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까이는 아닌, 너무 멀리도 아닌
뉴질랜드의 카이코우라는 고래 관광과 물개가 가득한 해변을 제외하고는 큰 볼거리가 없는 작은 해안 도시다. 물론 남태평양이 수평선 끝에서부터 넘실거리는 풍경과 따가운 태양은 모히또를 부르는 멋진 모습이었지만, 그건 뉴질랜드의 어떤 해안에서도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틀 간의 짧은 일정 동안 카이코우라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기고 난 이후, 함께 여행 온 친척동생과 손님이 없는 카페에서 한적한 해안을 바라보며 고양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더 이상 관광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으니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한 가족이 카페로 들어왔다. 한국어를 쓰지 않아도 느껴지는 한국의 기운 덕분에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아이들의 어머니께서 당연하게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만담이 되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척끼리 이야기를 나누듯이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서로 저녁을 먹으러 갈 시간이 되니 가방에서 한국 라면을 꺼내 주셨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이라며 반가웠다고 하는 인사와 함께 우리는 헤어졌다.
이렇게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한국인들을 만날 때가 있다. 낯선 타지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보면 괜한 반가움이 든다.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면서 타지에서 소속감을 얻게 된다. 특히 한국인이 거의 없을 지역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더욱 반갑다. 우리는 문화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행을 와도 우리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의 DNA는 벗어날 수 없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쓰고, 한국식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심지어 피부색이나 생김새도 거의 동일하다. 물론 세세히 보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문화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교류가 많은 나라와 비교하면 거의 단일한 문화권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에게 누군가 차기작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감독은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사람들이 똑같은 피부색을 가져야만 성립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 피부와 같은 언어로 이루어진 문화권에서만 일어나는 영화라는 말이다. 이렇듯 우리는 언제나 같은 문화권을 살아왔다. 그리고 이 사회는 우리의 DNA에 잠재되어 관성처럼 따라다닌다. 그리고 이 문화 DNA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떠나서도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고 느끼게 된다. 나와는 같은 공통점을 느낄 수 없는 타지에서 느끼는 유일한 공통점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불어오는 나의 고향의 향수인 것이다.
반대로, 괜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말을 걸지 않게 된다. 우리는 카이코우라를 거쳐 뉴질랜드 남섬의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한때 조기유학의 붐이 불었을 때 수많은 유학생들이 건너왔고, 뉴질랜드 이민의 열풍이 불 때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한국인이 보인다. 카이코우라에서 만난 한국인과의 기쁜 조우를 마치고 크라이스트처치로 들어가니 길에서 보이는 아시아인은 죄다 한국인이었다. 쇼핑몰에 들어가도 친절하게 한국어로 설명해주는 사람도 있고, 식당 종업원도 한국인 유학생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반가움은 이전보다 덜했다.
이미 만났던 한국인과 그동안 못 푼 소회를 다 털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덜해서 그런 것일까. 다른 이유가 아니다. 너무 많은 한국인들은 떠나온 이유를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아무리 문화에 젖어 있다고 하더라도 여행은, 특히 해외로 나가는 여행은 속해 있는 사회나 문화에서 벗어나고 싶어 떠나는 여행이다. 한국인을 만나면 반갑기는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내가 속한 사회의 피로를 지우기 위해서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와 문화에 소속되어 있지만 벗어나고도 싶은 이중적인 열망이 있는 것이다.
가끔 다 털어버리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를 가득 메운 사회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다. 익숙한 것에 대한 피로감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떠난 곳에서 한국과 똑같은 자극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이런 기분은 한국인들이 특히 많은 일본이나 파리, 혹은 베트남 같은 곳에 가면 여실히 느껴진다. 인천 공항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우리의 몸은 한국을 떠났지만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는 수많은 한국인들을 만난다. 그리고 도착해서 입국절차를 밟는 동안 함께 줄 서있는 수많은 한국인들과 드디어 기차나 택시를 타고 시내에 돌입해도 만나는 한국인들까지 또다시 돌고 돌아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떠나고픈 우리의 사회와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분이 든다.
결국 멀어지면 보고 싶고 가까이 있으면 보기 싫은 상대를 대하는 기분으로 우리는 여행 중에 한국인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문화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은 아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은 피로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가끔 마주치는 한국인들과는 반가움의 인사를 보내고, 한국인으로 둘러 쌓인 외지에서는 마치 서울에서 스쳐 지나치듯 무시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가 아닌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문화와 사회에 대한 싫증이다.
우리의 문화에 대한 애증이 담긴 이중적인 모습이다. 그러니 여행자가 많아질수록 한국인이 없는 나만의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용기 있는 사람이나 특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떠날 수 있는 새로운 여행지다. 그리고 이런 곳을 간 사람들은 완전히 자신의 문화에서 벗어나 색다른 옷을 입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람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칭해 준다. 하지만 이중적으로, 이런 여행지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서로 끈끈한 반가움으로 엮이게 되는 것이다. 가까이는 있지 말고 너무 멀리 있지는 않았으면 하는 신기한 우리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