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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Jan 14. 2020

나를 '규정'하는 것은 한식이었다.

크로아티아 여행기 -17

 푸른 하늘 빛깔을 닮은 아드리아 해를 끼고 있는 성벽 안에는 점심시간만 되면 따듯한 빵 굽는 냄새부터 시작해 다양한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찹니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성벽을 돌다 보니 벌써 배가 고파집니다. 태양이 번쩍이는 큰길과 달리 한 폭의 작은 골목은 성벽과 같은 색의 아이보리색이지만 소소한 정취가 살아 있습니다.


 돌벽 사이에 난 작은 계단을 통과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나올 듯합니다. 로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도시의 작은 전등에서 한국의 향취가 느껴집니다. 한식을 먹은 지 일주일이 되니 입구에서부터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샘이 돋습니다. 한국인 사장님이 인사를 해주며 반겨주고, 한국인들도 가득합니다. 한식 냄새도 퍼지고 한글로 된 장식도 한가득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은 반갑습니다.


 분명 한국을 떠난 이유는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떠나서 낯선 도시의 새로운 풍경과 멋에 녹아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는 다양한 문화적 충동을 즐길 뿐만 아니라, 색다른 음식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움이 익숙함이 되어 갑니다. 매일 마다 세 끼니 만나던 한식이 오히려 이제는 신선하게 다가오고, 한국에서 가끔 만나던 피자나 파스타가 이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한 개인의 문화적 특성을 설명하는 것은 살아온 문화 환경에서 정의되는데, 그중 음식만큼 바꾸기 힘든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햇빛이 성벽에 아름답게 퍼져가는 창가에 앉아 크로아티아의 해물과 한국의 라면이 만난 조화로운 해물 라면이 나옵니다.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배는 골골대며 눈 앞의 진수성찬을 빨리 넣어 달라며 애걸복걸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라는 서투른 한국어를 구사하는 크로아티아의 아르바이트생에게 감사하다는 눈인사를 남기고 드디어 한 젓가락 들었습니다. 한국에 비해 그리고 크로아티아 물가를 생각하면 비싼 편이지만 그냥 끓인 라면이 아니라 면만 라면이지 해산물의 감칠맛과 다양한 야채의 식감 덕분에 한 그릇의 짬뽕을 먹는 기분입니다. 맵고 뜨겁고 짠 음식이 오랜만이라 위장이 놀라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걱정은 미래의 저에게 부채를 집니다. 탱글 거리는 오징어와 새우는 진부하지만 더 좋은 표현이 없는 '입 안에서 탱글 거리는' 기분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이열치열로 만난 해물 라면 덕에 시원하게 땀이 빠집니다. 그리고 마무리하는 입가심으로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국인이 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돌아다닌 그 어떤 나라에서도 아메리카노는 거의 만나보기 힘들었습니다. 작은 잔에 풍미를 담은 에스프레소는 만난 적이 많지만, 차가운 유리컵에 굵은 얼음이 함께 들어간 아메리카노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여행은 나의 성격부터 모든 것을 바꾸고 있지만 아무래도 입맛은 바꾸지 못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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