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고 즐거움을 쫓는 동심
얼마 전에 이번 겨울 첫 폭설이 내렸다. 작년부터 유난히 갑작스러운 폭설이 많아지는 기분이다. 지구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며 영화 <투모로우>의 엄청난 추위와 폭설을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기우였으면 좋겠다.
무릎까지는 아니더라도 발목까지 쌓인 눈이었다. 낮에 온 눈만 하더라도 온 세상이 이미 새하얗다고 느껴졌지만, 자정 즈음 내리던 함박눈은 곳곳에 아직 남아있는 세상의 색들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예전에는 눈이 많이 온다면 조금 짜증이 났다. 눈이 오고 난 이후 질척거리는 검은 눈에 젖는 신발과 바지 밑단의 불쾌함도 싫었고, 눈이 뭍은 신발로 어딘가 들어가면 남는 더러운 발자국도 싫었다. 차가 막히는 것도 싫고, 배달음식이 늦는 것조차 싫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눈은 낭만보다는 불쾌에 가깝다.
눈이 한창 오던 새벽, 잠시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서는데 아파트 앞 현관에 누군가 장난감으로 눈을 뭉쳐 작은 눈사람 군단을 만들어 두었다. 작은 공룡들이 일렬로 줄 서 있는 모습이었다. 어딘가 침공하기에는 너무 귀엽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는 너무 앙증맞았다.
어른인지 아이인지 모르지만 만든 사람의 동심 덕분에 오랜만에 눈이 반갑다. 사진을 찍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니 여전히 세상은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걷다 보니 여기저기 이미 만들어진 눈사람들이 서 있다. 아이들이 만든 것이 티가 나는 어설픈 눈사람부터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춘 듯한 크기의 눈사람까지 각양각색의 눈사람들은 새로운 떨어지는 눈을 온몸으로 받으며 어두운 밤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른이 만들었던, 아이가 만들었던 눈을 뭉쳐 만들어낸 조각들은 그들의 동심이다. 아이들은 순수한 그 마음을 간직하며 작은 손으로 만들어냈다. 어른이라면 가슴속 사라진 듯했던 동심이 소복이 쌓인 눈과 함께 돌아온 덕분에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이들 사이에 끼고 싶어졌다. 작은 눈덩이를 뭉쳐 하나의 큰 눈 뭉치로 만들고 다시 모으기를 반복했지만 쉽지 않았다. 손이 시려진 나머지 그냥 만들어둔 눈 뭉치 4개로 작은 눈사람 2개를 만든 것으로 만족했다. 어설프고 작은 동그라미들이지만 동심을 만나 다른 눈사람들처럼 생명의 모습을 갖춘 눈사람이 되었다.
동심은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아이의 마음은 단순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뿐이다. 엄마,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 하고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동심이다. 욕망이 서툴지만 그 마음을 직접 표현하고 해내는 것이야 말로 동심인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떼를 쓰기도 하고 울기도 하다. 어린 시절을 잊어버린 우리는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들의 칭얼대는 모습을 보고 인상을 쓰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이의 본성이자 동심이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아무 눈치 없이 하는 것, 아이의 마음이다.
그래서 동심에서 오늘의 즐거움은 내일의 걱정보다 우선이다.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아이들에겐 없는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어른의 삶을 반추한다. 그래서 가끔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술을 마시며 한풀이하는 어른의 즐거움이 아니라,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런 동심의 즐거움. 질척거리는 눈을 밟으며 추운 날에 코가 어는 줄도 모르고 눈사람을 만들고 싶기도 하고, 밤새워 걱정 없이 떠들고 놀고 싶기도 하고, 시원함이 그리우면 동네 냇가에 아무런 눈치 없이 들어가 놀고 싶다. 즐거움이 우선하고 당장의 걱정은 나중인 동심이다.
하지만 어른은 언제나 즐거움만 추구할 수 없다. 어른에게는 즐거움보다 더 큰 책임과 걱정이 있으니까. 마냥 네버랜드에서 놀며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팬처럼 평생을 쾌락으로만 채울 수는 없다. 걱정을 바탕으로 오늘을 희생하며 더 나은 내일을 설계해야 하니까. 그래도 가끔은 걱정보다는 즐거움을 챙겨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미 그런 감정에 취약해진 어른들은 진정으로 느끼고 싶은 즐거움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겨를 조차 없다. 잃어버린 동심은 이렇게 점차 지워지는 듯 보인다.
그래서 오랜만에 혼자 눈사람을 만들었다.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내면의 표출이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라기 보다는 어린 시절처럼 당장의 즐거움을 즐겨보고 싶었다. 언제나 만들고 싶던 눈사람이지만 힘들 것 같아서, 혹은 옷이 더러워질 것 같아서 포기했었다. 남들이 철없는 사람으로 바라볼까 두려워서 그만두었던 이유도 꽤 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눈사람을 만들겠다는 욕망이 만들지 않아야 하는 수많은 이유들을 모두 무찔렀다. 그냥 만들고 싶었으니까. 잃어버린 첫사랑도 아니고 잃어버린 동심이 다시 찾아오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아마 눈이 오늘따라 너무 잘 뭉쳐지는 탓일 수도 있지. 왜 하필 오늘 이런 동심이 갑자기 다시 생겼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동심이 다시 찾아왔다.
동심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은 탓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어린아이의 마음, 누구에게나 있지만 체면 때문에, 시간 때문에 혹은 즐거움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즐기지 못하고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순수하고 새하얀 눈이 세상을 갑자기 덮치니 숨어 있던 동심도 당황해 튀어나와 버린 것일 테다.
쉬지 않고 눈을 뭉치다 보니 마스크 안이 온통 입김으로 나온 이슬로 가득했다. 오랜 시간 동안 참아왔던 동심이길래 이토록 한숨 가득 토해내도 아직 여의치 않다. 주변을 둘러보니 눈 덕분에 동심이 돌아온 어른들이 꽤 보였다. 나이 지긋한 어른도 슬며시 눈을 바로 모아 보기도 하고, 어린 아들 딸과 놀이터에 놀러 나온 부부도 아이들 제쳐 두고 자기들이 더 신나서 눈사람을 만든다. 한 친구들은 서로 눈을 모아 사람들 없는 곳에서 눈싸움을 하고 있다. 갓 떨어진 눈 덕분에 동심으로 돌아간 어른들의 눈동자는 아이와 다르지 않다.
다음날 아침이 찾아오자 눈사람이 금세 녹아 사라졌다. 어제 만들어 둔 동심의 결과물이 벌써 끝나버렸다. 네버랜드로 잠시 떠났던 여행이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른으로 돌아가라는 시간의 명령이다. 하지만 동심으로 갔다 돌아온 추억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고민이 생기고 걱정이 생기더라도 함박눈이 내리며 잠시 돌아갔던 동심을 떠올리며 잊힌 진정한 즐거움이 다시 마음속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