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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반도의 시골 마을에서 만난 한국의 정

몬테네그로 여행기 -3

by 박희성

코토르의 성벽을 정복하고 내려왔지만 감동의 물결은 아직 마음속에서 울렁입니다. 산행으로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절벽으로 떨어질 수 없다는 일념 하에 돌난간을 부여잡고 간신히 내려왔습니다. 계단으로 내려오니 코토르 구시가지의 광장이 나옵니다. 작은 도시라고 해도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구시가지의 유물들이 아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한쪽으로는 거대한 돌산과 성벽이, 그리고 한쪽으로는 바다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도시가 크게 있을 수는 없지만, 작아도 알차게 구성되었습니다. 광장의 성당들을 바라보며 잠시 앉아서 쉬다 보니 어느새 배가 다시 고파졌습니다. 세상 그 어떤 원자시계보다 정확한 신체 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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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더니 한국인 주인 내외분께서 벌써 돌아왔냐고 물어보십니다. 한국에서 은퇴하시고 한적한 나라를 찾아오신 사장님 부부는 게스트 하우스의 이름도 Kotor Korean Guest House로 지어 두시고 한국과의 연을 이어가고 계셨습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이미 다녀간 흔적이 집안 곳곳에 보입니다. 추억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이 게스트 하우스에도 많은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는지 손님들이 쓰고 간 다양한 언어의 편지들이 걸려있습니다. 그나마 읽을 수 있는 한국어로 된 다른 사람들의 추억을 읽어보았는데 대부분 사장님 내외분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분들의 따듯함이 모든 손님들에게 닿았나 봅니다.


오랜만의 산행 때문에 다리가 아파 숙소에서 사장님과 잠시 앉아 수다를 떨었습니다. 여행부터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사모님께서 저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십니다. 이 주변의 식당을 찾아가려 했는데 사모님이 양손을 흔들며 오랜만에 온 한국인이라며 낯선 곳에 왔으니 한식을 대접하겠다고 하십니다. 금세 김치를 썰어 넣고 각종 야채를 볶아 시원한 김치 수제비를 만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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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느끼는 한국의 정입니다. 거대한 돌산으로 둘러싸인 바다처럼, 이방인들로 둘러싸인 코토르에서 만난 한국인은 이분들에게도, 저에게도 남다른 의미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언제나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직면합니다.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심지어는 귀찮아합니다. 우리가 같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나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도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문화권 밖으로 나오면 우리가 그동안 속했던 그곳에 대한 강한 향수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 향수는 같은 언어를 쓰고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을 보면 마치 오래된 가족을 만나는 듯이 우리의 냄새를 맡게 합니다. 그리고 우린 비로소 '정'을 깨닫게 됩니다.


사장님 덕분에 배도 마음도 따듯해지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루밖에 없는 일정을 탓하며 코토르의 야경을 보러 갔습니다. 짧은 코토르 여행이었어도 알차게 보내고 있습니다. 바다를 길게 둘러쌓고 있는 도시라서 화려하고 번쩍이는 야경은 없더라도 잔잔한 밤바다의 파도같이 조용하고 한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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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의 불빛보다 물 위에 퍼지는 야경이 더 넓고 몽환적으로 퍼지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맑은 바닷물 사이로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다닙니다. 저 멀리 아까 올랐던 성곽에도 불빛이 마치 성을 지키는 군사들처럼 조금씩 서 있습니다. 천천히 도시를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오니 이 도시에서의 하루가 너무 짧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사장님도 더 머무르고 가라고 하셨지만, 빡빡한 일정 탓에 어쩔 수 없습니다.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이제 여행은 마지막 한 나라만 남았습니다. 아쉽지만 그리스에서 이 모든 여정이 끝이 납니다. 길기도 길었고 어떻게 보면 짧기도 했던 이 여행이 드디어 끝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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