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행기 -9
오늘 점심은 여행 중 마지막 한식을 먹기 위해 떠났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한식을 먹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내일모레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한식은 하루에 한 번 먹더라도 부족합니다. 그동안 그리스식으로 식사를 꽉꽉 채워서 해 왔으니 오늘은 한식을 먹어도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아테네의 중앙에 위치한 신타그마 광장의 한 골목으로 들어가니 미리 찾아둔 한식당이 나왔습니다. 주황색 간판으로 도시락이라고 쓰인 한국어가 보이니 반갑습니니다. 햇살이 뜨거워 땀을 흘리며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맞아줍니다.
이번 그리스 여행을 올 때 가장 많이 본 프로그램은 한동안 유명세를 떨쳤던 <꽃보다 할배>의 그리스 편이었습니다. 유명 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노년 배우 4인방이 배낭여행을 떠나는 예능에서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이 한식당을 들렸습니다. 음식과 분위기도 좋고 비싼 가격이면 학을 떼는 이서진도 부담 없이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아테네에 가서 한식을 먹고 싶다면 이곳을 가야겠다며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 한식당에 오게 되었습니다.
식당에는 다양한 한식뿐만이 아니라 중식이나 초밥 같은 일식도 판매 중이었습니다. 여행 중에 한식을 먹는 이유는 뜨끈한 국물을 먹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육개장을 한번 먹어보기로 합니다. 주문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적인 장식품들이 가득합니다. 빨간 실과 파란 실이 묶여 있는 하회탈도 있고, 대나무로 만든 듯한 키도 있습니다. 한참을 구경하고 있으니 음식이 나왔습니다. 파전과 감자볶음 그리고 김치가 반찬으로 나열되고 붉은 육개장까지 나옵니다.
색색의 음식들이 나열된 식탁을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입니다. 붉은 육개장에 노란 전과 감자 그리고 푸른 브로콜리까지. 색동옷을 입은 식탁의 음식들을 한 입씩 먹어보니 간이 잘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과 다르게 자극적이고 뜨거운 육개장을 먹으니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집에서 먹는 밥처럼 잘 만들어진 쌀밥을 빨간 육개장 국물에 넣어 봅니다. 흰쌀밥이 빨갛게 물들어가니 너무나 먹음직스럽습니다.
바닥에 깔린 후춧가루까지 모두 긁어먹으니 포만감이 넘쳐흐릅니다. 한국인의 기운이 넘쳐흐르는 기분입니다. 어차피 내일모레면 한국으로 돌아가 평생 먹어온 한식을 다시 먹을 텐데 왜 이리 그리워할까요. 한국에서 밥을 먹으면 항상 색다른 음식만 찾아 떠나지만 이렇게 외국에 있으면 매콤하거나 뜨거운 한식이 그립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평생 몸에 새겨진 DNA 탓인 듯합니다. 한식을 끊으면 마치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도로 한식으로 돌아가려는 관성이 생깁니다. 내 근본, 그리고 나를 구성한 문화로 돌아가는 본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한식은 결국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낳고 끝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