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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13. 2021

3교가 도착했고 나는 부끄러워졌다

출간 전 마지막 교정, 교열

완전 원고를 보내고 난 뒤 한 달이 지나고 나서 3교가 도착했다. 드디어 저자 교정이 필요한 때가 왔다. 이제 진짜 출간인가 보다. 열 달 밴 아이를 만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한글 파일에 원고로만 존재하던 글들이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줄글로만 나열된 글이 드디어 편집자의 손을 거쳐 책과 같은 모양으로 바뀐 덕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책 형식으로 된 내 글을 읽어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자랑스럽고 뿌듯할 것만 같았던 내 책이었지만 오히려 첫 만남은 어색했다. 아마 오랜만에 만난 내 글이 서먹한 탓이었을 거다. 길게는 1년 전, 짧게는 2달 전에 썼던 글이다 보니 다시 보니 낯설었다. 처음 보는 책을 읽는 기분으로 한 문장씩 들여다보았다. 내가 썼지만 잘 쓴 문장과 잘 갖춰진 글도 있었고, 아직 잘 읽히지 않는 어색한 글도 있었다. 원고를 다시 보내기 직전 홀로 교정을 하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다행히 편집자님이 교정과 교열에 힘써 주신 덕분에 그나마 읽을 만한 글이 된 기분이었다. 원고와 교정본을 모니터에 동시에 띄우고 한 문장씩 글을 비교해가며 읽었다. 글의 내용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시작과 끝, 그리고 문장 사이는 꽤 많이 다듬어졌다. 생각보다 내가 쓴 원고의 글은 거칠었다. 이렇게 내가 글을 신경 쓰지 않고 썼나 싶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가 시급하게 필요한 글들이 태반이었던 셈이다.


수정해야 할 부분을 수정하면서 천천히 내 글을, 아니 이제는 책이 된 내 책을 읽었다. 또 다른 부끄러움이 나를 자극했다. 글에 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의 부끄러움, 나의 작은 내면, 나의 도망. 모든 나의 작은 부분들이 책에 들어가 있었다.


도망치듯 떠났던 나의 여행들 속 담긴 고민을 담은 책이다 보니 아무래도 나의 내면이 많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런 책을 만들기 위해 글을 써 왔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다시 만난 나의 속마음들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추억이나 내면이라도, 누군가 공감할 수 있다면 책으로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에세이가 무엇인가. 바로 작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확실한 자신의 내면을 공유하며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 대한 책이 나에게는 에세이였다. 그리고 내가 에세이를 읽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나를 보여주기 싫었으면, 소설을 쓰거나 전문 서적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나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마음의 공감을 얻고, 살아가는 데 작은 용기를 얻었으면 했기에 부끄러움조차 적나라하게 독자들에게 보여준 셈이었다. 


다행인 건 이런 나의 도망만 담은 책은 아니었다. 내가 만난 세상의 다양한 모습, 내가 가진 감정의 진실, 그리고 어떻게 도망치던 20대를 끝내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까지 담아두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부족했던 나였지만 책을 쓰면서 점차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살아가야 하는 방향,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조금 확실히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이런 일련의 과정을 책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에게 책으로 나를 보여주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을 독자들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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