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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Nov 11. 2019

모든 행복이 융합되는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여행기 -16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느라 진이 다 빠졌습니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끝이 없는 성벽을 걷는 것은 마치 수행 길을 걷는 목자의 심정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웅장한 성벽을 걷는다는 것이 기뻐서 미처 선크림을 바르지 못한 목뒤가 타는 지도 모르고 걸었습니다.                   


      

 성벽 아래에 난 관문을 통해 들어오면 하얀 대리석이 반질거리는 구시가지가 나타납니다. 고대 신전이 있을법한 상아색의 바닥은 반질거리며 햇빛을 반사시켜 눈이 부십니다. 멋들어지게 선글라스를 코 위에 걸치고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우선 두브로브니크의 명물인 성벽 투어를 해보았습니다. 입구 바로 옆으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통해 올라가는 성벽은 장장 한 시간가량 걸리는 엄청난 길이를 자랑합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담은 성벽인지라 <왕자의 게임>, <스타워즈> 등에서 중세의 모습을 재현하는 촬영을 많이 한 탓에 수많은 기념품 상점에는 관련 기념품이 가득합니다. 특히 최근에 방영된 <왕자의 게임>의 칼이나 옷을 보는 관광객들의 눈에는 하트가 가득합니다.


 성벽 위로 올라가며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어마어마한 한국인들이었습니다. <꽃보다 누나>라는 여행 예능 프로그램으로 크로아티아가 소개되었는데, 며칠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는 것은 많이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 덕분에 이제 낭만적인 동유럽 여행이라고 하면 체코에 이어 크로아티아도 한국에서 이렇게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명절도 아닌데 이렇게 한국인이 많을까 생각해보는데, 마침 오늘이 어버이날부터 석가탄신일까지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 기간입니다. 덕분에 5~60대의 꽃보다 누나들이 성벽 위를 가득 메웠습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등산하듯이 성벽을 오르는데 그 얼굴에 핀 꽃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그다음으로 심장을 때리는 듯 다가온 것은 웅장함 그 자체였습니다. 대학교 미학 수업에서, 한 교수님께서 우리 인간은 우리를 압도하는 무한한 힘을 만나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자기 보전의 능력 때문에 불쾌감을 느끼고 그 불쾌감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어떤 것을 만나면 숭고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겉핥기로 배운 짧은 지식이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 숭고함이라는 미학 용어를 배울 때 저는 성벽 위에 올랐던 기분이 생각났습니다. 성벽 위에 올라서 요새를 바라보면 끝없는 성벽이 나타났고, 멋진 장관 아래로 펼쳐진 빛나는 대리석의 거리는 평화롭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에 이끌려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 나타나는 바위산의 웅장함은 이 모든 감정을 하나로 묶어주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모릅니다. 

 

 한 발자국 걸어갈 때마다 바뀌는 풍경 때문에 카메라로 한번 담고, 눈으로 한번 담고, 자세히 다시 보느라 도저히 앞으로 가기 힘듭니다. 성벽 아래로 뻗은 푸른 눈동자 같은 바다가 잡아먹을 듯 포효하며 푸른 포말을 주기적으로 뿜어냅니다. 길을 따라 걸으면 나오는 성벽의 각양각색의 모습에 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벽 위로 쏟아지는 성벽과 맑고 깨끗한 아드리아해, 그리고 카누를 타며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모든 모습이 완벽합니다. 이후 정확히 산 반대 방향에 도착해 바위산을 바라보니 높은 성곽과 더 높은 산이 하나가 되어 장관을 이룹니다. 수평선으로 향하는 조각배조차 외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하얀 구름을 닮아 점차 흰색을 띠는 성곽을 따라가면 <꽃보다 누나>에 나왔다던 카페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석양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진을 치고 앉아있어 발 뻗을 공간조차 없습니다. 그래도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얼음 가득한 주스 한 잔을 손에 들고 다시 성벽을 타니 이것 또한 즐겁습니다. 성곽을 드디어 반 바퀴 돌았는데 또다시 다른 풍경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항구입니다. 성곽 위에서도 물고기가 지나가는 것이 보이는 맑은 물을 담은 항구에는 요새를 둘러 가는 배들이 오갑니다. 어느덧 걷다 보니 힘이 들어 이 항구를 배경으로 앉아 쉬면서 이 풍경에 녹아들었습니다. 물이 너무 맑아 마치 보트가 공중에 떠 있는 듯 착시를 불러옵니다. 선선한 바닷바람의 짠 내를 맡으며 이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립니다. 구시가지 안에 있는 성당의 종소리가 이 성곽을 타고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냅니다. 울려 퍼지며 사라지는 음악이 아니라 마치 이 안을 몇 바퀴 돌며 못 들은 사람 없나 찾는 기분입니다. 


 드디어 이 성곽 여행의 방점을 찍는 종탑에 도착했습니다. 그동안의 풍경의 아름다움을 모두 총망라한 이 종탑에서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직도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치 시간조차 멈춘 듯한 이 풍경 속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쌓이고 녹아들었습니다. 더 이상 소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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