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추억이 가득한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여행기 -12

by 박희성

오래된 로마 건물 잔해들 사이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느낍니다.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스플리트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꽃보다 누나>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진 두브로브니크나, 석양으로 전 세계인을 매혹한 자다르 사이에 위치해서 스플리트는 두 도시를 한 번에 가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휴게소 같은 도시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저 또한 스플리트에서 눈을 떴을 때까지만 해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코 고는 소리에 잠에서 일찍 깬 덕분에 두브로브니크 가기 전까지의 시간이 넉넉해졌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실망감이 가득했던 버스 정류장으로 갑니다. 시간이 남았으니 짐 보관소에 바퀴 깨진 캐리어를 맡기고 홀가분하게 스플리트 관광에 나섰습니다. 우중충한 어제의 스플리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놀랍습니다. 푸른 하늘이 잔잔히 깔려 구름 한 점 방해하지 않는 멋진 해안도시를 어제는 회색빛의 별 볼일 없는 도시로 오해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다행입니다. 두브로브니크로 출발하기 전에 서둘러 둘러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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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이 많습니다. 항구 도시답게 시원한 푸른 바다에는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습니다. 배 구경을 하며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오래된 벽돌로 된 성벽 아래에 상점들이 마치 5일장처럼 즐비해 각양각색의 물건들을 팔고 있습니다. 나무로 장식한 조각상이나 우쿨렐레, 각종 먹거리와 심지어 어망까지 없는 물건이 없습니다. 성벽 아래에 난 작은 통로 같은 남문을 지나니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으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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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이곳 스플리트에서 은퇴 후의 실버타운을 건설했습니다. 4세기경 만들어진 이 궁전은 그 크기가 무려 축구장 4개의 크기고 정사각형 모양으로 17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은퇴 후의 별장으로 쓸 목적으로 만든 곳이지만 그 크기가 너무 거대해 마치 하나의 도시 요새 같습니다.


그동안 봤던 동유럽의 수많은 건물들과 다른 색다른 로마의 흔적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눈 안으로 돔니우스 성당과 종탑이 들어왔습니다. 사실 디오니클레티아누스는 살아생전 기독교를 황제의 자리를 위협하는 강한 적으로 규정하고 냉정하게 박해했던 황제였습니다. 그는 죽은 뒤 궁전 안의 이 성당 자리에 잠들었는데 죽음 이후 그토록 박해당하던 기독교는 결국 정식 종교로 인정을 받았고, 이후 로마 전역에 걸치는 발전을 하게 됩니다. 죽은 후 수백 년이 지난 중세 시대, 이 지역의 주교였던 라벤나 주교는 디오니클레티아누스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시체를 없애 버리고 황제의 박해로 순교한 돔니우스를 성자로 추대해 이곳에 성당을 세웠습니다. 그 성당이 바로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돔니우스 성당입니다.


피의 박해를 펼쳤던 황제는 시체도 찾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고, 박해로 순교한 신부는 자신을 죽인 황제의 시체가 있던 묘지 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성당으로 후대에 남게 된 아이러니한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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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치켜들어 높이를 가늠해보니 꽤나 높습니다. 이런 전망대를 보면 꼭 오르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참을 수 없어 바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날씨도 좋아 멋진 바다풍경을 볼 생각으로 신나게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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