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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Sep 16. 2019

첫인상은 별로인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여행기 -11

 자다르를 떠나 스플리트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거립니다. 자다르의 낮을 구경하고 왔기 때문에 스플리트에 도착하니 하늘은 회색빛이 돕니다. 시간이 애매해서 인가, 그동안의 크로아티아 도시들과 다른 풍경이라 그런가 너무 평범해 보입니다. 유화 같은 풍경의 자그레브나 화려한 축제 같았던 플리트비체, 그리고 밤과 낮의 두 얼굴로 로맨틱했던 자다르와 다르게 스플리트는 도착해서부터 온통 회백색의 도시 같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숙소를 가기 위해 트렁크를 끌고 좁은 길을 걸어갑니다.


 오늘따라 캐리어가 무겁습니다. 배낭여행이지만 길이 잘 되어있는 탓에 이번 여행은 캐리어를 들고 다녔는데, 마치 돌덩이를 올려 둔 것처럼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바퀴에 뭐가 끼어 있나 싶어 캐리어를 뒤집어 보았는데 바퀴가 아예 주저앉았습니다. 한 달여간의 이동에 드디어 캐리어가 고장 났습니다. 큰일입니다. 아직 여행이 끝날 때까지 7번의 이동이 더 남았는데... 눈 앞이 캄캄해집니다. 안 그래도 겨울 옷부터 여름옷까지 모든 옷이 들어간 무거운 무게를 하루 걸러 한 번씩 이동해야 했기에 여기까지 캐리어가 버텨준 것만 해도 용합니다.

 캐리어가 망가진 것 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모스크바부터 시작된 긴 여행은 언제나 이동이었습니다. 러시아를 나오고 난 이후로는 2박 3일 이상 묶은 도시가 없습니다.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여유롭게 있는 시간은 짧고 대부분 이동에 이동을 거듭했습니다. 처음 여행을 기획했을 때는 장기 여행은 처음인지라 최대한 많은 도시를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되다 보니 자다르나 플리트비체처럼 한국에서부터 간절히 원하던 도시가 아니면 이제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도 그저 그런 기분입니다.


 그동안의 모든 도시가 흥겨웠던 것은 아니지만, 캐리어도 망가지고 나니 드디어 혼자만의 패키지 투어가 얼마나 무리였는지 실감 납니다.



고장 난 캐리어를 억지로 끌고 언덕을 지나 드디어 지도에 숙소가 찍힌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겉 보기에는 아웃렛 같아 보이지만 너무 휑합니다. 마치 버려진 도시의 폐허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80년대의 쇼핑몰 같은 곳을 서서히 들어가 보니 간간히 사람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외관이 주는 골계미는 여전합니다. 여기저기 멋대로 그려져 있는 그래비티는 덤입니다.


다행히 숙소는 생각보다 깔끔합니다. 각 방의 침대는 마치 캡슐 호텔처럼 자신만의 공간을 누릴 수 있게 생겼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망가진 캐리어만 침대에 던져둔 채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건물들이 주는 오래된 느낌과 달리 레스토랑이나 마트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마트에서 간단히 간식거리만 사고 근처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마쳤습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자다르에서 멋진 풍경을 누렸지만, 캐리어도 망가지고 새로운 도시의 기대감도 사라진 오늘은 달달한 푸딩으로 그나마 기분 전환을 하고 하루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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