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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Jul 14. 2019

아름다운 도시와 두려운 첫만남

헝가리 여행기 -1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흔들리는 버스 안의 승객들은 마치 인큐베이터 안의 신생아처럼 모두 조용히 잠들었습니다. 버스는 유유히 흘러 부다페스트 시내로 들어서는 다리 앞까지 도착했습니다. 동시에 모든 승객들이 일어납니다. 도착했다는 알림이 있던 것도 아니고 버스가 멈춰 서도 아닙니다.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우렁찬 천둥에 깜짝 놀라 깨어났습니다. 천둥소리와 함께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강한 번개가 내리칩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해 비몽사몽 한 상태로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마치 물을 쏟아붓는 것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순간적으로 내리는 비는 한 방울씩 툭툭 떨어지다가 조금씩 강해지는 가랑비가 아닌 드럼통으로 내리 붇는 장대비입니다. 그토록 바라던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야경이지만 쏟아지는 비로 마치 안경 없이 바라보는 기분입니다. 그동안 비를 만난 적은 있어도 여행하는 도중 이렇게 강한 비는 처음입니다.



 버스는 다행히 사고 없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숙소까지 갈 길은 멀고 가는 여정도 험난합니다. 그래도 공항 터미널처럼 넓은 버스 터미널이라 다행입니다. 헝가리 화폐인 포린트로 환전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 환전소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ATM으로 비싼 수수료를 내고 돈을 인출했습니다. 오랜만에 우리나라처럼 화폐 단위가 높은 돈을 만지니 머릿속 계산이 복잡해집니다. 헝가리 환율은 1 포린트당 현재 4원 정도로 매우 높습니다. 인출을 마치고 드디어 세계 최초의 현대식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터미널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지하철로 가는 지하 도로에는 수많은 노숙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어떤 위협도 하지 않았지만 괜스레 몸을 움츠리고 눈을 안 마주치며 제 갈 길만 떠났습니다. 누덕 진 이불을 덮고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며 누워있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지만, 혼자 낯선 도시에 도착한 여행객에게는 두렵기만 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도시를 관통해 숙소 앞 지하철에 내렸는데 아직도 10분가량 걸어야 합니다. 밤거리가 이렇게나 무서운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차에 시동 거는 소리 나 옆 골목에서 나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기 일쑤입니다. 그동안 여행하며 밤에 도착하는 일정이 처음인지라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로맨틱하다고 소문난 부다페스트가 오늘따라 공포 스릴러 같습니다.



 다행히도 무사히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밤거리는 그렇게나 무서웠는데 숙소로 들어오자 너무나 안락합니다. 체크인하기도 전에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부터 돌렸습니다. 친절한 카운터 직원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는데 아직도 밤거리의 두려움이 씻어 나가지 못해 단어가 띄엄띄엄 들립니다. 침대를 배정받자마자 씻지도 않고 침대에 그대로 골인해 곯아떨어져 버렸습니다. 실체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온몸을 감싸는 것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헝가리에서의 첫날 밤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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