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성 Apr 13. 2020

아폴로를 담배처럼 피우며 어른이 되고 싶던 아이

러시아에서 담배를 나눠 피며 생각한 어른이란

 러시아의 담배 문화는 신기하다. 의외로 푸틴이 담배를 싫어해 가격을 지속해서 올렸음에도 비정상적으로 낮은 담배 가격 때문에 90년대 우리나라처럼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담배를 나눈다. 담배를 주는 사람도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담배를 얻을 수 있으니 군말 없이 담배를 나눠준다. 나눠 주는 것은 여행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붉게 타는 노을을 받아 더욱 눈부셨던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을 나와 골목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었다. 수염을 가슴까지 길렀지만 머리는 빛나 마치 판타지 소설의 드워프처럼 생긴 한 남자가 다가와 담배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주고 불을 붙여주니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고 수염 사이로 담배를 내뿜으며 몇 살이냐고 물었다. 외지에서 온 작은 소년처럼 보이는 사람이 담배를 나눠주니 신기한 듯했다. 눈가에 주름이 살짝 지고 긴 수염을 가진 남자 옆에 왜소하고 솜털 같은 수염을 가진 남자가 함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마치 어른과 꼬마가 함께 흡연하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 옆에 서니 내가 어른이 맞나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담배를 피우는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꼬마들끼리 모여 불량식품인 아폴로를 입에 물고 상상 속의 연기를 후 뱉으며 담배를 피우는 척을 했다. 그리고 마치 어른이 된 듯 장난치며 놀았다. 어른에 대한 환상은 담배로 표현되었다. 이 당시 생각하던 어른이라는 존재는 멋있기만 해 보였고, 돈도 잘 벌며 언제나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스무 살이 되고 투표권을 얻은 후에는 이제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다. 나의 행동에는 학교라는 보호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른이라고 불리기엔 부족했다. 어른이 되기 위해 허들을 넘었지만 어른은 머나먼 존재 같았다.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이제 어른인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떠올랐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른이라는 관념이 서서히 바뀌었다. 어른이라고 모두가 멋있고 자신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취직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선배들이 어른처럼 보였다. 정말로 취직을 하니 조금 어른이 된 기분이긴 했다. 학교와 공부만 알던 학생에서 처음으로 출근하고, 처음으로 세금도 내고, 처음으로 보험도 알아보았다. 어른들이 말하던 사회의 맛을 보니 어느새 조금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처음이 지나고 난 이후부터는 다시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내가 어른이 맞을까. 처음 담배를 사거나 투표를 할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거울을 보면 고등학생 때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다 보면 그 시절보다 빠르게 자라는 수염과 퍼석하지만 회복되지 않는 피부를 보면 조금 늙은 것 같기도 하다. 이 얼굴이 어른의 얼굴이었나. 어렸을 때는 빅뱅처럼 어느 순간이 되면 한 번에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20살이 되거나, 취직을 하면 머릿속에서 폭음이 들리고 어른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직도 어른은 먼 이야기로 들린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신기하다. 엄마는 당신의 나이를 보고는 한 번씩 놀란다고 한다. 벌써 반백살이 넘었다니 하면서 말이다. 풋풋한 사춘기 중학생 시절 송골매의 노래를 들으며 학교 다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어른을 넘어 노인으로 향해 간다며 푸념한다. 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는지 물었다.

엄마는 거울을 보고 주름이 생기는 것보다 나를 낳고, 동생을 낳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살핌이 필요해지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어른은 결국 외모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취직이나 결혼 같은 사회적인 계단을 하나씩 올라탄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폴로로 담배를 피우는 척했던 장난은 스무 살이 넘어 흡연으로 이어졌지만 어른인 척하는 아이일 뿐이었다. 결국 책임질 것이 생기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어린이에서 서서히 사춘기가 오는 것처럼 말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그리고 늙어가는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기 시작하면서 어른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전 03화 여행은 훈장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