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성 Sep 29. 2019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로마

크로아티아 여행기 -14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구시가지의 집약체입니다. 잠깐 발걸음을 옮기면 새로운 건물과 색다른 골목으로 눈이 즐겁습니다. 종탑을 내려오면 바로 옆 광장 쪽으로 황제의 알현실이라는 유적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황제의 알현실은 황제를 만나기 전 예의를 갖추고 황제를 기다리던 공간으로 종탑을 올라가며 보이던 둥근 공간입니다. 위에서 보면 둥근 구명처럼 보이던 알현실의 돔은 안으로 들어가면 로마의 상징인 판테온처럼 원을 그리며 올라가는 신기한 구조입니다. 머리 위로 뚫린 정확한 원 안으로는 푸른 스플리트의 하늘이 쏟아져내려 불빛 하나 없어도 이 안이 환하게 비칩니다. 



황제의 알현실 안에는 크로아티아 전통 음악을 하는 아카펠라 그룹이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악기 없이 이 일곱 명의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음악이 둥근 돔을 타고 웅장하게 울려 퍼집니다. 따듯한 햇살 받으며 들려오는 아름다운 노래가 너무 몽환적입니다. 옆에 서 있던 할머니는 자신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고 자랑합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이 알현실의 유명인으로 벌써 몇 년째 이 지역의 전통 음악인 클라파를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연륜과 실력을 겸비한 아름다운 노래는 돔 밖으로도 울려 퍼지며 사람들을 끌어모읍니다.



알현실 근처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의 신전이 있습니다. 로마의 유적이기 때문에 주피터 신전인데 신 중의 신이라 불리는 제우스의 신전 치고는 뭔가 작고 아담합니다. 다른 도시들에 있던 중세 시대의 조각이나 부조와 달리 이 신전의 조각들은 만화 캐릭터처럼 엉성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마치 박물관에 있던 고대시대 유물 같습니다. 청동으로 조각된 제우스의 모습도 앙상히 마르고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천둥의 신이라기보다는 못 먹은 걸인 같은 모습입니다. 동상 앞에는 신에게 바치는 제단이 하나 있는데 전 세계의 지폐와 동전이 가득합니다. 개중 천 원짜리도 눈에 띕니다. 각종 동전들 사이에도 백 원, 오백 원짜리 동전들도 있습니다. 무슨 소원들이 있는지 몰라도 각양각색의 소원들이 돈을 타고 제우스 앞에 바쳐졌는데 엉뚱한 궁금증이 듭니다. 만약 제우스가 이 화폐들을 본다면 돈을 낸 사람들의 마음만 받을까, 아니면 환전을 하지 않아 간절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할까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저도 주머니 안에 있던 동전 몇 개를 던져봅니다.

 




 제우스 신전을 나와 구불거리는 골목들을 걷다 보니 어느덧 배가 고파집니다. 새우가 탱글 거리는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음료수를 손에 든 채로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광장 성벽을 지나 항구로 나왔습니다. 항구 옆으로 걷기 좋게 구성된 올림픽 거리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크로아티아 메달리스트들의 이름이 새겨진 곳입니다. 마르얀 언덕을 눈앞에 두고 이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맑은 물 사이로 고기들이 헤엄쳐 다닙니다. 햇빛이 뜨거운데 물속은 시원해 보여 뛰어들고 싶은 욕망을 참기 힘듭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어디인지 헷갈릴 정도로 하늘을 닮은 바다에는 시원하게 요트들이 달립니다. 한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쉬는데 햇빛이 너무 뜨겁습니다. 서둘러 시원했던 궁전으로 돌아갑니다. 



 궁전 남문으로 다시 들어가는 길에 성벽 안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동굴처럼 생긴 이 성벽 아래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우선 두꺼운 돌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못해 차가운 기운이 오랫동안 계속됩니다. 밖과는 다른 시원한 기운을 만끽하며 각종 로마시대의 파편을 보다 보니 돔니우스 성당이 아름답게 보이는 골목이 나왔습니다. 지하와 지상, 골목과 광장이 얽히고설켜 마치 매트릭스 구조처럼 되어 있어 미로 같은 도시입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로마의 옛 터를 마무리하고 아름다운 종탑이 보이는 어느 한 로마의 흔적 위에 앉아 남은 시간을 만끽합니다. 오래된 건물에 취하고, 아기자기한 골목에 취하고 술 한 잔 마시지 않고 기분 좋아지는 날입니다.






이전 13화 높은 전망대가 끌립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