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폭발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스포츠 팬이 된다.
토트넘 홋스퍼 경기가 있는 다음 날 아침이면 엄마가 깨우는 아침 인사는 평소와 달라진다. “아들 아직도 자고 있냐.” 혹은 “엄마 나갈 테니 알아서 반찬 꺼내 먹어.” 같은 평범한 아침 인사와는 다르게 경기가 있는 날에는 “오늘 흥민이 골 넣었다.” 혹은 “오늘도 꽝이다. 아니 왜 요즘 흥민이 계속 골 못 넣니.”로.
4년 전부터 엄마는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한국 최고의 축구선수인 손흥민 선수에게 빠졌다. 아빠가 한동안 밤늦게 퇴근하시던 시기였다. 엄마는 혼자 심심해서 티비를 뒤적이다 화이트 노이즈처럼 손흥민 축구 중계를 틀어 두었다. 때마침 그 시기에 손흥민 선수가 매 경기 연속 골을 기록했다. 나도 뭐 축구를 좋아하니 이전부터 혼자 휴대폰으로 토트넘 경기를 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엄마가 손흥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손흥민 선수뿐만 아니라 동료 선수들이나 감독에 관한 정보를 물어보곤 하더니 완전한 팀의 팬으로 빠지게 되었다.
엄마가 나이 먹은 아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축구를 보는 것이 아닌 게 분명하다. 애초에 축구가 아니더라도 나는 말이 많은 아들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면 언제나 엄마와 소파에 앉아 별의별 이야기를 하곤 해 엄마가 드라마 보게 그만 떠들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옆에서 경기를 보는 엄마의 열정을 보면 이건 정말 나와의 친밀도나 가족애를 위한 그런 것이 아니다. 거의 런던 거주 30년 차 토트넘 골수팬의 모습이다. 뭐, 가끔은 너무 손흥민 선수만 생각해서 패스를 안 하는 다른 동료들을 욕하는 극성팬 같은 모습도 조금 보여주긴 하지만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니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아침 식사부터 밖에 나갔다 돌아온 저녁 시간까지 손흥민 이야기뿐이다. 골이라도 넣으면 그날은 엄마에게 대박인 날이다. 집에 있는 온종일 티비로 축구만 틀어 둔다. 경기 끝난 다음 날 스포츠 채널에서 보여주는 손흥민 선수 1~100호 골 하이라이트, 오늘 자 경기 풀 영상, 다시 스포츠 뉴스까지. 골 넣은 날은 거의 생일처럼 기뻐한다. 반대로 골을 넣지 못한 날에는 아쉬움만 가득하다. 손흥민 선수가 골도 넣지 못하고 팀이 경기도 지는 날에는 초상집이다. 티비는 일절 틀지 않고 아예 감독 탓에 전술 탓에 팀 동료 탓까지. 이제는 여느 축구광만큼 토트넘에 대해 잘 안다. 포메이션이 어쩌고, 흥민이에게 공이 저쩌고… 하루는 아침 7시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깨어 있었다. 새벽에 경기가 있는 날이었기에 경기는 보지 못했으니 아침 일찍 일어나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었는지 확인하고, 모든 뉴스 기사 섭렵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엄마지만 독하다 생각 들 만큼 손흥민 선수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런 엄마의 꿈은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보러 영국을 가는 것이다. 다른 유럽의 어떤 명소보다 이 경기를 제일 보고 싶다고 한다. 토트넘 스타디움에서 손흥민 경기를 보는 꿈을 위해 돈을 모으고, 아프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한다. 수십 년 동안 엄마의 꿈은 엄마를 향하지 않았다. 아들이 성공하기를, 딸이 공부를 잘하기를, 남편이 아프지 말기를… 언제나 엄마의 꿈은 우리를 향해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엄마에게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축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의 팬이 된다는 건 기묘한 감정이다. 엄마가 손흥민에게 스며들듯이 팬이 된 것처럼, 우리는 각기 다른 다양한 이유로 스포츠의 팬이 된다. 하지만 팬이 된다는 건 언제나 순탄한 길인 것은 아니다.
