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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Jan 27. 2021

소심한 사람의 여행

소심하다고 포기하는 것들.

 나는 정말 소심하다. A형, 왜소한 몸집, 작은 목소리 등 소심한 사람을 묘사하는 모든 말들이 포함되는 전형적인 인간이다. 만약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라고 한다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업햄이었을 것이고,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네빌이었을 것이며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권상우, 아 이건 아니다. 권상우는 절대 아니지. 아무튼 정확히 말하자면 부끄럼을 많이 타고 겁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성격으로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무언가 나서서 하기도 힘들고, 새로운 사람에게 말 건네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어색한 공기는 시베리아 차가운 냉기보다 참기 힘들다. 새로운 사람과 한 방에 단 둘이 있다면 미칠 것 같아 오히려 아무 말이나 꺼내는 멘붕 상태에 빠지게 된다. 특히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지 걱정해 언제나 전전긍긍한다. 내 말이 별로였는 지 눈치를 보고, 상대가 아무 말 없이 있으면 혹시 내가 뭘 잘못했는지 혼자 속앓이를 한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이런 소심한 사람에 대해 관대하지는 않다.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긍정적이고 쾌활한 척 포장하기는 했지만 내면에 숨은 소심함으로 숨 가쁘기 일쑤다. 태생적 성격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슬픔이다. 소심하다고 자기소개서에 쓴다고 해서 솔직해서 좋다며 뽑아줄 기업도 없고, 영업 상대를 만나서 “저는 소심하니 먼저 제안해주시고 말도 많이 해 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노력해서 쉽게 바꿀 수 있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맞지 않는 옷을 입어 불편한 기분으로 살아간다. 




 소심하면 여행의 폭도 좁아진다. 그냥 살아가기도 힘든데 슬픈 일이다. 여행 중에 하고 싶은 일들이 있어도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포기한 것들이 많다. 혼자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바다에 있을 때, 하늘보다 새파란 바다 위에서 떠 있는 카약을 봤다. 바로 앞에 카약 대여소가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끌릴까 두려워 포기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지만, 누군가 나 혼자 바다 위에서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보면 비웃을 것 같은 자격지심이 있었다. 물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도 알 수 없는 창피함이 생긴다. 


 남들과의 동행도 쉽지 않다. 상대가 무척이나 나를 챙겨주고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상 먼저 함께 다니자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동행이 누군가와 매우 특별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식당을 같이 간다 거나 박물관 혹은 혼자 하기 힘든 일을 같이 하는 여행 방식이지만, 내가 혹시나 저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까, 내가 재미없어서 이 동행이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마음고생을 한다. 전형적인 자격지심인 셈이다. 이외에도 소심함 때문에 포기한 여행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 내 성격이 소심하니, 나는 나에게 맞는 나만의 여행을 하게 된 셈이다. 여행의 루트가 같아도 그 안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내가 주체가 되어 떠난 여행은 나의 여행이 되며 나만이 느끼는 감정의 여행이 된다. 그리고 나의 소심함으로 포기한 것이 많은 만큼 나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행 속 시간이 있다.


 다만 여행이 끝나고 나서 생기는 찝찝함이 있다. 다시는 못 갈 수도 모르는 곳인데 조금 용기 내서 남들과 함께하는 도전이나 남의 눈치 보지 않는 관광을 해 볼 걸 하는 아쉬움이다. 여행을 가기 위해 돈, 시간, 그리고 운까지 투자했지만 막상 가서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한 애석함이 남는다. 아쉬움이 남으니 찝찝하다. 아쉬움이 없다면 시도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미련이 없다. 이런 찝찝한 감정은 미련이 있다는 것이다. 여행이 끝나고 이런 기분이 남으면 여행지에 대한 그리움이 되어 또다시 방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성격으로 인해 여행지에서 포기한 것들이 다시 방문한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행뿐만이 아니다. 살아가면서도 소심한 성격 탓에 생기는 아쉬움과 찝찝함이 있다. 할까 말까 고민하다 포기한 일들이 시간이 흐르고 “할걸.”이라는 탄식으로 나오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가슴속 응어리로 남는다. 가끔 잠자리에 누워 그런 후회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날 밤은 한숨으로 지새우게 된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소심하다는 성격은 나에게 일종의 방어 기제가 되어 나를 더 단단한 알 속으로 가뒀다.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나는 소심하니까, 혹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해도 나는 소심하니까 라고 하며 성격 탓으로 넘어갔다. 성격이 나를 구성할 수는 있어도 내가 그 성격 안에 갇혀서는 안 된다. 분명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있음에도 성격 탓으로 돌려 버리고 포기했다. 결국 또 돌고 돌아 소심하기 때문에 놓쳐버린 결말들이 너무나도 많아지고, 또 한숨으로 밤을 지새운다. 더 열심히 해 볼 걸, 더 공부해 볼 걸, 더 사랑한다고 말할 걸… 미련만 남고 아쉬운 짓들을 많이 했다. 미련만 남은 미련한 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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