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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07. 2019

꽃보다 누나들의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여행기 -15


두브로브니크의 첫 아침에 만난 깨끗한 하늘은 마치 투명한 유리구슬 같습니다. 전날 스플리트에서 느지막이 출발한 탓에 어둠과 함께 달리던 버스는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습니다. 주황색 가로등 빛만 가득한 거리를 지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다들 잠자리에 들었기에 저도 빨리 해가 뜨기 전에 잠에 들었습니다. 덕분에 아침 일찍 일어나 두브로브니크의 뽀얀 얼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두브로브니크의 정수가 담긴 구시가지까지 가는 길도 푸른 하늘의 색에 물들어 푸르릅니다. 오늘 발자취를 남긴 숙소는 다름 아닌 호스텔 365 포 유 라는 곳입니다. 깔끔하고 저렴한 이 숙소는 구시가지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습니다. 덕분에 두브로브니크의 민낯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푸른 도시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바다 내음이 몰려옵니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니 멋진 절경이 펼쳐집니다. 절벽 아래로 보이는 새파란 바다는 어찌나 맑은지 바닥이 투명하게 보입니다. 하늘 아래 같은 풍경은 없는지, 자다르와 스플리트에서 보았던 바다와 같은 바다인데 전혀 색다른 풍경입니다. 주변 절벽의 기암괴석들이 더욱 이 풍경을 그림처럼 만들어줍니다. 아찔한 절벽과 푸른 바다는 유화 물감을 풀어둔 듯 울렁거리고 햇빛을 받은 바다는 물고기 등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해안 도로를 따라가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철조망이 쳐져 있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던 철조망에는 자물쇠가 가득합니다. 



김영하 작가가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한 말처럼, 사랑이 영원하다는 약속과 변치 않는 마음이 없으니 눈에 보이는 곳에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염원이 가득합니다. 여기에 새기고 떠난 사랑들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남은 자물쇠는 이미 녹이 슬어 부서지기 직전입니다. 떠나버린 사랑들 사이에는 녹슬어 부러진 사랑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아 걷다 보니 어느새 구시가지의 입구인 필레 게이트나 눈에 보입니다.



웅장한 절벽 위의 성벽 아래에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바다에 잠깐 발을 담가보았습니다. 드디어 발트해에 처음 발을 담그고 아드리아 해에 발을 담가 보았습니다. 이제야 유럽 종단이 끝으로 달려간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진을 찍으며 바람을 느끼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언어가 들려옵니다. 한국어로 대화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에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이 대의 중년 아주머니들이 패키지 관광을 오셨나 봅니다. 수많은 얼굴에는 웃음만 가득합니다. 꽃보다 누나로 유명해진 크로아티아는 어디서나 한국어를 들어 볼 수 있었는데 이곳 두브로브니크에서는 특히나 패키지 여행객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체코를 가고 싶다면 가족들과는 이곳 크로아티아를 오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패키지 오신 아주머니들은 보니 부모님께도 꼭 한 번 이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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