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타임> - 1, 찬란한 지금에 대한 미안함을 알려준 영화
5분 뒤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하루를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아니면 그냥 시간 자체를 가지고 놀 수 있는 능력이라면 어떨까. 언제나 심심하면 떠올리던 망상을 차지하는 큰 주제 중 하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이나 혹은 일을 하다가 멍 때리는 동안 때때로 시간을 돌리는 상상을 한다. 과거로 떠나 이미 엄청나게 올라 버린 주식을 미리 사둘 수 있을 테고, 하다못해 비트코인이 처음 나왔을 때 미리 사둘 수 있겠지. 그러고 나서 지금으로 돌아온다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공부도 할 필요가 없겠지. 과거로 시간을 돌린다는 건 결국 값비싼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니 이만큼 달콤한 능력이 있을까.
하지만 이런 망상 말고 우리가 가장 시간을 돌리고 싶은 때는 다름 아닌 후회의 순간이다. 당장 5분 전 실수로 튀어나온 사소한 말실수 때문에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소심한 사람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내가 한 말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거나 혹은 누군가 불쾌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후회한다. 그리고 ‘아, 5분만 시간이 뒤로 돌아간다면 실수하지 않을 텐데…’ 같은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게 실수로 커피를 쏟거나, 혹은 회식 자리에서 진상을 피웠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가장 후회할 만한 과거, 되돌아가고 싶은 과거는 사랑에 관한 것들이 아닐까 싶다. 첫사랑에게 고백하지 못한 후회나 차마 하지 못할 말을 던지고 헤어진 옛 연인과의 이별 같은 가슴 아픈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때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혹은 그 사람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같은 달콤하지만 씁쓸한 뒷맛은 돌아가고 싶은 망상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이런 사소하거나 혹은 거대한 후회와 욕망 덕분에 시간을 돌리는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가 많다.
소설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많은 창작물에서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주인공을 만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움직이기도 하고, 타고난 능력으로 시간을 돌리기도 하며, 가끔은 불완전한 시간의 균열을 타고 넘어가기도 한다. 많은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만 단연코 내게 최고의 이야기는 2013년 작품인 <어바웃 타임>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봤고 여전히 좋아하고 있으며 나 역시 그렇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인 팀은 21살이 되던 해 아버지로부터 대대로 집안 남자들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요한 건 오직 어두운 공간 하나뿐이다. 작은 공간에 들어가 주먹을 쥐고 눈을 감은 후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돌아갈 수 있다. 참 단순하지만 실용적이다. 집뿐만 아니라 어두운 곳이면 어디라도 좋다. 처음 이 능력을 알려준 아버지는 돈과 명예를 위해 이 능력을 쓰다 파멸한 여러 친족을 말해주며 능력의 무서움을 경고한다.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자 팀은 대답한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시간을 돌리는 힘을 얻었으면서 하는 짓이라고는 애석하게도 오직 사랑이라니.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하지만 팀은 이 능력을 적재적소에서 잘 활용한다. 첫사랑의 등에 오일을 발라 주려다 등에 오일을 모조리 쏟아 버리자 5분 뒤로 돌려 쿨하게 다시 능수능란한 척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친구가 생기자 남자친구가 생기기 직전으로 돌아가 사랑을 쟁취한다. 혹은 여자친구의 부모님과 처음 대면하는 순간 너무 큰 말실수를 하고는 다시 시간을 돌려 없던 일로 해 버린다.
일종의 게임의 ‘세이브&로드’ 시스템이다. 앞으로 나아가다 실수를 하면 다시 뒤로 돌리고, 없던 일처럼 행동하지만, 그때의 그 기억을 바탕으로 수정된 현실로 나아간다. 우리가 시간 여행을 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 실수를 지우고 살아가며 아무 일 없던 듯이 살아간다. 목적 하나는 확실한 시간 여행이다.
