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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Sep 23. 2019

로마의 추억이 가득한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여행기 -12

 오래된 로마 건물 잔해들 사이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느낍니다.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스플리트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꽃보다 누나>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진 두브로브니크나, 석양으로 전 세계인을 매혹한 자다르 사이에 위치해서 스플리트는 두 도시를 한 번에 가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휴게소 같은 도시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저 또한 스플리트에서 눈을 떴을 때까지만 해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코 고는 소리에 잠에서 일찍 깬 덕분에 두브로브니크 가기 전까지의 시간이 넉넉해졌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실망감이 가득했던 버스 정류장으로 갑니다. 시간이 남았으니 짐 보관소에 바퀴 깨진 캐리어를 맡기고 홀가분하게 스플리트 관광에 나섰습니다. 우중충한 어제의 스플리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놀랍습니다. 푸른 하늘이 잔잔히 깔려 구름 한 점 방해하지 않는 멋진 해안도시를 어제는 회색빛의 별 볼일 없는 도시로 오해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다행입니다. 두브로브니크로 출발하기 전에 서둘러 둘러봐야 합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이 많습니다. 항구 도시답게 시원한 푸른 바다에는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습니다. 배 구경을 하며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오래된 벽돌로 된 성벽 아래에 상점들이 마치 5일장처럼 즐비해 각양각색의 물건들을 팔고 있습니다. 나무로 장식한 조각상이나 우쿨렐레, 각종 먹거리와 심지어 어망까지 없는 물건이 없습니다. 성벽 아래에 난 작은 통로 같은 남문을 지나니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으로 들어왔습니다.



 로마의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이곳 스플리트에서 은퇴 후의 실버타운을 건설했습니다. 4세기경 만들어진 이 궁전은 그 크기가 무려 축구장 4개의 크기고 정사각형 모양으로 17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은퇴 후의 별장으로 쓸 목적으로 만든 곳이지만 그 크기가 너무 거대해 마치 하나의 도시 요새 같습니다.


 그동안 봤던 동유럽의 수많은 건물들과 다른 색다른 로마의 흔적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눈 안으로 돔니우스 성당과 종탑이 들어왔습니다. 사실 디오니클레티아누스는 살아생전 기독교를 황제의 자리를 위협하는 강한 적으로 규정하고 냉정하게 박해했던 황제였습니다. 그는 죽은 뒤 궁전 안의 이 성당 자리에 잠들었는데 죽음 이후 그토록 박해당하던 기독교는 결국 정식 종교로 인정을 받았고, 이후 로마 전역에 걸치는 발전을 하게 됩니다. 죽은 후 수백 년이 지난 중세 시대, 이 지역의 주교였던 라벤나 주교는 디오니클레티아누스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시체를 없애 버리고 황제의 박해로 순교한 돔니우스를 성자로 추대해 이곳에 성당을 세웠습니다. 그 성당이 바로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돔니우스 성당입니다.


 피의 박해를 펼쳤던 황제는 시체도 찾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고, 박해로 순교한 신부는 자신을 죽인 황제의 시체가 있던 묘지 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성당으로 후대에 남게 된 아이러니한 역사입니다.


 고개를 치켜들어 높이를 가늠해보니 꽤나 높습니다. 이런 전망대를 보면 꼭 오르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참을 수 없어 바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날씨도 좋아 멋진 바다풍경을 볼 생각으로 신나게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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