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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Aug 24. 2020

기념품 사기

잊혀진 애정을 되돌리다

 여행을 하다 기념품 상점을 그냥 지나치기는 힘들다. 평소에 물욕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여행을 가면 눈이 돌아갈 것이다. 필요도 없는 평범한 냉장고 자석이더라도 그 도시나 나라의 특색이 담긴 모양을 하고 있다면 절로 지갑을 열게 된다. 사실 아트박스 같은 팬시 샵에서 구할 수 있는 ‘예쁜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 집에 있다고 해서 유용하게 쓰이는 것도 아니고, 명품이나 명화처럼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반짝이거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졌을 뿐이다. 그게 다다. 기념품이라는 이름은 그런 예쁜 쓰레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방 한 구석에서 먼지가 폴폴 쌓일 정도로 방치되어 있더라도 이따금씩 눈에 밟혀 꺼내 보면 아련히 여행에서의 향수가 떠오른다. 물론 그 기억을 저장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기념품을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억눌렸던 소비의 욕망이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튀어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냉장고 자석만 일까.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엽서나, 다양한 나무 조각, 심지어는 한국에서 사도 똑같은 티셔츠도 사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여행이 끝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를 때는 오히려 짐이 늘어난 기분이다.


 하지만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만 있는 건 아니다. 기념품을 보면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생긴다. 나를 아껴준 사람이거나, 내가 아끼는 사람이거나, 혹은 그냥 보고 싶은 사람이거나. 가족이나 연인 관계가 아님에도 먼 타지에서 생각나는 애틋한 사람인 셈이다. 일종의 애정이다. 애정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사랑은 남녀 간의 그리워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누군가는 아끼는 감정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타지에서 새로운 물건을 만나 선물로 재탄생한 것이다.




 자그레브의 돌라츠 야외 시장의 노점에서 사람들은 머리 위로 타오르는 태양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을 보고 있었다. 시장 구경이면 빠지지 않던 나였지만, 오늘따라 태양을 닮은 주황빛의 크고 단단한 과육의 오렌지나 주렁주렁 매달린 소시지보다 기념품을 파는 어느 노점에 눈이 갔다. 크로아티아의 수도답게 크로아티아 문양을 한 자석부터, 목각 인형, 엽서 같은 것들이 태양 아래에서 반짝였다. 금속으로 만든 모형에도 역시 크로아티아 국기가 새겨져 있었고, 자그레브 대성당의 작은 모형은 함박눈을 맞으며 스노볼 안에서 울렁였다.


 그중 숟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된 숟가락의 손잡이 부분에는 크로아티아라고 쓰인 투박한 모양새였다. 선배가 홍콩에서 사다 준 나무 숟가락과 닮았다.


 대학 시절 친했던 선배는 언제나 지갑 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래 봐야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선배였고, 똑같은 학생인지라 지갑 사정이 궁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텐데 말이다. 20대 초반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봐야 얼마나 번다고, 선배는 만날 때마다 술이나 밥을 샀다. 나는 염치없게도 선배가 사는 족족 얻어먹기만 했다. 물론 후배에게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선순환 때문에 이런 문화가 우리 사이에 존재할 것이다. 다만 애석하게도 1학년을 채 마치기 전에 군대로 가버린 탓에 내리사랑을 전해줄 후배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선배는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판다가 그려진 숟가락과 젓가락을 건넸다. 여행 간다는 말을 듣고 올 때 선물 사 오라는 농담을 건네긴 했지만, 휘발성이 강한 기억이라 이미 선물을 받을 때는 내가 그런 말을 건넸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어디서 밥 굶고 다니지 말라는 농담과 받은 이 선물은 선배와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서로 군에 다녀오고, 복학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바쁜 과정 속에서 우리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의 기억 속에만 자리 잡은 관계가 되어 버렸다. 가끔 추억을 되짚어보며 그때의 관계를 회복해볼까 생각해보지만, 이미 안개처럼 파편화되어 흩어진 기억이라 주어 담기 미안했다. 일종의 부채의식이 되었다.


 선배는 나를 애정으로 아껴줬다. 그리고 그 애정으로 여행을 가서 나를 생각해 선물을 사다 준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애정을 담은 선물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일방적이다. 그 사람이 언젠가 나에게 다시 돌려줄 것이라 생각하고 주는 선물이 아니다. 그냥 선물을 받고 기뻐할 그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에 준비하는 선물이다. 아이를 기르는 것은 고된 일이지만 그 아이가 주는 단 한 번의 미소로 행복해지는 부모의 마음과 비견될 만하지 않을까 싶다.


그 시절의 숟가락은 지금은 집안 구석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까먹어 버렸다. 우리의 관계가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희끄무레하게 사라지듯 선물에 담겼던 선배의 마음 또한 내 안에서 사라져 있었다. 애정이 일방적인 선후배 관계라고는 하지만, 너무 무책임하게 사라져 버린 것은 내 탓이었다. 서로가 바빠 연락을 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내가 그동안 받았던 감정과 선물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이었다.


 3유로의 크로아티아 문양이 박힌 수저를 산 나는 연락처 목록을 뒤져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잘 지내냐고. 그리고 한국 돌아가면 한 번 만나자고. 그리고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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