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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Feb 16. 2021

의심은 공포로부터 나온다

<안나 카레니나> 속 안나는 금지된 사랑을 선택하다 의심으로 파멸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책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도 한 번은 들어봤을 문구이다.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근현대 문학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뿐만 아니라 <전쟁과 평화>, <부활>, 그리고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였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로 인간이 어떻게 감정을 쌓아 올리며 파멸까지 다다르는 지 보여준다. <안나 카레니나>뿐만 아니라 <전쟁과 평화>, <부활>같은 작품들로 인간은 감정에 쉽게 휘둘리며, 의식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심적, 육체적 변화가 어떻게 인간에게 영향을 행사하는지 말하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도 톨스토이를 통해 스스로의 감정을 의심으로 속이는 비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모스크바에는 이런 톨스토이가 1893년부터 95년까지 살던 저택이 있다. 지금은 저택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변모한 곳이다. 노란 벽돌로 만들어진 톨스토이 박물관은 아담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인만큼 으리으리하지는 않더라도 꽤 규모가 거대한 저택을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작은 크기였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톨스토이의 가계도부터 집안에 살던 사람들이 살던 생활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러시아어로 되어 있어 이해하지 못해 아쉽다. 그가 직접 쓴 필기도구와 원고, 손때가 묻은 펜이 전시되어 있지만 번역기로 겨우 알아보며 지레짐작할 뿐이다. 



 다만 그가 살던 이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흥분을 준다. 내가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면 아마 이 묘한 감정을 매스로 도려내듯 정확한 묘사와 행동을 보여줄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냥 ‘좋다’라는 말로만 이 기분을 표현하는 수 밖에 없다. 톨스토이는 이런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보편적인 감정을 너무나 예리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에는 숨김이 없었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도 역시 누구나 인정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들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가 언제나 느끼지만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 역시 다양한 시선으로 펼쳐진다. 질투, 동정, 잊고 지내던 사랑의 감정, 애매한 안타까움 등 말 못할 감정들이다. 다만 소설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던 안나의 사랑에 대한 감정은 보편적인 사랑과 다를 바 없지만 그 방식은 보편적이지 않은 사랑이다. 우리가 삶에서 항상 만나는 일반적인 사랑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사랑이 일어나는 방식이 금단의 사과 같은 불륜이다. 




 대학 시절 문학 강의를 하시던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사랑의 플롯’의 주인공들은 행복한 사랑의 결실을 맞는 경우가 많은 반면, ‘금지된 사랑의 플롯’의 주인공들은 결말에 이르면 제도와 상식 속에 심판을 받으며 비극적 운명을 맞는 경우가 많다.” 


 사랑의 플롯에서는 두 주인공이 어떻게 사랑을 꽃피울 것인가에 초점이 가 있다. 그리고 작가는 그 사랑을 실현하려는 주인공들에게 어떤 시련을 줄 것인가 고민한다. 하지만 금지된 사랑의 플롯에서는 불륜이나 근친과 같은 사회적 금기가 이미 사랑의 장애물로 사랑을 방해하고 있다.  


 사랑은 믿음을 밑바탕으로 자라나는 감정인데, 그 믿음을 흔들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불륜은 과거에도 현대에도 죄악시 여겨진다. 그럼에도 이 금단의 사랑은 많은 이야기를 통해 재생산된다. 수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금단의 사랑이라는 주제는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다. 몸에 좋은 약이 쓰듯, 해로운 사랑일수록 달콤해 보인다. 하지만 사회적 금기라는 사랑의 장애물은 연인에게 끊임없는 시련을 준다. 사랑은 담금질을 통해 강해진다고 하지만, 연인에게 향하는 다양한 압박들은 결국 서로를 쉽게 지치게 한다. 사랑이 주는 가혹한 고난이 사랑으로 얻는 행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인지 스스로 의심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심의 화살은 결국 상대에게로 향하기 마련이다. 


 금지된 사랑의 플롯의 주인공들이 결말에 이르다 보면 제도와 상식이라는 판사 앞에서 지속적으로 심판을 받아 피폐해져 있다. 때문에 이들은 비극적 운명을 얻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있다. <안나 카레리나>의 안나 역시 이 비극적인 플롯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불륜을 들키고 나서부터 안나에게도 역시나 시련이 찾아왔다. 사교계에서 매장당하기도 했으며 불륜 상대인 브론스키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가족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다. 게다가 체면을 중시하던 남편은 이혼조차 해주지 못해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놓여 결국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끊임없는 사회 도덕적인 질책과 시험이 반복되니 안나와 브론스키 사이에도 감정이 쌓이게 된다. 안나는 사랑이 식은 브론스키를 질책하고, 브론스키는 유부녀 안나가 미혼이었던 자신까지 파멸했다는 원망에 사로잡힌다. 사소한 행동이 의심되고 단순한 의심들이 반복된다. 의심의 시작은 단순한 실마리였으나 끝없는 집착과 신경질적인 모습이 반복되며 둘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결국 이 불륜 커플은 싸우게 되었고, 브론스키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안나의 의심은 이제 브론스키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단정하는 단계까지 오고야 말았다. 실체 없던 의심이 안나의 머리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는 결국 스스로 만들어낸 의심에 사로잡혀 자살하고 만다. 불륜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먹어버린 안나와 브론스키라는 연인은 결국 사회적 도덕적 질책이라는 허들을 넘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의심과 증오로 인해 끝나버렸다.



 의심의 시작은 공포심에서 나온다. 애인이 의심되는 것은 배신에 대한 공포다. 감정의 상처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공포인 셈이다. 이런 내 두려운 감정을 숨기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리고 결국 동반 파멸하고 만다. 안나의 의심은 더 이상 브론스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에서 시작되었다. 이혼조차 하지 못해 아들도 만나지 못하고 현 남편에게도, 브론스키에게도 갈 수 없는 상황을 상정한 공포가 안나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의심이 먼저 튀어 나왔다. 아무런 증거도, 정황도 없지만 의심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증거 없는 의심은 가끔 우리의 생각을 잠식한다. 그리고는 감이라 불리는 부정적인 감정이 의심을 구체화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냐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증거 없는 의심은 보통 연기가 나기를 기다리고만 있다. 느낌이 쎄 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찰나의 순간 다가오는 감정이 우리를 침식한다. 의심에 스스로 잡아먹힌 것이다. 그리고 의심을 점차 구체화한다. 구체화된 의심은 단시간 사라지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머리 속에서 맴돌며 의심에 의심을 심어 넣는다. 안나가 그랬듯이 말이다.


 한번 생겨난 의심은 하염없이 지속되며 더 크게 퍼져 나간다. 의심에 집착하는 하이에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심이 틀리면 아집이 된다. 끊임없는 꼬투리를 잡기 위한 소모적인 노력이 된다. 결국 의심은 기폭제를 만난다. 어딘가에서 삐져나온 잠깐의 증거로 의심은 폭발한다. 증거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버린다. 브론스키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증거조차 없었지만 안나는 잠시 시간을 가지기 위해 떠난 브론스키에게 여자가 생겼다고 확신해버렸다. 


 의심은 결국 우리를 파고 든다. 우리를 파고든 부정적인 감정이 결국 우리를 갈아 먹는다. 감정은 파동처럼 번지기 때문에 공포로 생긴 의심은 점차 부풀어 오르게 된다. 인간은 작은 공포나 두려움으로 파멸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톨스토이는 안나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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