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여행기 -10
부다페스트에서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체크 아웃을 하고 1층에 앉아 가만히 떠다니는 부유물을 바라봅니다. 붕 떠있는 시간만큼 할 일 없는 날입니다. 12시에 버스를 타고 부다페스트를 떠나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향해야 하지만 10시에 체크 아웃을 하고 나니 2시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천천히 산책을 해도 될 시간이지만 숙소에서 터미널을 가는 시간과 가방 무게, 그리고 주변에 마땅히 걸어 다닐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그냥 로비에서 밀린 일기를 쓰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여행 계획을 확실하게 세웠다고 생각하였지만 하루가 날아가는 날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애매하게 오전에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동네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터미널을 가서 버스를 타고 다시 새로운 도시로 가면 시간은 저녁 먹기는 이른 오후 시간. 하루를 통으로 버스로 이동하는 데 사용합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해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 다니는 무서운 상황을 마주하기 싫어서 이렇게 일정을 계획했으나, 생각보다 사라지는 나날들이 많습니다. 첫 도시에서 얻는 두려움 없는 심리적 안정이냐 새로운 도시에서의 열정 있는 하루를 더 얻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비 오는 날 천둥 번개와 함께 만났던 부다페스트 버스 터미널은 맑은 하늘을 그대로 반사하며 푸른빛을 자아냅니다. 버스를 많이 타다 보니 버스에 잘 타기 위해 온 몸을 최적화시킵니다. 다행인 것은 화장실이 모든 버스 안에 있기 때문에 민감한 장을 비우기 위해 큰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적당히 빵이나 음료 같은 간식과 물을 사고 버스정류장 와이파이로 가는 동안 잠 자기 위해 볼 영상들을 유튜브로 다운로드하여 둡니다. 이외에도 넉넉한 배터리 충전기와 가는 동안 정리할 사진 파일들 목록, 그동안 쓴 예산안과 남은 예산안을 확인합니다. 이 정도로 충분한 준비를 마치고 나니 버스가 알람에 맞춰 도착합니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자리에 앉아 옆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는 넉넉히 여행하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안타깝게도 버스는 만원으로 출발합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잠시 기지개를 켜고 나니 금세 국경검문소에 도착합니다. 검문소에서 내려서 다 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직원이 모든 승객의 여권을 걷어갑니다. 직원이 피곤한 얼굴로 모든 여권에 도장을 찍는 동안 한국인을 만나 오랜만에 한국어로 수다도 떨어 봅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인 대전 출신의 세 친구들은 자그레브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빌려 요정의 숲으로 알려진 플리트비체로 바로 떠난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여행하는 것도 부러운데 차까지 렌트하다니 완벽한 여행 같습니다. 차를 빌리고 싶지만 가격도 문제고 운전 실력도 문제고 제일 큰 문제는 여행을 함께 할 친구들이 없습니다. 함께 가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일정이 서로 달라 새로운 만남으로만 만족하기로 합니다.
여권에 새로운 입국 도장이 찍히고 드디어 크로아티아로 들어왔습니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드디어 자그레브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헝가리에서 아쉬웠던 일정은 뒤로 하고, 이제는 새로운 마음으로 크로아티아를 맞이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