예전에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진 이후 친구에게 한탄하고 욕을 하고 슬퍼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내가 보고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한둘이 아니니 대부분의 날이 패배의 쓰라림으로 가득하다. 화무십일홍이고 올라간 것은 내려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팀은 잘하기도 하고 못 하기도 하지만 응원하는 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모두 못하기는 처음이었다. 아마 이맘때 즈음 가장 입에 많이 달고 다니던 단어는 ‘해체’였을 것이다. 이따위로 게임을 할 거면 해체해라, 해체하면 안 볼 테니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겠지, 해체하면 더 좋은 곳에 돈 쓰고 시간 쓸 텐데 따위의 푸념이었다.
이런 내게 친구는 인터넷에서 글 하나를 찾아 보여줬다.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은 내 삶과 무관하다’라는 글이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아니었지만 뼈저리게 공감이 갔다. 우리 팀의 패배가 나의 삶과는 상관이 없지. 사실 공감을 해야만 했다. 아니면 패배의 분을 삭일 수 없었으니 말이다.
경기를 잘해서 우승 상금을 얻는 건 선수와 구단이다. CF를 찍는 것도 선수와 구단이다. 경기로 돈을 버는 건 선수와 구단이다. 내 돈을 쓰면서 경기장까지 찾아가고, 목청 터져라 응원하면서 희로애락 감정을 소모하는 건 팬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비효율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에 맹목적으로 빠져버린다. 그리고 한 번 빠지고 나면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응원하는 이유가 있다. 승리와 함께, 성공과 함께 폭발하는 듯한 감정의 해방 덕분이다. 인간이 단순히 이성적으로 필요한 것만 하며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컴퓨터처럼 필요한 자원을 취득하고 소비하는 것이 끝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다. 우리가 스포츠를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의 폭발이 필요하니까. 우리에게 쌓여가는 감정의 분출은 필수적이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하나 되어 있는 팬과 팀, 선수의 마음은 결코 서로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감정의 폭발적인 분출의 즐거움을 2002년에 배웠다. 온 국민이 하나 되어 길거리로 나가 대한민국을 목청껏 울부짖었다.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이라는 팀의 팬이었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절에서도 심지어 장례식장에서도 우리는 대한민국을 외치며 경기를 지켜봤다. 대한민국이 축구를 이긴다고 개인에게 좋은 것이 있을까?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사상이 아닌 이상 개인에게 대한민국의 승리는 무관하다. 하지만, 팀, 나라, 그리고 주변에 함께하는 수많은 팬과 함께하는 고취된 감정이 승리로 분출되었다. 그리고 골이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모두 감정의 해방을 경험했다. 그 해방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덕분에 어디를 가도 그 이야기뿐이었다.
특히 팬이 되어 소속감이 고취될수록 짜릿함은 더해진다. 국가대표 경기는 온 국민이 함께 하므로 우리는 하나 되는 소속감에 승리로 말미암은 감정의 분출을 더 해 어디에서도 없던 흥분을 얻었었다. 다른 나라의 경기를 봤을 때 우리는 단순히 골이 시원하게 들어갔다고 생각하지 이런 감출 수 없는 기쁨은 얻지 못했었다. 하지만, 우리 팀이라는 소속감이 생기고 우리 선수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 감정은 경기 내내 서서히 고조되다가 승리하는 순간 터지고 만다.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해 우리는 다시 경기장으로 찾는다. 그러니 우리는 팬이 된다.
과연 토트넘의 승리와 손흥민의 골이 엄마와 무관할까. 엄마는 4년 전부터 서서히 팀, 선수와 감정을 쌓아왔다. 그러니 손흥민과 토트넘의 축구 한 경기 한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지거나 경기를 잘 풀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골을 넣은 날 엄마는 온종일 기분이 좋아진다. 아들로서 엄마를 기쁘게 하기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언제나 고민하지만, 손흥민의 골 한 방이면 하루 종일 어떤 걱정도 없이 지낸다. 잘 키운 손흥민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그리고 엄마는 수십 년 만에 새로 생긴 자신만을 위한 꿈을 기대하고 있다. 쌓아 둔 감정을 경기장에서 직접 보고 골이 들어간 순간, 승리하는 순간의 폭발을 이제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진 팬들에 둘러싸여 함께 환호하는 꿈 말이다.
아무튼, 손흥민 파이팅이다. 제발 엄마를 위해 다치지 말고 잘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엄마가 영국에 갈 수 있는 그 날까지 토트넘에서 뛰어 주고, 골의 환호와 승리의 기쁨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