마와 같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공무원의 이러한 불만들을 ‘누칼협’이라며 조롱한다. 누칼협은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냐? 라는 말의 축약어다. 누가 칼 들고 공무원 하라고 협박이라도 했느냐 본인이 원해서 공무원이 되었는데 무슨 불만이 그리 많냐는 이야기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말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인격적 존중이 없는 반박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공무원을 이렇게 조롱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공무원은 일 안 하고 놀기만 한다고 생각한다. 공무원 박봉이고 보람도 없고 조직문화도 후지고 알겠는데 출근해서 온종일 탱자탱자 놀기만 하니까 괜찮다는 편견이다. 도시전설 같은 옛날 이야기도 사실처럼 떠돈다. 공무원은 부패한 조직이어서 공공의 권한을 이용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다는 인식이다. 민간기업과 한패로 짜고 치면서 돈을 챙긴다든가 민원인의 사정을 이용해 뇌물을 받는다든가 하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낭설인데도 여전히 이런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단연코 현직 공무원으로 말하건대 하급 공무원들에게는 아무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다. 1급 2급 고위공무원단이나 선출직·정무직 공무원이라면 모를까 하급 공무원들은 아무런 권력도 권한도 없다. 비리를 저지르고 싶어도 권한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업무량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대기업과 비교해도 적지 않다. 하급 공무원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 한다. 주민이 욕하면 욕먹고 때려도 가만히 맞고만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그야말로 을 중의 을이다.     


공직 특유의 꽉 막힌 조직문화도 공무원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공직만큼 수직적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 직군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부의 의견은 절대 상부로 전달되지 않는다. 혹여나 전달된다 해도 싸가지 없는 직원으로 찍히기만 할 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업무처리 과정부터 상사의 갑질과 괴롭힘, 사기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격 모독성 발언과 성희롱, 쌍팔년도식 회식 문화 등 대한민국의 안 좋은 조직문화란 조직문화는 죄다 공직에서 그 마지막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가 지인들에게 이러한 조직문화 이야기를 하면 놀라는 이가 너무 많다. ‘세상에 그런 문화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그거 1980년대 이야기 아니야?’ 아니다. 공직에서는 현실이다.     


이 책에서는 하급 공무원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 모든 하급 공무원의 비참한 현실을 낱낱이 분석하고 고발하려 한다. 필자에게는 이대로는 정말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직 전체가 무너진다는 위기감이다.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공무원들은 현재 업무를 일부러 회피하고 등한시하며 영혼 없는 좀비처럼 공무원직을 이어가거나, 의욕을 가지고 일하더라도 불공정한 성과체계에 좌절하고 그 의욕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공무원 사회 전체에 열심히 일할 필요 없다는 여론이 증폭되고 있다. 지금은 아무 일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 문제는 장차 국가와 국민에게 엄청난 손해로 다가올 것이다. 상상해 보라. 당신이 쓰레기로 뒤덮인 어느 곳을 청소해달라고 시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그 어느 공무원도 꿈쩍하지 않는 현실을. 도로가 쓰레기로 뒤덮이던 말던 나는 그저 철밥통 공무원이니까 아무 상관없다고 방관하는 공무원들만으로 이 나라가 가득해질 수 있다. 엄연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현실이다.    

 

한편으로 이 책을 쓰면서 필자 개인 차원의 고민도 컸다. 나 자신이 공무원이면서 공무원이 최악의 직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심각한 자기부정이었다. 아무리 안 좋은 직업이라도 내 밥벌이이며 내 생계를 유지해 주는 직업이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하고 싶었다. 나를 비롯해 수많은 공무원이 겪고 있는 뼈저린 후회를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똑같이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 마나 한 직장 이야기, 징징대는 이야기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회사원은 회사 얘기라면 지긋지긋하고 당장에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의미 없는 줄 알면서도 로또복권을 산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단순히 넋두리가 아니다. 1차적으로 9급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객관적으로 해부하여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직업 선택에 도움을 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며, 2차로는 일반 독자들에게 공무원의 생활상을 날것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왜 최근에 공무원 인기가 이렇게 떨어지고 있는지 사회적 이슈를 분석할 수 있는 지성과 교양을 넓힐 수 있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비판적인 시각만 담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 온전히 나쁜 일은 없는 법이다. 다른 직업에 비해 공무원이 상대적으로 가지고 있는 장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 책은 9급 공무원의 부정적인 면을 주로 부각시켰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9급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일 수도 있다. 공무원만이 누릴 수 있는 장점도 제시하여 균형을 맞췄다.      

‘9급 공무원 힘들다 힘들다 해도 하고 싶은 사람 널렸다.’ ‘공무원보다 못한 직업 많다’라며 반론을 제기하실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일자리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공무원은 아직도 매력적인 선택지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공무원은 원래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일해야 하는 직군이기 때문에 돈이 적다느니 민원인들에게 욕 좀 먹는다고 힘들다느니 우는소리 하면 안 된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사명감으로, 희생과 봉사의 마인드로 일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공무원도 하나의 직업이다.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직업으로 인정받는 의사도 불합리한 근무여건을 토로하며 국가에 이것저것 조치를 요청하는 시대다. 하급 공무원이라고 볼멘소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유로운 평가와 비판적 분석, 대책 마련 요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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