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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Sep 11. 2019

자다르, 석양 말고 낮에 봐도 예쁘다

크로아티아 여행기 -10

 자다르의 노을이 마치 영화 한 편 같았다면, 자다르의 내리쬐는 태양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아침부터 방으로 흘러 들어온 바다 내음에 잠에 깨 밖으로 나와 보니 맑은 날씨가 인사합니다. 무거운 캐리어는 숙소에 맡기고 버스 타기 전까지 한번 낮의 자다르를 돌아봅니다.


               

 고대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도시답게 곳곳이 로마의 향기가 가득합니다. 작은 성벽부터 구시가지의 입구까지 로마 시대의 유적이 반겨줍니다. 입구 왼쪽으로는 작고 푸른 공원이 있고 그 앞으로는 뜬금없이 전망대가 있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구불거리는 계단을 올라가 보니 붉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건물들의 고도 차이가 없어 마치 드넓은 붉은 평야를 보는 기분입니다. 저 멀리 해안선을 기준으로 하늘과 땅 단 둘이 있는 풍경은 질리도록 봐도 멋집니다.



 시가지 안을 돌아다닐수록 로마 유적은 늘어납니다. 어디를 가도 작은 건물 초석부터 거대한 기둥, 심지어 집터까지 이곳이 로마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석양만 유명한 마을인 줄 알았지만 태양 내리쬐는 시간에 돌아다니니 이런 작은 보석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마치 화석처럼 분포된 작은 초석을 머릿속에서 건물로 그려보려 하지만 상상력과 로마 시대의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그리기 실패합니다.



마지막으로 해안가 근처에 있는 높은 종탑을 올라가 봅니다. 내부의 골격이 앙상하게 드러나 있는 신기한 종탑입니다. 아까 만난 첨탑은 구불거리며 올라가는 길만 있었다면, 이곳 종탑은 종 치기가 된 기분으로 점점 거대한 종에 가까워지는 맛이 살아 있습니다. 녹이 슨 청동이 나무 골격에 매달려 위태로워 보입니다. 고소공포증이 없어 위험한 곳도 잘 올라가지만 이 나무판자들을 보면 오금이 저려 옵니다. 아래를 보지 않고 위만 바라보며 끝까지 올라가니 멋진 바다가 탁 트이게 나타납니다.



어제 태양이 사라졌던 그 수평선은 이제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게 닮았습니다. 태양의 인사가 있는 부두에는 이탈리아에서 온 듯한 거대한 크루즈 선이 자리 잡고 있고, 골목마다는 개미만 한 사람들이 유유히 걸어 다닙니다.


여행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평화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하늘의 색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늘이 무슨 색이었는지 생각할 시간에 눈이라도 한번 더 감았고, 골목에 사람들을 쳐다볼 시간에는 휴대폰에 온 수많은 연락들에 답장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늘을 쳐다볼 여유도 생겼고 골목에 사람들을 바라볼 시간도 생겼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라는 아름다운 문구를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원래 아름다운 것인데 아마 우리가 자세히 보지 않아 괴로워만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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