팀이 시간 여행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단 하나였다. 바로 여자친구, 그리고 지금의 아내였다. 사랑을 얻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이유로 팀은 시간을 여행한다. 목적을 달성한 그는 이제 행복한 동화 속 결말 같은 삶을 산다. 그리고 그 동화 같은 삶 속에서 팀은 시간 여행이 거의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 우리는 인생을 목적지가 있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라 착각한다. 이야기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어쩐지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면 모든 것이 끝나고 행복해질 것이라 착각한다. 과연 인생의 결말은 무엇이라고 봐야 할까?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해도 가족을 이루는 순간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혹은 경제적 성공이 인생의 결말이라고 해도 그 즉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결말은 그럼 죽음인가? 메멘토 모리라는 라틴어에서 보듯이 우리는 언제나 죽음을 겪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생의 결말은 죽음일까. 그렇다면 우린 잘 죽기 위해서 이렇게 치열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된다. 관짝에 금으로 수를 놓고 화려한 비석 아래에서 잠들기 위해서. 하지만 이토록 허망한 허무주의를 인생의 결말로 삼기에는 찬란한 순간들이 아쉽다.
우리는 유한한 연속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행복한 사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즉시 영화처럼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 팀은 행복한 가족과 인생을 가진 이후 시간 여행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 즉시 인생이 끝난 건 아니었다. 여전히 팀은 하루를 살아간다. 시간 여행을 할 수 없는 우리와 같은 모습이다. 결국 우리는 결말이 아니라 과정을 보기 위해 살아간다. 인생의 끝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지금의 모습 속에서 말이다.
이렇게 시간 여행을 거의 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던 팀은 아버지에게 더 중요하고 강한 비밀을 하나 얻는다. 바로 하루를 다시 살아보라는 마법의 주문 아닌 주문이다. 팀은 힘든 하루를 견뎌낸 이후 다시 아침으로 돌아가 똑같은 삶을 반복해 본다. 하지만 뭔가 조금 다르다. 짜증 나는 회의 시간도 어차피 짜증 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찾아보고, 바쁘게 점심을 샀던 카페 점원의 미소가 아름다워 보이고, 평범하게 흘려보냈던 모든 순간이 즐거워진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단지 하루를 다시 살았을 뿐인데 이렇게 완벽한 하루가 되었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없는 우리는 꿈 꿀 수 없는 완벽한 하루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그러고 있다.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지하철이나 버스를 매일같이 타고, 같은 건물에 들어가고, 다시 나오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오늘과 같은 내일이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다. 너무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니 크게 바뀌지 않는 하루들이 지나간다. 시간 여행으로 하루를 다시 사는 팀과 다름없는 삶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들인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아이, 빛나는 햇살, 경쾌하게 들어가는 농구공, 책 한 줄의 즐거움, 웃고 떠드는 기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 가족과의 시간…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라 생각했던 착각은 이런 순간들을 지나치게 만들었다. 때문에 나는 목적 없이 떠다니는 삶을 살곤 했다. 관성처럼, 습관처럼 아름다운 순간들을 지나쳤고, 덕분에 하늘이 얼마나 맑은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아왔다. 그리고는 언제나 탈출을 꿈꿔왔다. 마치 탈출만이 모든 삶의 결말처럼 여긴 셈이다. 그 탈출이 여행이든, 새로운 직장이든, 아니면 결혼이든 무엇이 되었던 그냥 떠나가는 삶을 생각했다. 출판 역시 그런 느낌이 있었다. 뭔가 이런 하나의 사건으로 내가 획기적으로 변화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언제나 결말을 원했으니까.
하지만 이야기에는 결말이 있을지언정 인생에는 결말이 없다. 과정일 뿐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끝을 마주하는 순간 내 인생도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에서 돌아왔다고, 책을 출판했다고, 꿈꿔왔던 회사에 취직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갈무리이자 진행 중인 삶의 과정 중 하나였을 뿐이다. 물론 끝을 마주하며 만난 성취감은 그 무엇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성취감을 주었다. 하지만 성취감은 행복, 슬픔과 같은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감정을 느낀 후에는 내려놓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
삶의 과정에서 보이는 그리고 느껴지는 모든 순간에 집중해보자. 하루를 돌아보면 무수한 햇빛이 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