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성 Sep 29. 2019

높은 전망대가 끌립니다

크로아티아 여행기-13


호기롭게 돔니우스 성당의 종탑으로 올라가 보았지만, 그동안 만난 종탑 중 가장 높아 보입니다. 네 발로 기어오르다시피 끙끙대며 올라가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고소공포증이 생긴 기분이고 위를 바라보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겨우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아래에서는 보지 못했던 로마 역사의 파편들이 즐비한 모습이 보입니다. 한때 이 넓은 도시에 가득했던 로마 양식의 건물들의 교각과 기둥들이 푸른 잔디 위로 널브러져 있습니다. 정말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도시일까라는 의심이 사라집니다. 



계단을 점점 올라갈수록 눈 안으로 들어오는 로마의 향기는 점차 짙어져 갑니다. 황제의 알현실이라 불리는 집무실 같은 건물도 점차 올라갈수록 나타나고, 지붕 위에서 빨래를 터는 주민들도 보입니다. 모든 풍경들이 시시각각 바뀌는 것이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입니다. 어느덧 계단이 끝나가고, 드디어 넓게 펼쳐진 마르얀 언덕과 눈을 마주합니다. 드디어 등반이 끝나고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큰 장식물 없이 소박하게 이루어진 성 돔니우스 성당의 종탑은 스플리트의 모든 순간을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카메라는 잠시 내려두고 산에서 불어오는 깨끗한 바람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동시에 느끼며 미세먼지 없는 이 깨끗한 풍경을 오로지 두 눈으로만 담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전망대에 걸 터 앉아 바깥을 보면 아드리아 해에 떠 있는 거대한 페리가 있는 선착장이 보이고,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마르얀 언덕의 반짝이는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옵니다. 높은 곳에 올라오면 이런 아름다움을 고개 잠깐 돌리는 걸로 볼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합니다. 북서쪽으로 태양을 등진 말리 코쟉(Mali Kozjak)이라는 돌산이 마치 병풍처럼 이 도시를 감싸주고 있고 그 산맥을 따라 낮은 지붕들과 높은 성곽이 마치 휘갈긴 악보처럼 이어집니다. 



전망대의 돌난간 위에 앉아 한참을 밖을 바라보는데 한 커플이 먼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품앗이를 제의합니다. 멋지게 폼 잡고 사진을 찍고 다시 커플의 아름다운 사랑을 찍어주었습니다. 웃으며 감사하다는 커플을 뒤로하고 다시 난간에 낮아 수평선을 바라보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 봐야 한다는 쓸쓸함이 문득 바람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이런 멋진 곳에 노후 별장으로 궁전을 지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분을 알겠습니다. 혼자라면 쓸쓸하지만 도시를 지어 풍족하게 이 풍경을 즐기고 싶을 때마다 즐기는 노후는 가장 아름다운 노후일 것입니다.



풍경을 보고 황홀하다는 기분은 플리트비체에서 끝인 줄 알았는데 이 스쳐 지나가듯 만난 스플리트도 그에 못지않은 황홀함을 선사합니다. 성벽 뒤로 또다시 산맥이 빼곡한 도시를 지켜주니 그 어떤 걱정이라도 문제없고, 마르얀 언덕과 아드리아해로 이어지는 장엄한 자연의 하모니는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이게 바로 황홀함 아니면 무엇일까요. 그동안의 여행에서 다시 오고 싶은 나라 1순위로 크로아티아가 자리 잡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색을 마치고 내려오기 싫은 마음은 가슴속에 담아두고 아까운 시간이 더 사라지기 전에 도시를 더욱 즐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전망대를 내려갑니다.



이전 12화 로마의 추억이 가득한 스플리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