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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다녔다.

엉성하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그리운 어린 시절의 은신처

by 박희성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는 유난히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았다. 난립한 건물들 사이사이에는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빈 공간이 조금씩 있었고, 가스통이 들어가 있거나 쓰레기가 오랜 시간 빛바랜 모습으로 버려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속한 땅이지만 양 쪽 건물 모두 저층인 탓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굳이 사용하고 싶어도 사람 한 두 명 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공간을 활용할 방법은 당시에 없었을 수도 있겠다.


지하 주차장이라는 개념이 없는 덕분에 지하실도 종종 비어 있었다. 작은 빌라인 경우에는 지하실을 반지하라는 개념으로 탈바꿈시켜 사람을 받던가 혹은 그냥 창고 같이 사용하고는 했다. 보통은 잠겨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지만 가끔 문이 고장 나 열려 있는 곳도 흔했다.


덕분에 머리만 들어갈 수 있으면 우선 들어가 보는 마치 고양이처럼 나와 내 친구들은 어디든 우리의 아지트 삼아 들어갔다. 특히 주로 들어갔던 곳은 빌라 단지 내 가스 관리실 옆 작은 공간이나 103동 지하실이었다. 지하실보다는 가스 관리실 옆이 더 인기였다. 지하실은 언제 막힐지 모르니 하루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곳은 언제나 열려 있는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가스 관리실 옆 작은 공간 양 옆에는 3층에 닿을 듯 높이 솟은 향나무가 언제나 비를 막아주는 덕분에 안락했다. 가끔 몸이 가볍고 용기가 넘치는 친구들이 나무 위로 올라가려는 시도를 하지만 갈라진 껍질에서 튀어나온 가시 때문에 올라가지 못했다. 나무가 지키고 있어 웅장하고 몽환적인 이곳에는 향나무에서 떨어진 썩은 잎과 껍질 때문에 냄새가 나긴 했어도 어디선가 주워온 돌멩이나 밖에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 혹은 바람 빠진 공을 숨기기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 경비 아저씨가 청소하는 날이면 없어졌지만 우리는 땅을 파서 묻거나 벽돌을 가져와 금고처럼 숨겨두는 노력을 계속했다. 처음으로 얻은 우리의 아지트였다.


그 안에서 모여 놀던 우리는 곧 다른 장소를 찾아 나가야 했다. 우리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형들이 그곳을 차지했던 탓이었다. 어른들의 눈에서 벗어나기 쉽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언젠가 빼앗길 공간이었다. 공간은 넘치기에 새롭게 찾기만 하면 되지만 정 붙인 공간인 탓에 우리는 그 이후로 몇 번 그쪽으로 가서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대개 형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서 있었고 교복 입은 형, 누나들이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본 이후에는 발길을 끊었다. 우리만 아는 유일한 장소라고 생각했지만 남에게 들킨 이상 아지트는 그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만의 공간을 찾아 다시 떠나야 했다.


나를 포함해 그 공간에 애착을 가졌던 우리들은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자꾸 아지트를 찾아 헤맸다고 생각한다. 작은 집에서 옹기종기 살고 있던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공간이 집에 없었다. 방 하나는 할머니 방, 또 다른 방 하나는 부모님과 나, 그리고 창고를 개조해 난방조차 들어오지 않던 방은 막내 삼촌의 방이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던 나, 그리고 아직 분가 하기에는 돈이 없던 우리 집 사정 상 내 방을 가지는 것은 사치였다.


때문에 언제나 나만의 공간을 원했다. 그래서 어린 나이부터 무인도를 동경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당시에 유행하던 <로빈슨 크루소 따라잡기>나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를 많이 읽은 탓도 있다. 혼자 집 만들고 불 피워서 낚시로 잡은 고기를 먹으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자연인도 어려워 보이는데 무인도에서 살 수 있을까 싶다.)


이런 생각들은 자발적 고립 상태에 놓이는 한이 있더라도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무시무시한 집념이나 다름없었다. 공간에 대한 집착 덕분에 한 번은 친구와 동네 뒷산에 우리만의 은신처를 직접 만들었다. 당시에는 꽤 정교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잘 만들었다. 뒷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빠져나와 수풀을 가로질러 가면 있던 작은 바위 옆에 나무를 얽어 만든 조잡하지만 나름 있어 보이는 장소였다.


큰 나무를 들어 올릴 힘은 없으니 작은 나뭇가지로 만들었지만 힘든 줄 몰랐다. 만들고 그 위에는 나뭇잎을 꺾어 모아 던져두었다. 그러니 한 명 들어가지도 못하고 상체만 간신히 가려질 만한 공간이 탄생했다. 개집 정도 되는 크기의 공간이었던 것 같다. 작은 손으로 앙증맞게 만든 공간이지만 나름 안락하다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이 은신처 역시 한 두 번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잊어버렸다기보다는 아마 비가 왔거나 더러워진 옷을 보고 할머니가 혼냈기 때문이 아닐까. 다만 며칠이 지난 후에 다시 찾아갔기는 했다. 이미 무너져버린 우리의 은신처는 언뜻 버려진 나뭇가지 덩어리로만 보였다. 바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둔 나무는 무너졌고 위에 올려 둔 나뭇잎들은 색이 바래 갈색 덩어리로 뭉쳐 있었다. 늑대가 바람을 불면 날아갈 정도로 약하게 지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동화책을 보고도 배운 것이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꾸준히 나만 알거나 친구들만 아는 공간을 찾아다녔다. 조금 더 커서 내 방이 생길 때까지 이런 은신처 찾기는 멈추지 않았다.


맨 케이브(Man cave)라는 용어가 있다. 사전적으로는 휴식을 취하거나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남자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처음 맨 케이브라는 용어가 유행하는 동안 SNS나 블로그 심지어 TV 프로그램에서 남자들만의 공간을 자랑하거나 소개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런 유행이 지속되는 동안 나는 남자라기보다는 인간으로 해석한 맨 케이브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남자의 공간이라기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여자라고 해서, 노인이라고 해서, 혹은 아이라고 해서 자신만이 오롯이 쉬고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 없지는 않다. Man은 남자만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인류 자체를 의미하니까.


그때 우리가 만들었던 그 장소는 우리에게 Men cave였다. 어린 우리가 어떻게 놀던 유치 하다고 생각할 그 누구도 없고, 나름 그 안에서는 성숙한 척하며 놀며 우리는 우리만의 공간을 향유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디선가 주워 온 장난감을 숨기는 곳에 불과했지만 우리에겐 안락하고 따듯한 동굴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이지만, 아직 그때 그 시절의 안락했던 은신처와 가스 관리실 옆 작은 공간만큼 소중하게 여기던 내 공간은 없는 듯하다. 작은 공간만 보면 들어가던 어린아이에게 넓은 공간이 주어졌지만 어쩐지 아직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내 방 안에 있어도 여전히 인터넷과 SNS, 스마트폰으로 열려 있는 탓일 테다. 완전히 고립되어 나 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의 부재는 여전히 새롭지만 아무도 없는 고립된 장소로 나를 이끈다.


얼마 전에 아직 그때 그 동네에 살고 계신 친할머니를 찾아갔다. 생각난 김에 빌라 가스 관리실 옆 작은 공간을 찾아가 봤다. 지금 나보다는 훨씬 작을 그때 그 형, 누나들은 이제 없었다. 향나무는 생각보다 작았고 가스 관리실 건물은 마음만 먹으면 맨 손으로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사이에 있던 공간은 처음 얻었던 우리들 만의 공간이자 나의 물건을 숨겨두던 그런 장소였지만 너무나 비좁았다. 엉성하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이곳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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