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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09. 2020

여행에서 미술관을 가는 이유

어린 나와 젊은 어머니가 보고 있던 클림트의 <연인>

 벨베데레 궁전은 1700년대에 지어진 오스트리아 최고의 궁전이자 미술관이다. 유럽 전역에서 각광받던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 따서 만들어진 벨베데레 궁전은 황실 회화 전시장으로도 사용되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덕분에 클림트나 에곤 쉴레와 같은 오스트리아 화가들의 작품을 포함해 모네와 같은 인상파 작품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보물창고와도 같은 미술관이 되었다.


 햇볕이 쨍쨍한 여름날 도착한 벨베데레 궁전은 그들이 자랑하는 다양한 미술 작품만큼 외벽부터 웅장함이 전해졌다. 궁전의 주변에는 네모 반듯하고 드넓은 정원이 초록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매표소 바로 옆에 있는 궁전 후문의 넓고 푸른 잔디밭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늘에 누워 마치 귀족처럼 이 공간의 푸른 기운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궁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상파 화가의 유화를 보듯 강렬한 천연 색채가 눈을 쉴 새 없이 자극했다. 그리고 강렬한 햇빛이 가득한 푸른색 하늘과 따듯한 초록색 땅이 모이는 곳에 벨베데레 궁전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미술관의 다양한 작품들은 쉴 새 없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핀란드의 사실주의 화가 악셀리 갈렌칼레라의 작품 앞에서는 백발의 노부부가 함께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고, 차마 시대 구분조차 할 수 없던 기이한 가면 조각상 앞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뛰어다니며 작품을 생동감 넘치게 즐기고 있었다. 유럽 예술 사조를 넘어 세계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고흐의 작품은 유럽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기분이다. 역시나 이 박물관에서도 고흐의 작품은 인기가 넘쳤다. 다른 작품은 흘끗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고흐의 작품이라고 하면 꼭 앞에 서서 차분히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바라보곤 했다. 그래도 이 박물관의 최고의 스타는 단언컨대 클림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이곳에서 드디어 클림트를 만났다.



 황금빛이 도는 노란색의 강렬한 색채와 고혹적인 눈매로 보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안쓰러움을 자아내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와 금빛 은하수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듯한 몽환적인 기분을 주는 <키스>.(혹은 <연인>. 공개 당시에는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멋진 작품을 두 눈으로 보니 무언가 숨을 들이쉬어 멎는 기분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수의 팬이 수년에 걸쳐 기다리다 고대하던 가수를 만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싶다. 그동안 미술관을 가도 그림을 보고 이런 심장이 멎는 듯한 먹먹함을 느껴본 적은 없었지만, 이 그림은 손을 뻗어 내 가슴을 직접 다독여주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 한편엔 언제나 클림트의 <키스>가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초등학생인 내 몸집만큼 작았던 우리 집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작은 빌라였고 다닥다닥 붙은 주변 건물들로 인해 언제나 집 안은 볕이 들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키스>의 모작을 거래처에서 선물로 받아 오셨다. 모작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프린트한 그림을 액자에 넣은 것과 비슷한 수준의 그림이었지만 이 그림은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에게 흥미로운 장난감이자 형광등이었다. 황금색 배경의 아름다운 별빛과 키스하는 두 연인의 온몸의 화려한 색상, 네모난 모자이크의 강렬함과 둥글고 알록달록한 색상의 몰입감, 그리고 총천연색의 발 밑의 들꽃들까지. 작품의 제목이 <키스>라는 것도 모르고 클림트라는 작가의 이름도 몰랐지만, 칙칙한 벽지 사이에 들어온 화려한 색감은 밥 먹을 때나, 책을 볼 때나 언제나 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림을 외운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바라봤다.

 

 그림자만 가득했던 집안은 그림이 들어오고 나서야 드디어 사람 사는 집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보다 그림으로 위안을 받은 것은 어머니였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일만 하시던 어머니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모시고, 아버지의 일도 돕는 초인적인 생활을 하셨다.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집을 떠나 우리끼리 독립한 집은 10평보다 작은 초라하고 낡은 집이었지만, 어머니는 내색조차 하지 않고 집안일부터 아버지 사업 뒷바라지에 내 학교 생활까지 모두 책임지셨다. 그런 어머니가 유일하게 숨을 돌리는 휴식 시간은 그림을 걸어둔 벽을 보며 따듯한 차를 한 잔 하실 때였다. 소소한 힐링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림트의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던 그 액자는 우리 가족에겐 단순한 장식 이상이었다.



 <모나리자>의 작품을 보기 위해 한 시간 동안 뙤약볕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별이 빛나는 밤>을 보기 위해 뉴욕 현대미술관으로 직접 가는 일이 어찌 보면 비효율적이다. 인터넷 발달은 둘째치고 이제는 VR부터 5G까지 발달한 시대인데 굳이 비행기를 타고 돈 쓰고 시간 쓰며 가서 봐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심지어 실제 진품은 금고에 보관해두고 가품을 박물관에 전시해둘 수도 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대하며 작품을 보는 이유가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보고 가야지.'라는 마음일 수도 있다. 혹은 작품을 보고 미적 쾌감을 얻기 위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그 작품을 보았다가 아니다. 내가 드디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 가며 여기까지 왔고, 드디어 그 작품을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이었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의 일종인 셈이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가에게 사랑을 내비치는 일방적인 사랑 고백과도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온 몸을 바쳐 사랑을 표현하듯이, 이 작품을 사랑하는 만큼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하기 위해 미술관으로 온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을 만나면 그간의 고통이나 노력이 모두 행복한 기억이 되는 것처럼, 보고 싶었던 작품을 만나기 위해 왔던 모든 순간들이 행복한 기억이 되었다.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이 그림을 다른 어디서 만나더라도 어린 시절의 행복과 더불어 이 여행에서 만난 또 다른 행복이 다시 떠오를 것이고, 그것 만으로도 미술관에 온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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