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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Mar 02. 2021

인간을 닮은 신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에서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유적지는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다. 이미 수백년 전 무너졌지만 황금비율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탓에 아직도 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아크로폴리스 북쪽의 작은 언덕에는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과 다르게 수천년 전에 건축되었지만 여전히 그 모습이 잘 보존어 있었다. 거친 비바람의 흔적이 있을지언정 인위적인 충격이나 파괴는 잘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신전 안쪽의 모습까지도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본고장인 아테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양한 신전의 흔적을 만날 수는 있지만, 이렇게 온전한 모습은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복원중인 아테나 여신의 파르테논 신전, 신 들의 신 제우스의 신전과 달리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테나 여신의 파르테논 신전이나 제우스의 신전은 거의 뼈대만 앙상하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못하고 지붕조차 덮어지지 못했다. 제우스 신전의 상황은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심하다. 벽은 커녕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기둥들이 널브러져 있다. 큰 공터에 버려진 기둥 조각들이 조립을 기다리고 있는 판국이다. 그럼에도 이 불완전한 신전들은 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도시의 상징이자 전쟁, 지혜의 여신으로 신화에서 꾸준한 활약을 한 아테네, 천둥의 신이자 신 중의 왕으로 올림푸스를 지배하는 제우스의 신전이기 때문일까. 신전 주인들의 유명세는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이끌고 있다.


그에 비해 온전한 모습의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고라 광장의 한쪽 끝에 홀로 자리잡은 신전은 크기나 명성의 초라함 때문에 상대적으로 잊혀지고 있었다. 헬리오스의 마차 같은 태양이 비추면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과 다르게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은 싸늘했다. 오히려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완전한 모습의 명성보다 더욱 초라했다. 신전에는 사람 손때와 먼지가 온 기둥에 발라져 있었고, 이끼가 생긴 벽에 곰팡이도 슬었다. 여기저기에 버려진 무덤처럼 잡초도 나뒹굴고 있었다. 


사실 신전의 주인도 신화의 주 무대에서는 상대적으로 밀려나 있었다. 도시를 빛내는 연예인 같은 신도 아니고, 천둥을 다루거나 죽음을 관장하지도 않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어두운 작업실이 어울리는 신이다.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제우스가 아테나를 낳은 것을 질투한 헤라가 혼자 낳았다는 설도 있다.) 추한 모습에 구름 위에서 던져져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이후에도 신화 상에서 아테나, 아레스, 헤르메스 같은 다른 신들처럼 큰 활약은 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시간을 화산 아래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대장장이 일만 하는 신으로 묘사되곤 한다. 다른 신처럼 날아다니는 능력이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외모조차 비루해 못생겼다는 표현이 차고 넘치는 신이다.


그런데 그런 헤파이스토스에게 오히려 정감이 간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닮아서일까. 다른 신들과 다르게 화려한 삶을 살지도 않고, 초월적인 존재처럼 느껴지지도 않다. 오히려 매일같이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개미 같은 인간처럼 자신의 작업장에서 묵묵히 하루를 이어 나간다. 초월적 신의 모습보다는 인간에 가깝다.


그는 언제나 일을 하고 있다. 구름 위의 올림푸스에서 연회가 열려도 그는 보통 자신의 작업실에서 무언가 두들기고 있다. 같은 신이더라도 밀린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인지, 그런 삶이 자신과는 맞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그가 연회장에 올라가는 일은 드물다. 인간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에 더욱 반가웠다.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을 찾아갔을 때 신전은 마치 버려진 집 같았다. 신전을 찾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은 편안해졌다. 외람된 말이고 불경스러운 말일 수 있었지만, 신전 앞의 작은 바위에 앉으니 오래된 절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조용하고 모든 기운이 가라앉으며 차분해졌다. 무한한 삶을 사는 신임에도 인간과 비슷한 고민은 안고 비슷한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는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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