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여행기 -8
치타델라 요새에서 상큼한 햇살과 바람을 느끼지만 배고픔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부다 성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나오는 아무 레스토랑에서나 밥을 먹어야겠습니다. 높은 산으로 올라왔으니 이제는 내려가야 하는데 눈 앞에 부다 성이 손에 보일 듯 있지만 하산하는 길이 미로처럼 어지럽습니다. 엘리자베스 다리를 통해 올라온 길은 힘이 들지만 일직선이었는데, 북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정말 산 길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겨우 내려왔으나 주변에 들어갈 만한 레스토랑이 보이지 않습니다. 레스토랑처럼 보이는 곳이 보이지만 식사보다는 술을 파는 곳에 가깝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아다니는 심정으로 배를 채울만한 무언가를 갈망하며 걷다 보니 어느샌가 부다 성에 가까워졌습니다. 산 위에서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지만 어느새 손 앞에 다가왔습니다. 배가 고프지만 이왕 온 김에 올라봐야지 하며 힘든 다리를 하나씩 움켜쥐고 겨우 올라가려 했는데 다행히도 에스컬레이터가 있습니다.
빈틈없는 돌로 된 성벽 아래에 잘 만들어진 정원을 바라보면 마치 헝가리의 왕이 된 기분입니다. 다리가 아프니 잠시 앉아 이 풍경을 즐깁니다. 도나우 강과 부다페스트 전체가 보이는 전경을 배경으로 맥주 한 잔이면 완벽한 휴식이 될 듯합니다. 맥주가 아니더라도 차가운 음료와 뭔가 먹을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관광을 온 김에 끝까지 올라는 가보기로 했습니다.
부다 궁전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습니다. 화려한 성채는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곳의 역사는 무려 천년 가까이 됩니다. 몽골의 침입으로부터 용맹히 맞서 싸운 벨러 4세가 처음으로 성과 요새를 지었고, 14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졌다가 파괴되고, 다시 15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나 오스만과의 전쟁으로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으로 다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지고 난 후 또다시 대화재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 그래도 1904년 다시금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이 아름다움이 오랫동안 이어져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헝가리 혁명으로 아름다운 모습은 결국 막을 내렸습니다. 이 멋진 궁전이 사라졌다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손해일까요. 이후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헝가리인들 덕분에 20세기 말 복원에 성공해서 지금처럼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아주고 있습니다.
성을 받혀주는 성벽도 위엄 있고 성에서 바라보는 도나우 강도 유유히 흐릅니다. 하지만 뱃속 거지는 이런 아름다운 궁전에서도 죽지 않았습니다. 잠깐 앉아서 쉴 생각으로 들어간 곳은 마침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이런 멋진 곳을 그냥 둘러만 보고 나가기 아까우니 가격이 조금 나오더라도 풍경 값이라 생각하며 레스토랑에 들어섰습니다. 당당하게 돼지 스테이크와 레모네이드를 주문했습니다.
시원한 레모네이드와 탁 트인 풍경, 이보다 멋지게 이 부다 성을 즐길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양은 적으나 완벽하게 구워진 돼지고기는 바삭하고 풍미가 가득합니다. 토마토를 곁들여 먹으며 운치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입에서 녹아 사라졌습니다. 기분 좋을 정도로 맛을 즐기고 나니 푸른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눈에 띕니다. 푸른 구름은 포슬 거려 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킵니다. 내친김에 아이스크림도 하나 입에 물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입에 물고 왁자지껄한 소리를 따라 가보니 동상 아래에 춤바람이 났습니다. 무슨 음악인지는 모르지만 흥이 나는 음악에 맞춰 남녀노소 춤을 춥니다. 머리가 희끗거리는 노부부도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기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노래와 춤이 빨라지는 동안 시간의 속도는 더욱 천천히 흘러 이 분위기에 취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아름다울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